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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영원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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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송이 Sep 11. 2020

영춘과의 만남, 이브

D-1


고양이를 입양하게 되었다.

'집사'라는 역할은 내게 10년이 넘도록 판타지였고, 여전히 그렇다. 신비롭고 사랑스러운 생명을 곁에 두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꿈같으면서도 동시에 부서질까 아플까 불편할까 전전긍긍할 내 모습이 눈에 선하기 때문인데, 그건 아마 고양이에 대한 강렬한 기억 두 가지 때문이 아닐까 한다.




첫 기억은 7~9살 언저리에 있다.

그때 우리 가족은 대구 외곽의 조용하고 작은 동네에 살았는데, 어느 정도로 작냐면 왕소금 구이 앞 녹색 대문 집에는 자식이 셋 있고 그중 둘째가 나인데 오늘 저녁 8시경 어떤 남자애랑 손잡고 걸어가더라는 걸 동네 어른들은 다 알 정도로 작은 규모였다. 정이 많기도 하고 구설수에 오르기도 쉬운 그런 동네. 지금은 아파트가 들어서고 인근에 신도시가 생겨 그때의 모습은 동네 골목골목으로 들어가야만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런 다정한 동네에도 대체 누가 살고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를 건물이 하나 있었다.

집에서 출발해 동네에서 가장 큰 슈퍼로 가려면 꼭 거쳐야 하는 골목이 있었다. 골목 중간에는 녹이 슬어 칠이 벗겨진 검은 철제 대문에 붉은 벽돌 담을 가지고 그 위로는 이름 모를 잎만 무성한 나무가 비죽 튀어나온 건물이 위치했다. 대문 틈 사이로는 그 동네에선 찾기 힘든 널찍한 아스팔트 주차장과 검은 승용차나 봉고차 따위가 드문드문 보였고, 마찬가지로 담과 동일한 붉은 벽돌에 세로로 긴 직사각형 창문이 따닥따닥 붙은, 얼핏 형무소의 느낌을 자아내는 건물이었다. 어린 시절 작은 몸의 기억이라 건물이 무척 크다고 왜곡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뭔가 모르게 우울하고 위압감이 느껴지는 분위기는 또렷하다. 대문 옆에는 어두운 색의 나무 문패에 볼드 효과가 강하게 들어간 검정 궁서체로 무슨 무슨 조합이라고 쓰여있었던 것 같다.


그 건물을 지날 때마다 잔뜩 긴장했던 건 그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곳엔 덩치 큰 진돗개 두 마리가 살고 있었는데, 한 마리는 황토색의 털을 가졌고 다른 한 마리는 까만색과 황토색이 섞였다. 둘의 공통점은 항상 송곳니를 드러내고 침을 흘리며 대문 철창 너머로 으르렁 컹컹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대문이 굳게 닫혀있을 땐 '뛰지 말자. 뛰지 말자...' 하며 스스로 다독이고 지나칠 수 있었는데, 종종 대문이 활짝 열린 순간이 있었다. 건물의 반대편에 바짝 붙어 골목을 걸어다가 보면 몇 미터 전부터 대문이 열렸는지 안 열렸는지 알 수 있는데, 열려 있을 때는 심장이 두 배로 쿵쾅거렸다. 그땐 뒤돌아 가기도 어려운 것이, 대문의 개폐 여부를 알 때쯤이면 두 마리 진돗개는 벌써 냄새를 맡아 잔뜩 으르렁거릴 준비를 하고 마중 나와 있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개는 도망치는 사람을 물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진리라고 여기고 있을 때라 (지금도 그렇다) 뒤돌아 갔다가는 1초 만에 몸집의 절반이 넘는 개들이 나를 타고 오를 것만 같았다. 그런 아슬한 날이 종종 있다가, 결국 사건이 생겼다.


Photo by Cuma Umaç on Unsplash

그날은 대문이 열려 있지만 두 마리의 진돗개는 보이지 않았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건물을 지나치는데 뒤에서 우다다다 하는 급한 발소리와 낮은 컹컹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돌아봤을 땐, 하얗고 까만 털을 가진 턱시도 고양이의 뒤를 두 마리의 개가 바짝 쫓고 있었다. 턱시도 고양이가 애써 담벼락 위로 올라가려던 찰나에 황토색이 이를 드러내고 까만 털을 덮치는 걸 보고, 나는 고개를 돌려 버렸다. 곧이어 우두둑하는 소리가 났는데, 그 와중에도 개가 나를 사냥감으로 여기고 쫓아올까 두려워 달리지도 못한 채 벌벌 떨며 애써 앞으로 한 발자국 씩 걸었다. 그날 하루를 평소와 같이 보냈다. 친구와 놀고, 저녁 즈음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고, 씻고, 누웠다. 그날 내내 머리 한편으로 밀어둔 생각이 덮쳐왔다. 고양이가 죽었을까, 말렸다면 살았을까, 그 개는 왜 고양이를 사냥했을까, 다시 돌아간다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을까.




두 번째 기억은 20대 초반, 대학 친구의 자취방에 있다.

친구는 룸메이트와 함께 살며 길고양이를 한 마리 입양했는데, 하얀 가슴 털에 노란 코트를 걸친 늠름한 치즈 냥이였다. 우리는 그 고양이를 '예쁘니'라고 불렀다. 얼굴이 아주 작고 (고양이 세계에선 대두일수록 미인이라는데, 정확하진 않다) 다리가 우아하게 쭉 뻗은 아이였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아기 고양이여서 소위 말하는 우다다가 아주 심했다. 가끔 친구 집에서 잘 때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취침 전 두어 시간을 바짝 놀아 진을 빼줘야만 인간이 고양이의 채근을 덜 받고 잘 수 있었다. 그런 예쁘니는 서있으면 다리 사이를 지나치며 몸을 비비고, 누워 있으면 다가와 발가락을 깨물다가 다리 사이에 터를 잡고 잠이 들었다. 그 따뜻함과 안정감은 감동이면서 동시에 골목에서 턱시도 고양이를 외면하던 날로 나를 데려갔다.


이런 기억들 덕분인지, 고양이에 대한 나의 마음은 이렇다. 아름답고 따뜻한 생명, 곁에 두고 함께 하고 싶지만 매우 연약하기에 내가 반드시 살려야만 하고, 언제고 나를 떠나면 죽고 싶은 기분이 들 것 같은 존재. 동경과 죄책이 섞인 오묘한 감정이다. 살아있는 생명은 다들 죽지만 나와 함께하던 고양이가 먼저 떠나면 평생을 감옥에서 살아가는 기분이 들 것 같아 두려웠다.




영춘이는 운명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대부분의 묘연이 운명이지만)

마침 나는 지긋지긋한 원룸 생활을 청산하고 빚을 늘려 그나마 집 같은 투룸으로 이사할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고양이와 살 컨디션이 되는 곳으로 이사를 갈 테니, 데려와도 되지 않을까? 하며 인근의 보호소를 찾아보던 중이었다. 주말마다 봉사를 하면서 마음이 맞는 고양이를 데리고 오려했건만... 그렇게 마음먹은 저녁, 단체 카톡 방에 친구가 연락이 왔다.


[혹시, 너희 중에 고양이 입양할 사람 있어?]


그 채팅방에는 나를 포함한 6명의 친구가 있지만 그 말은 무조건 나를 콕 집어하는 말이었다. 어쨌든 그렇고, 나는 홀린 듯이 고양이의 사진을 받고 결정을 내리기 직전에 있었다. 다만, 리치(영춘이의 입양 전 이름)는 러시안 블루에 아기라 인기가 많았고, 내 앞에도 집사 경험이 풍부한 지원자가 3명 정도 더 있었다. 이틀째 친구의 연락이 오지 않아 사라지지 않는 아쉬움을 꾹 누르려 노력하던 참에, 친구가 연락이 왔다. 앞선 3명(이나 되는!) 입양자가 사정이 생겨 진행이 안되었고, 여전히 생각 있냐는 그녀의 물음에 이번에는 고민할 새도 없이 면접 보듯 고양이를 입양하면 어떻게 시간 분배와 재정 관리를 할 것인지 면접 보듯 읊고 있는 내가 있었다.


Photo by Vinicius "amnx" Amano on Unsplash

그리하여, 바로 내일. 나는 (구) 리치 (현) 영춘이를 데리러 대구에 간다. 기차 왕복 3시간이 걸리는 거리라 영춘이가 많이 힘들까 걱정이 되어 안전한 이동장과 폭신한 담요, 캣닢, 캣닢 인형, 간식을 준비했다. 이미 집에는 고양이 화장실, 모래, 숨숨집, 사료 및 간식부터, 곧 이사를 앞둬 캣타워 구매는 여의치 않았기에 임시방편으로 준비한 다양한 사이즈의 박스 등이 가득하다. 동네의 평이 좋은 동물 병원 리스트와 여차하면 이동장을 들고 뛰어갈 수 있는 24시간 병원을 서칭 해뒀고, 방묘창 설치를 완료했다. 영춘 맞이를 위해 그녀가 혹여라도 관심 가지고 놀다 삼킬만한 잡동사니는 깡그리 모아 창고에 묻어둔 상태다. 나 혼자 살 때는 먼지 그까짓 거 대충, 이랬지만 영춘이 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영춘의 기관지에 깨끗한 산소만 넣어주기 위해 구석구석 먼지를 걷어낸 참이다. 그리고 한 시간 전까지, 네이버의 유명 고양이 카페에서 습득한 정보를 토대로 '고양이는 육식동물이다.'를 되뇌며 단백질이 풍부한 올바른 성분의 습식 캔을 찾고 있었다.




영춘의 이름은 길 영(永), 봄 춘(春). 4월 23일 한창인 봄에 태어난 그 애가 오래도록 곁에 머물러주길 바라는 맘을 담았다. 나의 숙제는 영춘이가 먼저 떠날까 두려워만 말고, 모든 시간을 있는 힘껏 사랑해 주는 것이겠지.


나의 영원한 봄. 곧 만나러 갈게.


현재 집사님이 보내주신 (구) 리치, (현) 영춘의 사진. 잠도 예쁘게 자는 모습이다.


# Title photo by Jonathan Rado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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