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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Sep 14. 2020

만만한 데 말뚝 박으시는 건가요

그럴 순 있지만, 이해를 바라진 말아주세요


회사에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유형을 강, 약으로 구분하는 편이다.


강강약약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하다)

강약약강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하다)

강강약강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강하다)

강약약약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도 약함)


적어도 업무를 함께 하면서 이 네 가지 유형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잘 보지 못했다. 강과 약으로 사람을 표현하기에는 각자의 개성을 담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지만, 회사로 한정한다면 안 될 것도 없다.


이 중에서는 단연 ‘강약약강‘이 걸리면 무척 골치 아픈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약자인 경우에 한해서만. 강자라면 어떤 유형을 만나더라도 크게 상관없으니 열외로 두자. 슬프게도 강약약강은 골치 아프면서도 가장 흔한 유형이기도 하다.




회사 사무실의 청결을 관리해주시는 건물 청소원 분들이 계셨다. 회사의 화장실은 미적인 이유인지 모두 화이트 컬러로 마감되어 있어 작은 잡티도 눈에 확 띄었고, 청소원 분들이 시간마다 방문해서 관리했다. 대게 2인 1조로 구성되어 관리해주셨기에 손을 씻으면서 종종 그분들의 업무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 층 담당 2분은 사수와 부사수의 관계인 듯했고, 단발머리 여사님이 포니테일 여사님에게 업무를 가르치는 듯했다. 단발머리 여사님의 방식은 상당히 엄했는데,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것도 몰라요?’였다. 왜 이러저러한 것을 하지 않았는지 타박을 놓는 옆에서 손을 씻다 보면 도리어 내가 민망했다. 그 하지 않았다는 것이 대체로 ‘인사할 때 고개를 왜 더 숙이지 않았냐’, ‘오 분 안에 끝내야 하는데 아직 붙잡고 있냐’ 등이었기 때문이다. 부사수의 포니테일 여사님은 대체로 네, 네 하며 조용하게 답하고 말았다.


마음이 쓰였다. 건물 청소 용역 회사는 모든 청소원 분들을 어머님 나이의 여사님들로 고용하고 있었고, 매뉴얼인 듯 마주할 때마다 미소와 함께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해주셨다. 그런 인사를 받으면 덩달아 고개가 깊이 숙여졌고, 동시에 불편함이 마음에 얹혔다. 화장실에서 마주칠 때마다 실례한다는 말씀을 (이 또한 매뉴얼인 듯했다) 주시지만 결코 실례할 일이 아니었으므로. 인사할 때 고개를 더 깊게 숙이지 않는 다는 이유로 타박을 듣는 옆에 있자니 괜스레 죄송한 기분마저 들었다.

Photo by Ashwini Chaudhary on Unsplash

마음쓰임은 아무래도 포니테일 여사님에게 기울었다. 하지 않은 게 큰 문제가 된다면 ‘다음부턴 하세요’ 하고 마무리 지으면 될 일이다. 굳이 ‘왜 안 했냐’를 따져가며 묻는 행동은 어떻게든 당신의 잘못에 대한 시인을 받아내겠다는 의도를 가질 것이다고, 단발머리 여사님이 그렇다고 생각했다.


했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그 이유는 잊었다거나, 일을 미뤘다거나, 급한 개인 용무가 생겼거나 하는 등 무수한 사정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어느 것도 변명으로 들리기 쉬우므로 ‘죄송합니다 ‘는 말만이 최선이 되기 마련이다. 죄송하다는 말을 듣고야 말겠다는 듯 매섭게 쏘아내는 사수와 묵묵히 감내하는 부사수의 옆에서 쓴 감정을 넘기며 화장실을 나서는 일이 적지 않았다.


거의 하루에 두세 번은 마주치는 분들이기에 이름은 몰라도 서로 얼굴은 익힌 사이였다. 그날도 양치를 하고 손을 씻다 포니테일 여사님을 마주쳤다. 여사님은 여느 때처럼 밝게 인사하셨고, 곧이어 전화를 받으셨는데 수화기 너머로 타박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내용은 불분명했지만, 예의 ‘이것도 몰라요?’ 어조는 분명한 듯했다. 포니테일 여사님은 평소처럼 네, 네 하실 뿐이었다. 전화를 끊고 묵묵히 세면대를 정돈하시는 모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 방금까지 화장을 고치고 나간 동료가 버려둔 화장솜이며 물기를 닦았다. 자연스럽게 휴지통에 쓰레기를 버리고 나서려다 여사님과 눈이 마주쳤다. 괜한 오지랖이었나 싶어 어색하게 미소를 짓고 나가려는데, 들려오는 말씀은 기대와는 달랐다.


“쓴 자리는 바로바로 치워 주세요.”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으니 나에게 하신 말씀이겠지. 그렇지만 냉랭한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어리둥절하여 ‘내게 하신 말씀인가?’ 생각하면서도 입으로는,


“아, 네... 죄송합니다.”


이러고 있는 내 모습. 사무실에 돌아와 한참 업무를 보다가 깨달았다. 아, 나 말뚝 박힌 거구나!




“만만한 데 말뚝 박는 거지, 뭐”


유독 기분이 안 좋았던 팀장님에게 와장창 깨지고 난 다음 선배가 한숨 쉬듯 내뱉었다. 그는 평소대로 일했고, 일상적인 보고를 기존의 형식으로 말씀드렸지만 사무실이 통째로 울릴 것 같은 사자후를 들어야만 했다. 회사 생활에 노련한 선배답게 즉시 ‘죄송합니다.’는 말로 팀장님의 분노를 달래고는 잠깐 바람 쐬러 나온 참에 선배가 한 말이, 말뚝 이야기였다.


정확한 의미를 알지도 못했지만 ‘만만한 데’는 선배고 ‘말뚝’이 팀장님의 화풀이라는 게 느껴졌다. 지금에서야 국어사전에 물어보니 ‘힘이나 세력이 없는 사람을 업신여기고 구박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어디선가 (아마도 대표님에게) 쓴소리를 듣고 난 다음 화 풀 구석은 결국 만만한 사람이라, 팀장님은 평소에 자신을 살갑게 챙기던 선배에게 평소였다면 문제없었을 일로 꼬투리를 잡은 듯했다. 선배는 팀장님을 이해한다고 했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고, 본인도 아랫사람에게 종종 그럴 때가 있다고 말하며.

Photo by Joshua Ness on Unsplash

신입 1년이 채 되지 않았던 그땐 ‘회사에선 그럴 수도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일 년, 이 년, 오 년이 지나면서는 ‘회사니까 그러면 안 되지’로 바뀌었다.


회사는 각자의 이익(커리어든 월급이든 명예든)을 위해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려 모인 사람들의 집단이다. 어차피 일은 사람 간에 하는 것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편이지만, 지킬 선은 분명히 있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동료를 대해선 안 된다. 설사 그게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상관없이 업무를 원활히 하는 게 우선이고, 본인의 감정 케어는 알아서 할 일이다. 상위 직급 혹은 나이가 많을수록 감정 표현이 자유로워지는 게 당연한 회사가 있다면 ‘만만 말뚝 문화’가 있는 곳이 아닐까 섣불리 예상해 본다.


그리고, 강약약강이 살아남기 최적의 환경이겠지.




5년 차 대리라는 직함으로는 만만 말뚝 문화에 반기를 들고 변화시킬 힘은 일절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런 엉터리 문화를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하는 반면교사로 삼을 순 있다.


선배에게 소리를 내질렀던 팀장님도, 잘 치우라고 전에 없던 냉랭한 말씀을 주시던 포니테일 여사님도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들도 각자 삶에서 분명한 장점을 가진 사람이겠지만 회사에서, 그중에서도 ‘본인에게 만만해 보이는 사람’에게는 종종 말뚝을 박을 뿐이겠지. 아마, 선배가 팀장님을 이해했던 것처럼 포니테일 여사님도 단발 여사님을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리 말뚝 박힘을 당하는 사람마저 당신을 이해할 거라 생각하진 말아주시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 Title Photo by Aarón Blanco Tejedo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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