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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케이 Feb 03. 2023

부다페스트에서 헤어질 결심을 -

헝가리 일상


*Prologue : 생각해보면 내게 헤어짐이란 결심의 범주 안에 넣을 수 없는 것이었다.








8년 부다페스트 살이에서 처음 해 본 일이 생겼다.

바로 '극장에서 영화 보기!'

친구로부터 헝가리에 '헤어질 결심'이 개봉했다는 이야길 들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영화가 아니라 헝가리 극장에서 홀로 영화를 보는 내 모습이 궁금해졌단 말이다.

보고, 듣고, 느끼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여행, 음악 감상, 책 읽기 등을 즐겨 하는데 영화는 사실 그에 비해 뒷전이었다. 물론 영화를 좋아하지만 예를 들어 시리즈물을 성실하게 챙겨본다거나 누구 감독의 어떤 배우의 작품을 고대하며 기다린다거나 하는 정도의 열정은 크게 없다. 특히나 헝가리에 지내면서 극장에서 영화 보기는 상당히 난해한 일 중 하나로 치부해버린 지 오래였다.



헝가리는 아직까지도 외국 영화를 대부분 더빙해서 보는 편이다. '문맹률이 높을수록 더빙 문화가 발달한다'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문화적 요인에서 기인하는 것도 있다. 유럽에서 더빙 문화가 발달한 나라로 독일, 프랑스 등이 대표적이다. 각 나라별로 더빙을 입히는 것에 각자의 이유가 있다.

프랑스는 영어가 공식 언어로 프랑스어를 대체할 것을 우려해 대부분의 영화를 자막이 아닌 프랑스어로 더빙을 한다고 한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뒤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점령을 받았습니다. 그에 따라 다양한 문화가 영화를 통해 유입되었습니다. 또한 그 당시 영화는 단순한 오락의 목적이 아닌 민주주의의 가치를 전달하는 용도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자막만으로는 이를 전달하는 데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더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 미래에셋대우 웹진 중 -




그 외에 더빙은 '외국 관객들이 외국인처럼 느끼지 않고 영화를 이입해서 볼 수 있게 해준다'라는 이유 등 다양한 이점들을 피력한다. 실제 우리나라도 내가 태어났을 시기 즈음까지만 해도 더빙된 외국 영화, 드라마 등이 이따금씩 방영되곤 했었다. 헝가리의 한 일간지(daily Hungary)에선 'Most Hungarians still prefer dubbed films(여전히 헝가리인들은 더빙 영화를 더 선호한다)'라는 주제로 기사를 다룬 적도 있다.




'영어도 아닌 헝가리어로 더빙된 영화라니..' 이곳에서 영화를 더욱 멀리하게 된 이유가 너무나도 명확했다. 그러던 차에 '설마 <헤어질 결심>이라는라는 고도의 작품(?)을 헝가리어로 더빙했겠어?'하는 궁금증에 검색해 보니 '원어 상영, 헝가리어 자막'이라는 설명이 나와있는 것이 아닌가.

모국어로, 그것도 헝가리 극장에서 영화를 본단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반가운 마음에 바로 달려가 아날로그 감성으로 현장 발권을 하고 영화를 감상했다

2023. 01. 18. 수요일. 오후 2시 45분.

나를 포함해 총 8명의 사람들이 영화를 관람했다.




헝가리에 다양한 종류의 영화관이 있는데 cinema(대중 영화 상영관), mozi(독립예술 작품 소규모 영화관), szinhaz(연극, 오페라 등 공연예술 극장) 등이 대표적이다. '헤어질 결심'은 도심 곳곳에 mozi('모지')에서 상영 중이다.







Művész Mozi



화려한 시네마가 아닌 정다운 '모지(mozi)'에서의 영화라 더욱 반가웠다.








티켓값은 2,100ft (포린트), 한화로 약 8천 원 정도다.






'헤어질 결심'은 작은 상영관(제일 오른쪽)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평일 한낮이다 보니 영화관 내부엔 어르신들이 대부분이었다.







기다리는 모습이 귀여운 헝가리 아주머니들 -






극장 한편에 '헤어질 결심' 포스터가 보였다.






'A TITOKZATOS NO (어 티톡자토쉬 뇌)'

헤어질 결심의 헝가리어 제목은 '신비로운 - 미스테리한 - 여인'이다.




직관적 - 1차원적 - 으로는 잘 지은 제목처럼 보이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라면 말이 달라진다.

이 영화의 제목은 원어 그대로 '헤어질 결심'이면 좋았을 것이다. 헝가리인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긴 복도를 마주하자마자 왼쪽 계단 위로 상영관이 있었다.






상영관명이 사람 이름이었는데 그 인물에 대한 설명이 입구 앞에 붙어 있다.

헝가리는 거리, 장소, 건물 등에 사람 이름이 들어간 것이 많다.





홈시어터같이 아담한 규모여서 내 집처럼 편안하게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영화관의 공기는 포근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까지 모두 8명이다. 헝가리 사람들과 한국 영화를 본다는 것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영화의 재미보다 영화를 보는 과정이 ‘재미’였다.

헝가리 극장에서 흘러나오는 한국어, 헝가리어 자막, 또 탕웨이의 중국어까지. 중국어가 나올 때마다 내 심정은 막막함 그 자체였다. '헝가리어 자막에 중국어라니..' 영화의 흐름과 분위기, 탕웨이의 표정만 보고 상황을 유추하기까지 이르렀다. 아무리 호평을 받은 대작이어도 언어의 의미가 부재하니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도 있었다. 갈수록 미로 같았다. 언어가 결국 전부였다.

'이런 상황을 지금 아니면 언제 겪어 보겠어',하고 생각하니 갑자기 웃음이 났다.

내게 '헤어질 결심'은 사랑 영화가 아닌 언어의 향연이다. 4D 화면 아닌, 언어의 4D(사차원)였다.

.




'마침내, 단일한, 붕괴되다.'등 배우들이 뱉은 대사 하나하나에 생각이 머물고 스쳤다. 그와 동시에 이 단어가 헝가리어로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 순간 포착하기에 눈동자까지 분주해졌다. '아, 이 문장은 헝가리어로 이렇게 표현하는구나, 저건 이렇구나..'하며 메모장에 적어놓기까지 이르렀다.




영화를 보는 행위와 앎의 희열까지 가미되니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흥분됐다. 거기에다 지금 내가 웃는 이 포인트에 헝가리인들이 웃고 있는지, 또 내가 갸우뚱한 이 부분에 그들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관한 것들을 순간 포착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다행히 내가 웃을 때 웃고, 내가 심각할 때 그들(다른 7명의 헝가리 관객)도 심각한 듯 보였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 즈음 번역에 관심을 쏟은 적이 있다. 전공 수업 중 하나이기도 했고, 내 언어를 다른 언어로 변환해 같은 의미를 전달한다는 것이 꽤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거 같다. 근데 이게 밥벌이가 된다고 하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흥미를 쏟을 때는 매력적이었던 것이 결과물로 뽑아내야 하는 '업무'로 다가왔을 때는 스트레스였다. 매력을 스트레스로 바꾸어도 괜찮을 만큼 '번역'에 관대한 마음은 아니었다.

허나 지금까지도 여전히 흥미를 잃지 않는 부분이 하나 있다면 그건 바로 '언어, 말, 단어, 글'이다.




대학 4년 동안 책을 정말 많이 읽었다. 지금은 많이 안 읽고 있다. 아니, 못 읽는 것에 가깝다. 여기서 못 읽는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라는 의미이다. 책을 읽는 데 드는 시간이 너무 길기 때문이다. 속독을 못하는 건 아니다. 언제부턴가 한 문장 한 문장을 쉬이 못 넘기는 습관이 생겨버렸다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한 단어에 꽂히면 그 단어에 동그라미를 치고 한동안 바라본다. 사전에서 참뜻을 확인하고 유의어, 반의어 등을 들여다보는 것도 예사다. 혹은 마음에 드는 문장이 생기면 노트에 옮겨 적으면서 내 문장을 만들어보기도 한다. 어디 문장 뿐이겠나. 단락단락이 주옥같은 책은 열 페이지도 넘기기가 힘들다. 그 정도로 책 한 권에 들이는 (읽는) 공이 상당하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동하면서 내 손이 움직이는 것이라 막을 길이 없다. 에너지를 너무 많이 빼앗아가는 독서법에 변화가 필요하다.





전공이 글이다 보니 우리 과 친구들은 하나같이 단어, 어휘, 표현력, 뉘앙스 등에 유독 민감한 친구들이 많았다. 글 천재들이 많은 학과에서 나는 단어를 흥미롭게 구사하는 사람에 속했다. 단어와 의성어 등을 다양하게 쓴다는 말을 이따금씩 듣곤 했다. 그것만으로도 - 무언가 하나는 지니고 있어서 - 다행이라며 자기 위안을 삼기도 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어안이 벙벙하다." ("말로 듣는 거 오랜만이다. 어안이 벙벙, 이런 표현 잘 안 쓰지 않냐?")

"그 사람은 어언무미 - 말에 맛이 없다는 말 - 해." ("너는 어떻게 그런 단어가 생각이 나? 그 말이 딱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많다.




참고로 나는 어휘 구사력이 높은 사람에게 심하게 끌리는 편인데, 힘주는 척, 어려운 말만 골라하는 그런 모양이 아닌 자연스레 뿜어 나오지만 고민한 듯한 흔적이 묻어나는 신중한 단어 표현에 반해버린다. 이성 중에서는 김영하(작가), 이승우(작가), 유현준(건축가), 조승연(작가), 유시민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말을 일부러 어렵게 사용하는 것은 지양한다. 외래어를 쓰는 것도 조심하는 편이다. 그러나 상황에 걸맞지 않은 표현으로 적당히 뭉개는 듯한 표현 또한 마음에 내켜하지 않기에 사용하는 단어나 문장에 정성을 다 하는 편이다. 누군가에게 내가 전하는 의미가 잘 전달되기를 바라면서 뱉은 말들이 남들에겐 자주 쓰이지 않는 것들이 종종 있었는데, 이로 인해 ‘내가 희한한 것인가?’ 반문하던 때도 있었다. 허나 이 영화풀이를 보면서 그 갈증이 조금은 해소가 되었다.





탕웨이의 입 밖으로 튀어나온 대사 중 독특한 느낌이 들던 첫 번째 단어는 '마침내'였다.

우리는 '마침내'는 문어로, '결국' 혹은 ‘드디어’ 정도를 구어로 주로 사용하는 편이다. 그렇다면 '마침내'는 틀린 말이 되는 것이냐. 그건 또 아니다. 소위 말해 말로 자주 쓰는 표현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언어를 환경에서 배운다. 전에 나오는 단어를 잘 안 쓴다. 되레 정확한 표현을 쓰는 건데도 우스꽝스럽게 비쳐지지도 한다. 언어를 용례(쓰고 있는 예)로 배우기 때문이다. 용례로 배운 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낯선 것, 마치 틀린 것처럼 보인다. 특히나 헤어질 결심에서 나온 단어 몇몇은 한국어인데 외국어처럼 느껴지게 하는 것들도 있다. 번역투이거나 전자사전 옮긴 듯한 문장들이 많이 나온다. 영화에서는 이것을 통해 영화를 ‘낯설게 하기’ 효과를 두드러지게 하고 단어가 가지는 힘을 극대화 시칸다.


정준희의 해시태그 '씨네 브런치 EP.08 <서래와 해준은 왜 그렇게 쉽게 사랑에 빠졌을까?>' 중 -




'마침내, 결국'이라는 단어 하나가 영어로 표현된다 하더라도 'fInally, eventually, ultimately, after all, at long last, in the end, in the long run'등 다양한 표현이.존재한다. 헝가리어 자막으로는 'Végre(비그레 - ‘마지막으로, 결국’ 등의 의미)'로 표기되었다.



혹자는 이 영화에 등장하는 지역의 특징 중 중요한 메타포로 '안개'를 꼽는데, 나 또한 영화를 보는 내내 시청각적으로 안갯속에 파묻혀 미로를 걷는 듯한 기분에  영화 속에서 빠져나오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영화관 복도 책장에 영화 CD들이 꽂혀 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니 낮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헝가리의 퇴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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