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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Apr 08. 2018

벚꽃의 꽃말은 설렘, 그리고 그리움

이맘때면 어쩔 수 없이 조금 쓸쓸해진다.


어김없이 벚꽃의 계절이 돌아왔다.

지역별로 벚꽃이 피는 시기를 지도에 표시한 ‘전국 벚꽃 개화 시기’ 같은 이미지가 단체 카톡방에 올라오고, 인스타그램에도 연일 벚꽃 축제를 다녀온 분홍 찬란한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이맘때면 장범준의 ‘벚꽃엔딩’도 다시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한다. 축제 기간에 비 소식이 들리면, 축제 담당자도 아니면서 괜히 마음이 불안하다.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속으로 기도한다.


이 시기에는 아무것도 안 해도 괜히 마음이 설렌다. 겨우내 움츠리고 있던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사르륵 녹는다. 아직 바람이 조금 쌀쌀하지만, 햇볕은 따사롭고 옷차림도 훨씬 가벼워졌다. 미세먼지 농도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며, 기회만 되면 언제든 사내식당이 아닌 밖에서 점심을 먹기 위해 약속을 잡는다. 사무실에 앉아 일하면서도, 창밖으로 가끔 눈을 돌리며 산책하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올해는 벚꽃을 원 없이 구경하지 못했다.

개화 시기를 기다리며 어느 축제를 가볼까 생각했지만,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았다. 진해 군항제는 서울에서 가기엔 멀어서 패스, 집 근처 동네 벚꽃 축제는 미세먼지가 심해서 패스. 다행히, 지난 수요일에 야근을 마치고 여의도에 강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벚나무 아래를 산책할 수 있었다. 그 날은 밤바람이 조금 쌀쌀하긴 했지만, 공기도 깨끗했고 사람도 많이 없어서 조용히 걷기 좋았다. 밤 열 시가 넘은 시간이라 따뜻한 커피 한 잔 사 마실 가게도 문을 닫았고 노점상도 마감하는 중이었다. 밤이라서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쉽지 않았다. 야근에 찌든 모습을 사진에 남기고 싶지 않기도 했다.     


거리 사진만 왕창 찍어왔다.


전국이 벚꽃 구경에 신이 났는데, 나만 벚꽃과 한참 멀리 있는 것 같았다. 옛날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학창 시절에는 학교마다 벚꽃 나무가 있었다. 등굣길에는 항상 분홍색 꽃잎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꽃길을 따라 걸었었다. 봄, 새 학기, 벚꽃, 그 모든 단어가 주는 설렘이 생생하다. 대학교 캠퍼스에도 곳곳에 벚꽃 나무가 있었다. 공강 시간에 벤치에 앉아 가만히 벚나무를 바라보자면 잠이 솔솔 왔다. 햇볕은 따사로웠고, 잔잔한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슬로 모션으로 촬영한 듯 천천히 흩날리는 분홍 꽃잎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다. 벚꽃의 계절이 오면 어쩔 수 없이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서울에서 회사에 다니면서, 매년 벚꽃 구경을 하기는 했다. 축제를 가거나, 인생 사진을 건지거나 하진 않았지만, 분홍빛으로 물든 거리를 눈에 담았다. 매번 설레고 즐거웠지만, 과거의 벚꽃 추억이 겹치면서 조금 쓸쓸하기도 했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때의 벚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그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던 조금 더 어렸던 시절의 철없는 여유와 낭만이 그리운 것이다.          




분홍의 최고의 조합은 회색이라고 했던가. 

마냥 해맑지만은 않은, 조금 더 성숙해진 나에게 벚꽃은 그때의 설렘과 낭만을 줄 수 없다. 하지만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밤의 어둠에 절묘하게 녹아들어 간 분홍색의 거리, 나란히 잡은 손에서 전해져 오는 온기,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나누는 잔잔한 대화, 이런 것들. 회색 도시에서 맞이하는 분홍 계절에 조금씩 익숙해진다.     




#커버 사진 출처: www.pintere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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