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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Aug 27. 2020

29살, 이직을 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꽉 채운 5년이 되기 직전에 이직을 했다. 


24살부터 29살까지 한 회사를 다녔다.

좋은 사람을 만났고, 원래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나에게는 나빴던 사람을 만났다.

어엿한 사회인으로서 내 몫을 해낸다는 성취감을 맛봤고, 면전에 쏟아지는 비아냥을 웃는 낯으로 받아내기도 했다.

월급으로 근사한 옷을 입고 비싼 술을 마시러 다녔고, 월급의 대가로 화장실에 숨어 들어가 울음 쏟기도 해 봤다.

내 손으로 번 돈으로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고, 구멍 난 카드 값에 허덕이기도 했었다.

일과 개인사를 구분 지으며 회사 밖의 삶을 유연하게 꾸릴 수 있게 되었지만, 새벽까지 잠 못 드는 불안을 어찌할 바 몰라 담배를 피웠던 시절도 있었다.

회사 사람은 회사에서만 만난다는 룰을 갖기 전엔, 돌려받지도 못할 정을 주체 없이 퍼부어 상처 받은 적도 있다.

악에 받쳐 울면서도 마감에 쫓겨 키보드를 두드리기도 했고, 때로는 혼자서, 종종 같이 달을 보며 퇴근하기도 했다.

물론, 해가 떠 있을 때 춤추며 집으로 가기도 했고.


그런 회사를 내가 과연 떠날 수 있을까 싶었는데, 해보니 전혀 어렵지 않았다.


회사에 비전이 없어서, 리더에게 실망해서, 일이 성취감이 없어서, 월급이 별로여서. 이유를 대라면 끝없이 갖다 붙일 수 있겠지만, 사실 이전 회사는 굳이 이유를 만들면서 떠나야 하는 회사는 아니었다. 좋은 사람과 다양한 기회, 나쁘지 않은 월급과 최고의 환경, 그리고 복지. 비록 떠나고 나서야 이전 회사의 조건이 상당히 좋았다는 걸 알게 됐지만, 그곳에 속해있을 때도 이직은 내 복을 걷어차는 일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있다.




어느 순간 내가 29살이라는 게 실감 났다.


5년 전의 나는 3년 내에 학비를 모아 대학원으로 떠나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그 후에는 유학으로 눈을 돌렸고. 영어는 어디든 필수니 시간을 쪼개 공부를 했다. 

그 와중에 언젠가는 작가가 될 거라며 글쓰기 모임, 창작 학원, 에세이 연재, 작법 공부까지 여러 가지 들쑤셨다. 그러다 어느새 29살이 되어 있었다.

아직 나는 제대로 이뤄놓은 게 없는데. 무엇을 하겠다는 말만 거창하게 늘어놓고 계획만 번지르르하고 실제로 결과를 내놓은 건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손가락 사이로 지난 5년이 흘러내려간 것만 같았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여기서, 이렇게 서른이 되는 걸까?


그래서 나는 무엇이든 해야만 했다. 

관심 가지던 심리 대학원을 알아보기도 했고, 각 잡고 작가 공부를 할까도 고민했었다. 고민과 동시에 이직을 준비했다. 마치 이직을 되면 되고, 말면 말고 라는 식으로 여겼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가장 현실적인 길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아직 일을 하고 싶었으니까. 


29살이라는 나이는 어리진 않지만 (누군가는 콧방귀를 뀌며 ‘어려!’라고 하겠지만) 젊다. 친구들과 모여 장난스럽게 앓는 소리 해도, 뭐든 시작할 수 있는 시기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니 대학원을 가든 작가 공부를 시작하든 하면 된다.

그렇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회사에서 프로젝트를 맡고, 사람들과 씨름하고, 어떻게든 함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성취감을 더 맛보고 싶었다. 물론, 따박따박 나오는 월급을 더 모아서 풍족한 미래를 준비하고 싶다는 욕망도 있었고.


그래서 이전 회사는 아니었다. 

나에게 만족할 만큼의 일이 오지 않았고, 그렇다고 원하는 곳으로 보내지 지도 않았다.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매달리고 싶은 한창 일할 나이인데, 그때는... 회사에서 노트북 앞에 앉아 보내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이 순간에 나는 뭐든 할 수 있는데, 그곳에 앉아있으면 꽁꽁 묶여서 자리만 지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이 든 순간 주변을 둘러봤다. 팀장님도, 선배도, 누구도 내게 일을 하라고 재촉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


아, 여길 떠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조급하지 않은 맘으로 이력서를 넣었다. 그리고, 덜컥 합격이 되었다. 5년의 경력이 과연 어떤 의미일까 싶은 완전 다른 업계로의 이직이었다. 나에게는 기회이자 새로운 도전이었다.

퇴사 후 1주일을 겨우 쉬고 새로운 회사로 출근했다. 

면접을 봤던 팀장님은 ‘빨리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나를 뽑았다고 한다.




지난 5년이 내게 준 것에 대해 생각했다.


물처럼 그저 흘러만 갔다고 여겼는데,

그 아래 꼭 5년만큼의 성숙이 퇴적되어 있었다.

내가 쏟은 물이 아니어도 흘렀으면 닦아야 하고

의문형의 제안은 물음이 아니라 오더고

시킨 일을 찾지 않으면 알아서 가져가야 하고

일은 받는 게 아니라 찾아서 하는 것이다.

구태여 필요 이상으로 밝게 행동할 필요 없고

모든 사람이 날 좋아할 수는 없으며

이해할 수 없으면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넘기면 되고

어쨌든 일은 내 행복의 위에 서지 못한다.


누구도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지난 5년 동안 몸에 익힌 성숙을 가지고 나는 내 인생의 첫 이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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