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일상
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 폭력적인 말에 노출된다. 우리가 주로 화나면 뱉는 욕들, 주로 병x , 등x 등등 다양한 차별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상대방에게 모욕을 준다. 그뿐만이 아니라 특정 계층을 조롱하며 지칭하거나 부모님의 월급으로 자녀들이 서로의 계급을 나누고 사는 장소에 따라 계급을 나눠 차별적이고 공격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차별적이고 공격적인 단어가 무서운 이유는 사회에서 분탕을 일으키기 쉽다. 마치 돼지를 도축하듯, 필요 없는 지방과 인간에게 비 인기인 부위는 버리듯이 사회에서도 차별적인 단어로 똑같은 도축이 이루어진다. 세상은 필요 없는 이상과 사상을 버리고 정신을 잘라낸다. 그리고 돼지고기를 요리에 간편하게끔 썰어 우리 식탁에 오르듯, 정치적 인사와 남성의 세계(기득권 세력)에게 조금이라도 물질적으로 바라는 인간쓰레기들과 편협한 자신을 감추기 위해 선동하는 자들은 거침없이 시민들의 정신을 요리해 권력으로 바꿔줄 것이다. 또한 위기에 처한 시민들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이웃에게 더욱 공격적으로 변모하고 차별을 당하며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 이러한 갈등은 결국 기득권 세력에겐 넥타르 다름없다. 시민들의 갈등과 차별로 먹고사는 인간들에게 더 이상 속지 말고 주위 신음하는 이웃에게 조금이라도 위로를 건네어 우리의 삶을 영위하는 게 사회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최근 페미니즘이 대한민국에서 꽤나 뜨거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유 없이 죽은 여성의 사건으로부터 일상으로 침식된 차별과 성희롱에 더 이상 여성들은 참지 않고 대응하며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공감하며 서로의 상처를 돌봐주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또한 정치적 인사들과 유명 인사들의 저속한 면모가 낱낱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졌고 일상에서 겪는 차별이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차별은 존재한다.
여성들은 결혼 후 출산휴가를 사용하면 자신의 자리가 없어지거나 덩그러니 회사 어딘가 구석이 자기 자리가 된다. 거기에 아이가 혼자 독립적으로 활동하기 전인 단계에선 당연히 육아휴직을 낼 수밖에 없다. 그럼 당연히 한 사람은 아이를 돌봐야 하고 한 사람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회사를 다녀한다. 그렇게 남녀의 차이가 차별로 이어지는 덴 몹시 간단하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시 시작한다? 쉽지 않다. 여성에게 있어 결혼, 임신, 출산, 육아는 삶의 마침표와 같다. 미디어에선 워킹맘이라고 다들 출산 후 몸매 관리하며 다시 드라마나 광고에 나오며 아줌마의 이미지를 벗고 다시 카메라 앞에선 여성 연예인분들이 꽤 계시지만 그건 환상에 불과하다. 자신의 건강과 몸을 회복할 시간 동안 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아이는 맡아줄 사람을 구하면 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당장 생계를 위해서 몸을 회복하기도 전에 육아라는 단계를 밟아야 하고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겨우 자신의 몸을 거울로 확인할 시간이 생긴다. 그럼 처참히 육아에 짓눌린 얼굴과 몸을 확인할 수 있다. 여성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닌 엄마(아이를 혼자 키우는 삶)의 삶을 사는 나를 발견한다. 몸매 관리한다며 음식을 걸러 먹었던 지난 과거는 잊혀지고 아이에게 맛있는 거 먹인다며 자신에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간신히 아이를 낮잠을 자면 그제야 자신도 쉬는 시간이 생기지만 아이가 언제 깰지 모르기 때문에 잠깐 낮잠을 잘 시간이 나질 않는다. 청소, 빨래, 설거지 이 모든 게 집에 있는 성인의 몫인데 왜 여성에게만 책임을 따질까?
남성의 경우도 생각해보자. 회사에 20대 후반에 신입으로 들어가 남들 눈치 보며 자리를 지키려고 애를 쓰다 보면 어느새 결혼 해 있다. 회사 내에서 대리의 직급을 달고 잦은 음주회식과 야근으로 몸을 망가져도 그게 사회생활이라며 애써 위로해 보지만 자신의 인생을 갉아먹으며 살아간다. 치고 오는 어린 신입과 위에서 짓누르는 선배들, 그 선후배와 담배 피며 자신의 과거 어린 시절 잘 나가던, 철없는 시절을 자랑하면서 우정을 다지며 신입 여후배의 얼굴과 몸매를 품평하는 일은 늘어가고, 후배를 나이로 누르며, 선배에겐 구역질 나는 애교로 자신의 위치를 각인시키는 사회가 되었다. 자신을 거울로 봐도 이미 배 나온 아저씨지만 마음만큼은 청춘이랍시고 불륜을 저지르지 않으면 다행이다. 결혼 초반만 해도 아내에게 말했던 모든 결심과 약속은 소화가 되어 변으로 배출된 지 오래다. 주말엔 유일한 휴식을 즐기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다. 가만히 누워 늦잠을 청하려고 해도 아내의 잔소리와 아이들에게 의무적으로 장난감이 되어야 한다. 현재의 외로움과 우울을 뱉어내지 못하고 꾹꾹 삼키며 술로 달래는 인생이 정말로 가장의 인생인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의 입장은 어떨까? 한창 궁금한 것도 많고 에너지가 넘치고 순수할 나이 때 부모님들은 사회와 씨름 중이다. 부모님은 항상 휴식에 목말라 있어 아이들의 열정은 이해하지만 자신의 체력이 받쳐주질 못한다. 엄마는 집안일과 육아로 지치고, 아빠는 회사에서 많은 우울을 담아 저녁에 퇴근해서 단지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어 한다. 그 사이 아이는 점점 독립적으로 혼자서 할 수 있는 놀이를 찾거나 부모에게 떼를 쓰기 마련이다. 부모님이 맞벌이라 조부모와 항상 다니며 부모의 정에 목말라 있을 아이들. 애정결핍이 결국은 아이들을 일찍 철들게 만든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 모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부모의 높은 욕심과 무관심이 아이에겐 큰 상처로 성인이 되어서도 애정으로 인해 방황할 가능성이 높다.
뉴스에선 우리 세계와 동 떨어진 얘길 자주 한다. 다른 나라와 다른 나라끼리의 기싸움, 여야 권력다툼, 유명인사 스캔들, 연예인이 얼마짜리 건물을 샀다는 등 우리 일상에 전혀 관여가 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쏟아지고 있다. 우리는 어느 나라에 테러를 아침밥에 곁들여 먹으며, 북한 도발을 커피 한 잔에 삼키고 강간사건을 러닝머신 뛰며 혀만 끌끌 찰뿐.
“세상은 고요하게 돌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