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나
난 갓난아기 때와 5살 때 엄마에게 버려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정폭력이었다. 물론 갓난아기 때 운다고 맞으려는 걸 엄마가 막아섰다. 그런 사람이 컸다고 안 때릴까? 아니다. 아무튼 당신 꼴리는 대로 사는 인간이니 날 때리는 이유도 그랬을 것이다.
5살 때 우리 집은 특이한 구조였다. 운영하는 가게와 집이 붙어있는 구조였다. 문 하나만 열면 출근이고 문 하나만 닫으면 퇴근이었다. 어느 날 눈을 떴을 땐 밥상이 차려져 있었고 천으로 덮여있었다. 밥상 모서리엔 한 장의 편지가 있었고 난 굳이 안 읽어봐도 엄마의 부재를 알았다. 굳이 엄마를 찾지 않았다. 아버지란 존재가 내 유일한 비빌 언덕이었다. 그 때문인지 술 먹고 조는 아버지를 난 항상 울고불고 매달렸다. 죽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난 죽지 말라고 울으면서 아버질 깨웠던 기억이 있다. 그땐 왜 그랬나 몰라. 지독하게 술을 자시고 난 지독하게 울었다. 그러다 몇 번의 밤이 지나고 아버진 결심했다. 엄마한테 화해를 하러 갔다. 나와 친할머니, 아버지는 외가로 떠났다.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 난 그 당시 뭘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난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건 처음 보는 도시와 하늘 할머니와 아버지가 같이 갔다는 것. 아무래도 어른들끼리 할 얘기가 있었나 보지.
중학생 땐 도어록 버튼 눌리는 소리가 무서웠다. 그 당시 내 눈엔 엄마는 항상 이유 없이 욕을 먹었다. 당장 먹을 김치가 없어서 김장을 하고 있어도 욕을 먹고 내가 있든 없든 욕이 먼저였다. 초등학생부터 고1 때까진 거의 말이 없었다. 아버지와 나의 대화는 그냥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가 전부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가게를 운영하시면서 아침 9시에 출근, 새벽에 술 마시고 들어오니 볼 일이 있나. 그래서 엄마와 주로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으며 난 엄마의 감정 쓰레기 통이었다. 친정에서 온갖 억울했던 일, 부당하게 아버지한테 욕먹은 일, 친가에게 받은 상처들, 모든 이해관계가 엄마로부터 나왔었다. 그래서 난 참 친가를 싫어했다. 당연하다. 모든 일엔 엄마가 피해자였고, 친가는 극악무도한 가해자. 이 정도였다.
하지만 고2가 되면서 내 가치관이 조금씩은 변했다. 엄마에게 보이지 않았던 문제와 의사소통에 있어서 순조롭지 못하고 대화가 진전되지 않았던 아버지. 장남이라곤 하지만 사실 둘째다. 당시엔 장녀보단 둘째가 남자아이라면 장남이라고 했나 본데 참 뭔 의미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형제로부터 보증과 부모님의 빚을 갚으신 건 항상 아버지와 엄마였다. 아버지도 나름 상처가 있었을 테고 그걸 이해해주길 바라며 감싸주길 바랬을 텐데 우리 엄마는 전혀 그런 위로보단 질책을 선택했다. 잘잘못을 따지며 왜 그랬냐는 추궁뿐이었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은 아버지와 유대관계가 생겼다. 엄마와 대화로 안 되는 부분이 아버지와 맞았고 의외로 순조롭게 친해졌다. 좋은 아버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를 꽤나 이해해준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 또한 피해자다. 가해자이자 피해자. 나의 할아버지는 4살에 돌아가셨다. 전혀 살림살이에 신경 안 쓰시고 도박이랑 술을 좋아하셨단다. 그 당시엔 가정폭력이란 단어는 없지만 못지않게 폭력적이셨고 , 대책이 없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아버지 또한 피해자다. 그럼 나도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될 운명이지 않을까? 모른다.
비혼 주의에 가까운 지금의 가치관 덕에 아무래도 내 인생만 망치지 않을까 싶다. 가끔 ‘난 저렇게 살지 말아야지’ , ‘절대 닮지 말아야겠다’라고 다짐을 해도 언뜻 아버지와 비슷한 행동과 말투가 자리 잡았다. 그렇다. 내 의지보다 강한 건 유전자. 그래도 어쩌겠는가. 고쳐야지. 노력 중이다.
최대한 감정을 다스리고 말을 조심하며 단호하게 말하되 부드럽게 말하는 방법을 익히는 중이다. 열심히 해야지. 그래서 책에서 많은 재치를 얻으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과거에 가정폭력이 나만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다. 마치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이 모든 세계라고 생각하듯이 나만의 문제, 내 가족의 문제라고 만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나와 같은 가정을 갖고 살아온 사람들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적어도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었고, 같이 풀어주고 동감해주고, 위로해주고, 안아줄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고마웠다. 위로를 받은 만큼 위로를 주고 싶다. 그렇기에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오늘 지옥과 같은 하루에서 기적을 바라며 살아온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위로와 결코 혼자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도 살아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