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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Mar 21. 2018

혼자 술 마셔 본 적 있으세요?

작가 지망생의 습작(習作) #9




혼자 술 마셔 본 적 있으세요?     


얼마 전, ‘혼술남녀’라는 드라마가 유행이었다. 노량진 학원가를 배경으로 혼자 술 마시는 인물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낸 유쾌한 드라마다.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묻는다. 혼자 술 마셔 본 적이 있나요? 나의 대답은 ‘완전, 그것도 거의 매일!’이다.     




나는 혼술을 좋아한다.

혹시, 그런 말 들어봤는가? ‘혼술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 못 들어 봤어도 상관없다. 글을 읽는 순간 공감할 테니.     


나의 혼술 역사는 짧지 않다. 대학 새내기 시절에는 과 행사며 친목 모임이며 여러 술자리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거의 매일 술 약속이 잡혀있었기 때문에 혼자 술 마실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2학년이 되어 학점에 신경을 쓰면서부터는 술자리가 조금 줄어들었다. 대신, 밤늦게까지 과제를 할 때, 스트레스를 풀 곳이 없어 손에 쥐기 시작한 것이 맥주 캔이다. 그 뒤로 일주일에 네다섯 번은 맥주와 함께했다.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거나, 과제를 하거나. 적당한 취기는 모든 일을 수월하게 만들었다.     


휴대폰 앨범의 술사진을 찾아보았다. 이외에도 많지만 개중 깔끔한 것으로만....


어느 순간 주종을 넓히게 되었다. 

계기는 단순했다. 맥주는 배가 부르다. 늦은 밤에 배가 부르면 숙면에 방해가 된다. 그러나 혼술은 계속하고 싶다. 그렇게 친해진 것이 와인이다. 자취방 근처에 위치한 대형 마트에는 와인 코너가 있었다. 나름 잘 갖춰진 그 코너에는 가격대별, 취향별 와인이 늘어서 있었다. 장을 보러 갈 때면 항상 그곳에서 두어 병씩 와인을 샀다. 매일 밤 침대 맡에 기대어 앉아, 좋아하는 음악을 켜고, 주황색 스탠드 불빛 아래 책을 읽으며 와인을 마시는 일이 하루를 완벽하게 마무리해주었다.     


어느 날, 자취방에 놀러 온 친구가 바구니 가득 들어있는 빈 와인병을 보고 말했다. “알코올 중독 아니야?”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혼술의 즐거움을 모르는 그녀에게 말없이 그냥 웃어 보였다. 지금은 와인병 대신, 코르크 마개를 모은다.     




자취방은 부산에서 서울로 이동했고, 나는 나이를 더 먹었지만, 지금 글을 쓰는 내 옆에 놓인 와인잔은 그대로다. 블루투스 스피커에는 즐겨 듣는 Kings of Convenience의 ‘Cayman Islands’가 흘러나온다. 살짝 올라온 취기는 감각을 일깨운다. 손끝에 닿는 키보드의 감촉, 방안을 가득 채운 독특한 무화과 향초의 향기, 입안을 맴도는 진한 와인의 맛.


혼술을 모르는 것은 아무래도, 하루를 마무리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을 모르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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