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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Mar 23. 2018

드라마틱과 거리감, 그 어딘가에서

작가 지망생의 습작(習作) #10

※ 커버 사진은 핀터레스트(pinterest)에서 가져왔습니다.




다들 그런 글귀 하나쯤 있지 않은가. 

책상 맡이나, 다이어리 첫 장에 새겨놓는 말. 곁에 적어 두고 늘 보면서 마음을 다잡는 말. 지난 10년간, 나의 글귀는 ‘드라마틱(Dramatic)’이었다.     


가장 감명 깊게 보았던 드라마는 단연 노희경 작가의 ‘그들이 사는 세상’이다. 그 작품이 왜 좋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하룻밤을 지새울 수 있다. 좋을 수밖에 없는 포인트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도 단 한 가지만 꼽는다면, 작가의 ‘사려 깊은 시선’이다.     

김수진의 에피소드가 담긴 '늙은 배우 이야기'편. 2008년 11월 18일 방영했다.

총 16부작의 드라마는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서사를 세심하게 다루고 있다. 배우 김수진(김자옥)의 에피소드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극 중 김수진은 소위 엄마 역할 전문 배우다. 드라마 속에서 주연급 인물은 아니다. 그러나 작가는 그녀를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김수진의 배우로서,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모습을 꾸밈없이 담아냈다. 그 순간 김수진은 드라마의 조연이 아니라, 탄탄한 서사를 가진 인물로서 시청자의 마음에 자리 잡는다. 작가가 인물을 얼마나 따뜻하고 사려 깊게 바라보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 드라마 이후로 나의 좌우명은 ‘드라마틱(Dramatic)’이 되었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드라마가 있고, 동시에 드라마의 주연이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은 삶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 사실을 알고 상대를 마주하면, 저절로 존중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다. 물론, 나 또한 주인공으로서 존중받아야 하기에, 보다 적극성을 띄고 살 수 있었다.  

             

어떻게든 좌우명을 따르며 살고자 했지만, 가끔 힘든 상황에 부딪혔다. 이 세상 모든 주인공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살기엔 말들이 너무 많았다. 그 말을 모두 소화하기엔 내 귀는 두 개밖에 없었기에 자주 체했다. 마음이 체하면 몸으로 드러나는지, 많이도 앓았다. 어떤 말이 나를 아프게 했는지 이번 글에서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타인의 말이 어떻게 칼이 되어 사람을 찌르는지, 아주 상세하게, 책 한 권은 넘게 묘사할 수 있다는 정도만 기록하고 싶다.




“세상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것이다.... 삶이 사랑과 환희와 성취감으로 채워져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좌절과 슬픔, 상실과 이별 역시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요소임을 받아들인다.” - 유시민, 어떻게 살 것인가, 2013     


뛰어난 공감 능력은 드라마틱을 지향하는 데 있어서 나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 상대를 존중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의 처지를 공감하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과한 공감은 독이었다. 나를 없애고 상대만 남게 했다. 자신의 일에도 마찬가지다. 감정이 격해지면, 나는 사라지고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감정만 남았다. 어떤 변화에도 흐트러지지 않게, 온전히 나로서 존재할 방법이 필요했다.   


거리감을 두는 것이 바로 그 방법이다.

대체로 기쁘고, 행복하지만 가끔 슬프고 비극적인 일도 있을 수 있다. 좌절과 슬픔, 상실과 이별 또한 나의 드라마에 한 축이라는 사실을 알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더라도 나의 삶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중요하다.


일기는 내게 삶과 거리감을 두는 수단이었다. 예기치 못한 에피소드가 일어나면,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일기를 썼다. 토해내듯이 일기를 써 내려가면 묘하게 차분해졌다. 내가 겪은 끔찍한 일이 마치 타인의 일인 듯 느껴졌다. 하얀 종이 위에 가득 새겨진 검은 글자는 나의 이야기지만, 동시에 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후련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이런 기묘한 해방감은, 일기를 통해 나의 비극을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었기 때문이리라.




‘드라마틱과 거리감, 그 어딘가에서’

나의 다이어리 첫 장에는 이제, 지난날과는 조금 달라진 글귀가 자리 잡고 있다. 드라마틱과 거리감, 그 어딘가에서, 절묘하게 중심 잡으며 살아가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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