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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Mar 27. 2018

문득, 소나기가 그리운 밤

작가 지망생의 습작(習作) #13




일비; 봄비. 봄에는 할 일이 많기 때문에 비가 와도 일을 한다는 의미     

비 소식이 있다더니, 이른 새벽부터 추적추적 내렸나 보다. 반가운 봄비가 가득하던 미세먼지를 씻어 주었는지, 창밖 저 멀리 북한산이 봉우리까지 깨끗하게 보인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셔본다. 서늘한 아침의 공기가 몽롱하던 머릿속을 맑게 깨운다. 봄비가 왔으니 나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연휴 내내 미뤘던 집안일이며, 글쓰기 과제며, 할 일이 많다.


청소기를 돌리는 것으로 집안일을 얼추 마무리하고,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연다. 하얀 페이지 위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가만히 바라보며 ‘비’에 대해 생각한다. 같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라도, 다 같은 비는 아니다. 그 형태만큼 이름이 다양하다. 여우비, 가랑비, 도둑비 같은 아름다운 비의 이름을 하나씩 써내려 보다, 결국 마지막은 ‘소나기’에서 생각이 멈춘다.



    

소나기; 갑자기 세차게 쏟아지다가 곧 그치는 비

청소년기에 감명 깊게 보고 읽었던 작품이 나의 감정을 결정하는 것인지, 소나기가 내리는 하늘을 바라볼 때면 항상 마음 한쪽이 저릿하다.   


소나기에 처마 밑으로 몸을 피하던 가을동화의 두 주인공


송혜교, 송승헌 주연의 대 히트 드라마 ‘가을동화’의 명장면이 있다. 두 주인공이 어린 시절, 자전거를 타고 하교하는 길에 소나기가 세차게 쏟아져 홀딱 젖으면서도 마냥 즐겁게 시골길을 달려가는 장면이다. 이내 처마 밑에서 비를 피한다. 쏟아지는 빗소리, 으슬으슬한 추위, 엉겁결에 흘러나오는 속마음. 두 사람 사이의 묘한 감정이 싹트는 순간이다.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소나기로 불어난 개울물을 건너기 위해 소녀를 업고 건너던 소년, 그리고 그 소나기 이후로 만나지 못한 두 사람의 가슴 아픈 첫사랑 이야기.


두 작품으로 인한 소나기에 대한 알 수 없는 애틋함은 현재 진행형이다. 퇴근 시간이 다가올 무렵,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빗소리에 모두 탄식을 내뱉는다.     


“아, 타이밍 한 번 정말. 집에 어떻게 가나.”

“차 엄청 막히겠네요, 또.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 나가죠.”     


하지만 그 날만큼은 나는 정시 퇴근을 한다. 거침없는 빗줄기가 신발을 마음껏 적실지언정, 우산 아래에서 가만히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메말랐던 마음에 감정의 우물이 퐁퐁 샘솟는 기분이다.



  

소나기; 가끔은 궂은비(끄느름하게 오랫동안 내리는 비) 일 수도 있는

대학 4년을 함께 했던 친구, 명선이, 승예, 희애와 자주 가던 카페가 있었다. 작은 2층에 위치한, 다섯 마리의 고양이가 구석구석 자리를 지키고 있던 고양이 카페였다. 이름은 ‘꿈꾸는 다락방’으로, 우린 그곳에서 정말 많은 꿈을 이야기했다.


하루는 갑작스러운 소나기로 비 그칠 때까지만 있자 하며 다락방으로 들어갔다. 요즘에 관심 있는 남자애에서부터 다음 학기에 들을 강의, 진로, 그리고 먼 미래의 꿈까지 마음속 이야기를 풀어놓으니, 시간은 금세 흘러갔다. 비는 소나기가 아니라 궂은비였는지, 그치지 않고 있었다. 우리 중 누구도 비가 그치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소나기; 일상의 쉼표

숨 가쁘게 흐르는 일상 속에서 소나기는 하나의 쉼표다. 퇴근길, 우산 속에서 잠시나마 감성에 젖어들게 해주는 쉼표. 시간에 쫓기지 않고 친구와의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해주는 쉼표. 그래서인지 가끔, 시원하게 소나기가 쏟아졌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일상에 지친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주는 소나기가 종종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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