헝가리 어학원 이야기
2022년 10월 30일.
영원할 것 같았던 여름이 끝났다.
매년 10월 마지막 주 일요일 유럽 전역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는데 새벽 2시가 되면 시간이 한 시간 앞으로 당겨지는 - 모두가 긴장하는(?) 그날이 - 바로 그것이다. 올해도 모두에게 공평하게, 어김없이 찾아왔다.
지금부터 우리가 할 일은 내년 3월에 다가올 희망의 싹이 돋는 날(서머타임 시작 : 3월 마지막 주 일요일)을 조용히, 겸손하게, 성실히 기다리는 것뿐이다. 기왕이면 견딘다는 표현보단 씩씩한 태도로 혹독한 다섯 달을 마주하고 싶다.
인도에서 돌아오자마자 - 다음 날부터 시차 적응할 새도 없이 - 헝가리어 공부를 시작했다.
7년 반 전 헝가리에 처음 왔을 때 1년 정도 (2학기, 4개월씩 두 번) 어학원에 다닌 이후로 6년 만이다.
크고 작게 내게 주어지는 모든 일들을 잠시 멈추고(뒤로하고) 언어 공부에만 집중할 생각이다.
헝가리어를 처음 배웠던 1년은 나에게 너무 생경한 시간이었다. 어려웠다(실제로 유럽인들 사이에서도 악명 높은 언어, 전 세계에서 배우기 어려운 top 10 언어 중 늘 꼽힘). 난이도가 높아질수록 언어 습득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 언어가 내 시간과 정성을 들일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인가, 과연' 하는 생각이 크게 자리 잡았었기 때문에 '매우 적당히' 마음을 쏟았다는 것이 맞는 말이겠다. 구실을 하나 더 만들어 보자면 일과 병행하며 다녔던 지라 온전히 공부에만 집중할 수 없었던 탓도 컸다. 쓰다 보니 모두 핑계다. 돌고 돌아 결국 다시 돌아온 것이 지금이다.
'이때 아니면 평생 - 헝가리어 구사를 - 못하고 지나갈 것 같은' 마음이 강하게 움튼 것이 작년부터다. 코로나가 발발했을 때가 헝가리어 공부하기에 가장 적기였지만 그때가 많은 외국인들이 자국으로 빠져나가기에 급급했던 시기였고 더불어 모든 어학원이 문을 닫았었다. 작년부터 조금씩 재개됐던 것이 온라인 강의인데, 나는 나를 안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의 생생함이 내겐 더 맞는다는 것을. 개인 과외 또한 흥미가 없었다. 헝가리어 1 대 1 과외를 한 적이 있었는데 너무 내 구미 대로만 움직이니 실력이 늘어간다기보다 시간을 갉아먹는다는 기분이 더 강했다. 그래서 그 이후로 과외 또한 패스! 어학원이 내겐 최적의 공부 환경이었다.
어학원 입구 -
어학원 복도 -
쉬는 시간에 일광욕 -
수업 끝나고 이따금씩 찾는 팟타이 : )
에코 카페(ECO CAFE)에서 숙제하기 -
헝가리 어학원 교실 -
수업 끝나고 산책으로 이어지는 일상, 걷는 시간은 언제나 좋다.
<나와의 약속>
* 수업에 지각하지 말기
* 숙제는 수업 끝나고 바로 하기!
* 문장 소리 내어 읽기 (스피킹이 너무 어렵다)
* 단어 많이 외우기 (수업 전후로 최소 한 시간씩 헝가리어에 투자하기)
헝가리에 살면서 공중에 흩어져 버렸던 무수히 많은 단어와 문장, 뉘앙스들이 하나둘씩 퍼즐처럼 맞춰지는 기분이다. 재미있다. 처음 배웠을 때보다 습득하는 속도가 빨라지고, 재미를 붙이니 좀 더 집중하게 된다. 특히나 선생님과 반 친구들의 호흡이 너무 좋다. 우리 반엔 우크라이나인 세 명,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나이지리아, 나까지 총 7명의 구성원이 있다. 모델같이 늘씬한 리나, 화통한 웃음소리를 내는 카리나, 엉뚱한 성격의 파블로, 커피 사업가 발쌈, 천사같이 웃는 넬슨 만델라를 닮은 피떼르, 성품 고와 보이는 나탈리아. 하나같이 예의 바르고 착하다. 배움에 열정이 있고, 모두가 다 밝은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그 기운이 참 좋다. 거기에 화끈한 성격의 Csiila(칠라 : 헝가리어로 '별'이라는 뜻) 선생님과 차분한 성정의 Beata(베아따) 선생님까지..
좋은 친구들과 함께 알아가는 즐거움을 맛보는 요즘이다.
칠라 선생님 -
쌈박한 성격이 마음에 든다. 모두가 다 어물쩡하게 넘기는 발음을 꼭 집어 고쳐주신다.
길 찾기 수업 시간은 모두가 혀 꼬이는 시간 : )
방향에 관련된 단어들은 어느 나라 언어든 괜스레 더 혼란스럽다.
즐거운 수업 시간 -
러닝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완연한 가을의 부다페스트 -
이젠 제법 가을도 즐기게 되었다. 가을이란 파도에 휩쓸리던 나였는데, 이젠 그 파도에 몸을 맡기고 서핑 할 정도는 되었다, 가 맞는 표현일까?
숙제를 하면서 친구가 사다 준 바나나킥을 뜯었다. 아메리카노와의 조합이 찰떡이었다!
Hol (van) a kavem(홀 반 어 까빔?) : "내 커피는 어딨어?"(의 의미) - 센텐드레에 놀러 갔던 친구가 마켓에서 사 온 귀여운 선물이다.
어제는 서머타임이 끝나던 날, 오늘(10월 31일)은 대체 휴무일, 내일(11월 1일)은 모든 성인(Saint)의 날이고 헝가리의 공휴일이다.
덕분에 오랜만에 글 쓸 여유가 생겼다. 아니다. 글을 쓸 시간은 많았다. 글을 쓸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라고 정정하겠다.작년 여름만큼이나 올여름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관계의 변화부터 한 달 여간 인도 생활, 어학 공부 재시작, 심적 요동까지.... 평생 가도 끝나지 않을 주어진 생에서의 분투가 어김없이 일어났고 이어져가고 있다.
내면의 시간에 여느 때보다 더 밀도 있게 집중하고 있다.
올 연말까지 성경 통독을 목표로 밤마다 하나님과 약속한 시간에 만나서 읽고, 듣고, 대화(기도) 하고 있다. 새벽예배 기도도 이따금씩 하고 있다. 여전히 많이 걷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뛰고(운동) 있다. 자기 전엔 감사의 기도 제목을 열거하며 써 내려간다. (덧, 최근에 또 하나의 offer가 들어왔다. 선택을 위해 기도 중이다)
성경을 읽지 않을 때는 성경 말씀을 듣는다. 세상의 것과 최대한 분리되고 하나님의 가르침에 최대한 가까워지려 하고 있다. 내 신실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그래야만 살아갈 수 있는 나라는 걸 고백하는 것뿐이다.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이 감사와 평온으로 뒤바뀌고 있다. '이제 됐으니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자!'라는 건 없다. 늘 깨어서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 그래야만 산다. 죽는 날까지 내게 주어진 소명임을 새삼 깨달았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에 만족하고 기뻐하는 나,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목표가 아닌 존재 자체로 감사하며 받은 사랑을 주변에 전하는 것에 힘쓰는 내가 되길..
지금 내 마음에 커져가는 기대의 제목들이 있다. 머지않은 때에 주님이 허락하신 귀한 간증 거리가 될 것임을 믿는다. 그러한 예감이 끊임없이 든다. 이 기록 또한 그날을 위한 것으로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