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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Mar 30. 2018

언제 먹었던 라면이 제일 맛있었어요?

우습지만, 누구나 ‘라면 철학’이 있다.




라면을 먹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라면에 관한 철학이 있다.

라면을 좋아하는 이도, 싫어하는 이도, 그 사이에 있는 이도 라면을 대하는 자신만의 자세가 있다. 첫 번째 그룹에 속하는 J에게는 ‘삼시 세끼’. 두 번째 그룹에 속하는 K에게는 ‘몸 망치는 지름길’. 세 번째 그룹에 속하는 나에게 라면이란, ‘언제 먹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




회식에서 엄청 마신 다음 날 아침 라면은

대충 끓여도 마지막 한 방울까지 핥아먹을 만큼 입맛을 당긴다. 하지만 가끔, 퇴근 후 출출한 저녁에 인터넷에서 황금비율을 찾아가며 끓여낸 라면을 젓가락으로 면만 휘적거리다 변기통에 부어버리기도 한다. 라면 맛을 좌우하는 건 '어떻게 끓이냐'가 아니라, '언제, 어떤 기분으로 먹느냐'이다.


대학 새내기 시절, 과 엠티에서 진탕 술을 마시고 일어나 먹는 라면이 떠오른다. 많은 입을 한꺼번에 먹이기 위해 큰 솥에 라면 10개를 몽땅 넣고 끓여낸다. 라면의 황금비율 따위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조리된 모습이 거의 죽과 비슷한 그것을 종이컵에 덜어 김치도 없이 한입에 털어 넣으면, 원효대사의 해골물이 이랬을까 싶은 짜릿한 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반면, 회사에서 엄청 깨지고, 저녁도 거른 상태로 지독하게 야근을 하고, 겨우 집에 들어와 허기를 채우기 위해 찬장에서 꺼내 든 라면은 어떤가. 이미 눈꺼풀은 천근만근이다.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일인데 굶기는 억울하여 꾸역꾸역 끓여내고, 나름 마트에서 사 온 김치도 꺼낸다. 뽀얀 김이 올라오는 꼬들꼬들한 라면을 김치와 함께 후루룩 한 젓가락 삼킨다. 분명 내가 아는 그 라면 맛인데, 괜히 입안이 까끌까끌하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으면서 이렇게 라면으로 한 끼 때우는 나의 모습이 마치, 관객 하나 없이 어두운 극장에서 홀로 서 있는 무명 배우처럼 느껴진다. 처량한 내 모습에 울컥 쏟아지려는 눈물을 애써 무시하며 라면을 해치우고 얼른 잠자리에 눕는다. 역시나 배가 더부룩하다. 결국, 잠을 설친다.




라면은 누구나 쉽게 나눌 수 있는 대화 주제다.

전날의 숙취를 한 방에 날려주는 라면의 개운함, 홀로 자취방에 앉아 패배감에 씹어 넘기는 라면의 우울함에 대해서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하며 이해 못 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뭐, 있을 수는 있다) 라면만큼 남녀노소, 장르 불문, 많은 사람이 공감대를 가지고 있는 주제를 찾기란 쉽지 않다. 앞으로, 새로운 만남의 대화를 이렇게 시작해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언제 먹었던 라면이 제일 맛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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