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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Sep 01. 2022

새로운 업계에 적응하기

이건 혼란한 직장인의 이야기이자, 쓰는 사람의 변명입니다.


        한 동안 에세이를 많이 쓰지 못했다. 글쓰기와 운동은 시간이 있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내어서 하는 것이라는 지론에 따르면, 쓰지 '않았다'는 것이 맞겠다. 쓰는 사람으로 살겠다는 다짐이 무색하지만 나는 글을 쓰지 않았다. 목표와 마감이 있는 습작과 기고글은 꾸준히 썼다.(이렇게 덧붙이니 상당히 궁색하군...) 하지만, 마감과 보수가 없는 브런치에 글을 쓰지 않았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이곳에서야 말로 내가 정말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강제와 대가가 없이 귀한 시간을 내어 읽어주는 독자분들이 있는 곳인데. 반성하자.


이제야 글을 쓰는 이유는 이 브런치 나름의 테마로 삼던 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개복치 시리즈'에 올릴 소재 바구니를 가득 채워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다시 생겼다. 지금까지는 앞서 말한 '다른 업계로의 이직'이 키보드를 두드리는데 발목을 잡았다. 무성한 고민이 있었지만 구구절절 삼가고 요약하자면 "네가 뭘 안다고 이런 소재로 글을 써...?"다. 


알아야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손가락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니 없어도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본인에게 매우 엄격하다 보니 제 마음도 생각도 생활도 어느 것 하나 정리되지 않았으면서 공감을 형성하는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공감을 하지 못해서 그렇지 않았을까. 




        새로운 업계로 이직을 한 지 만 2년이 지났다. 뷰티와 IT는 얼핏 봐도 그렇지만, 몸을 담고 나니 둘은 섞이기 쉽지 않다는 것이 확실해졌다. 물론 IT 기기를 접목한 뷰티 서비스도 많이 나오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일하는 분야가 달라진 직장인으로서 느끼는 차이이다. 뷰티에서 5년, IT에서 2년, 총 8년 차에 들어선 직장인. 한창 일 할 시기이고, (보편적으로) 일을 잘할 것이라 기대받는 시기이기도 하다. 8년 차 직장인 나름대로의 책임감(?) 덕택에 다소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 시기를 거치고 나니 '다른 업계로의 이직'이 주는 장단점이 이제야 좀 갈무리가 된다.


뷰티 업계에서 프로모션/신사업 기획자 일하다가 5년 차에 IT 서비스 기획자로 전향했다. 커리어에 있어 큰 변화이긴 했지만 원하던 업계였고, 지금이 아니면 이동이 더 어려울 수 있겠다는 위기감의 발로이기도했다. 그리고 전 직장에서 마지막으로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온오프라인 통합 신규 콘텐츠 기획이었다. 처음으로 기획해 본 웹 서비스가 매우 흥미로워서 잘 맞을 것이란 자신감에 가까운 기대도 있었다. 무엇보다 '회사는 회사다'하는 생각으로 새로운 업계에 대한 두려움을 최대한 삭였다. 그리고 출근해서 맡게 된 일은, 운영 업무였다.


"운영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운영을 알아야 기획을 할 수 있으니까요."


라고, 면접 때 당당하게 말했던 나의 모습이 스쳐갔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지난 2년 간 새로운 플랫폼에서 운영 업무를 나름 잘 해왔고 많이 배웠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대처하는 법도 배우고 실무를 다졌다. 다만, 이직 후 1년 간, 총 경력 7년이 다해가는 시점에도 신입 사원과 같이 단순 운영 업무만 지원하고 있는 상황에 애가 닳기 시작했다. 서비스 기획을 제대로 하고 싶으니 처음부터 배우겠다는 마음가짐도 어느새 증발했는지, 신규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 퇴직 의사를 밝힐 때 외엔 해본 적 없는 면담 신청을 하기까지 했다. 이 업계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던 천둥벌거숭이 나를 데려와 준 팀장님은 묵묵히 들어주셨다. 그 마음 잃지 말자, 곧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머지않아 정말 기회가 왔다.


신규 앱 기획과 신사업 콘텐츠 기획이 한 번에 밀려왔다. 이미 팀의 기획자들과 별도로 진행하던 서비스 기획 스터디도 놓칠 수 없었다. 기존 운영 업무는 이미 계약되어 있어 당연히 가져가야 했다. 불과 한 달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바빠졌다. 이래서 '일 없다'는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건가 싶을 정도로 일이 몰려왔다. 그러나 업계를 넘어온 뒤로 할 수 있는 일이 매우 적다는 사실에 깊은 무력감을 꾸준히 느껴왔기에 바쁜 업무가 오히려 반가웠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프로젝트 총괄인 PM을 맡았기에 잘 해내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그리하여, 지금은 근 2년 만에 아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직한 지 2년 만에 자기 위안이 아닌, 근거를 가지고 진심으로 잘 해왔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업계에 적응하는데 꼬박 2년이 걸렸다.


'적응하기'라는 표현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다. 고향을 떠나 타지의 대학에 갔을 때도 새로운 환경과 사람과 시스템에 적응해야 했다. 대학을 떠나 타지의 직장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변화된 주변의 모든 것이 익숙해지는 데는 큰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매일 걷는 주변 풍경이, 담소를 나누는 상대가 익숙해졌다고 해서 적응했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나에게 적응이란 더 이상 마음이 혼란스럽지 않은 상태다. 22년 상반기 동안 내게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대학원을 가고, 결혼을 하고, 이사를 하고, 무엇보다 새 직장에 비로소 적응했다. 


지난 시간 동안엔 익숙해진 출근길을 다니면서도, 팀원들과 맛있게 식사를 하고 티타임을 가지면서도 언제나 혼란스러웠다. 과연 잘하고 있는 건지, 성장하고자 이직 한 곳에서 되려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지. 이젠 아니다. 개인의 삶과 업무가 정신없이 바쁘지만 마음은 전에 없이 평온해졌다. 잘하고 있구나, 앞으로 잘 나아가고 있구나 나에게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어서. 오늘도 열심히 키보드를 두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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