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화면

꾸준한 글쓰기란

by 부뚜막위고양이

10분이 지났을까? 깜빡거리는 커서만 바라본 지 벌써 10분이 지났다. ‘단지 글을 뱉어내야겠다, 뭔가 써야 되니 앉아있다.’라는 생각만 갖은 채 빈 화면만 바라보고 있다. 딱히 주제도 심오한 사회현상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지만 내가 어디 평론가도 아니고 짤막한 지식으로 글을 부풀려도 그걸 누가 알아주겠나 싶다. 맞다. 지금은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고 있다. 원래는 뭐라도 생각이 나야 글을 썼다면 지금은 손가락이 움직이는대로 쓰고 있다. 이미 쓰고 있으니 이게 제대로 된 글인가 싶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냥 쓰는 거지.

새로 알게 된 지인이 내게 물었다. 만약 영감이라든지 쓸 주제가 없어지면 어떡하냐고. 흔히 작가들이 겪는 글이 전혀 써지지 않는 일. 그게 나한테도 있냐는 것이다. 부끄럽지만 글을 많이 쓰는 건 아니어서 딱히 영감이나 아직 풀어내지 못한 사건 사고들이 없어서 걱정해본 적은 없지만 문득 그런 얘길 들으니 걱정이 됐다. 그렇다. 그 걱정이 지금 빈 화면으로 나타났다. 아무것도 없이 깜빡거리기만 하는 이 화면. 정말 무섭다. 뭘 쓴다고 해도 금방 지워버리고 엉뚱한 말로 시작하면 뭔가 어색하고 그러자니 누군가에게 어쭙잖게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게을리 사는 사람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기엔 내가 너무 게을러 너무 아플까 봐 참는다. 지인이 물어봤을 땐 그런 일은 아직 겪어보지 못해 잘 모르겠지만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걷는다고 말했다. 사실 나는 책을 읽거나 걸을 때 영감을 자주 얻는다. 하지만 그걸 일일이 기록하지 않는다. 어차피 날아갈 말은 날아가고 남을 말만 남아 다시 생각나고 그러길 반복하면 어느 정도 글을 써야겠다는 느낌이 온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님의 에세이에서 말씀하시길 자신도 소설을 쓰기 위해 일상에서 따로 메모를 하진 않으신다고 하신다. 남을 말과 소제는 남고 날아갈 말들은 날아간다고 하셨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나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은 날아가고 남은 말을 주워 담으면 오히려 더 생각도 명확해지고 글도 깔끔해진다.

원래 글을 쓰는 건 나에겐 산에서 외치는 야호와 같다. 마음에 응어리를 글로 쓰면 그래도 위안이 된다. 그리고 나 자신을 한 번 되돌아볼 기회가 생긴다. 이런 ‘마음이었구나.’ 하고 내 감정을 알게 되고 지나친 행동을 돌아보면서 반성한다. 그렇게 조금 더 나라는 존재를 알아가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나 자신을 직접적으로 바라보려면 거울을 바라보면 되지만 우린 거울 볼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거 같다.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하루 바삐 살아가면 나보단 일에 더 집중하고 잠깐이라도 뇌가 쉬기 위해 멍이라도 때릴까 생각해도 그게 너무 게을리 사는 거 같아 뭐라도 집중해야 되는 나다. 타인들이 워낙에 생산적이고 게을리 살지 않아 상대적으로 나 자신이 게을러 보이고 조급함에 뇌가 쉴 시간을 주지 않았다. 일이 끝나고 집에 오면 쓰러지기 바쁘다. 그 와중에 핸드폰은 손에서 놓지 않고 다른 타인과 연락을 주고받거나 유튜브를 본다. 또 정보를 얻으려 하는 이 습관이 요즘 정말 안 좋은 습관이다. 핸드폰은 멀리 치워두고 그냥 천장 보면서 아무런 생각하지 않아야 하는데 참 그게 어렵다.

아무래도 쉬는 시간이 없다 보니 뭐라도 해야 되는 강박과 효율을 따지게 된다. 쉬는 것도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임하다 보니 지금부터 몇 시까지 뭘 보고 뭘 해야 휴일을 알차게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만 막상 가만히 있는 게 더 몸이 좋아하고 지금 더 행복한 거 같아 아까 했던 계획들은 그냥 계획을 했다는 정도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백예린의 ‘our love is great’ 이란 노래를 들으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영어로 된 가사라 자막 없이는 가사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실 팝송을 누가 가사를 이해하면서 듣나 그냥 멜로디를 듣는 거지.(나.. 만 그래요?) 온스테이지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촬영한 our love is great는 분홍색 화면과 가운데 놓인 육각형이 있다. 육각형 안엔 백예린이 원피스를 입고 리듬을 타며 노래를 부르고 육각형 주위엔 드럼, 베이스, 키보드, 기타 등등 많은 장비와 사람들이 같이 노래를 만들고 있다. 글을 써야 하는 자꾸 눈은 영상을 보게 만든다. 영상에 대한 공부나 이해가 부족한 나도 이 영상은 참 잘 만들었다는 걸 알 정도로 눈도 마음도 편안해지는 영상이다. 심장만 빼고. (예쁘네.) 실제로 한 번이라도 만나봤으면.

아무튼 다시 주제로 넘어가서 (딱히 주제가 정해져 있진 않지만) 요즘은 일상에 무료함을 느낀다. 일 끝나면 밥 먹고 자고 다시 일하러 가는 이 지독한 굴레에 갇혀 언제까지 살아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원하는 나는 작가이다. 작가라고만 하면 앞에 많은 수식어가 붙지만 내가 원하는 작가는 정말 작가라고 불리는 작가다. 이게 뭔 말이냐면 순수한 작가. 즉 글 쓰면서 입에 풀칠하는 사람. 그 사람이 되고 싶다. 아침 8시에 일어나 간단히 아침 챙겨 먹고 랩탑이랑 읽을 책, 필기구, 공책만 챙겨 카페로 가 커피 마시면서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하는 삶. 글을 쓰다가 뇌가 과열되면 책 읽고, 필사하고, 다시 또 글을 쓸 시간이 되면 글 쓰고. 점심도 카페에서 간단히 때우고 저녁때쯤 일어나 서점 한 바퀴 돌고 집에 와 저녁 만들어 먹고 몸이 좀 뻐근하면 산책이나 러닝하고 집에 돌아와 씻고 다시 글을 쓰는 이 생활이 하고 싶다.

지금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지낸다.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을 때 나는 단순하게 아르바이트하고 남은 시간에 글을 쓰며 살아야겠다 결심했다. 근데 이게 쉬운 일이라 생각했지만 절대 그렇진 않았다. 일단 카페에 사람이 많고 일도 의외로 고되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둘째치고 점심시간에 직장인들이 문제다. 정말 카페인의 노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카페를 찾아온다. 물론 커피 음료만 시켜준다면 감사하지만 그렇지 않다. 세상엔 왜 이렇게 많은 음료를 만들어내는 건지 짜증이 나는 순간이다. 얼음에 각종 시럽과 과일을 넣고 갈고, 아이스크림 올리고 휘핑크림도 올리고 과일도 올리고 내 임금은 그대로고.(그래도 좀 올랐다고 하는데 원래 돈은 있어도 부족한 게 돈이다.) 게다가 빵도 팔죠? 파니니도 팔고요? 베이글도 팝니다. 아 조각 케이크도 있고요? 무려 홀케이크도 판답니다? 하하.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바쁘게 주문받고 음료를 만들면 어느새 퇴근시간에 가까워진다. 퇴근하면 ‘진짜 글 써야지. 카페 가서 책도 읽어야지.’라고 항상 다짐하지만 실제로 다짐한 대로 사는 날은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주제 없이 근본 없는 글을 써봤는데 이렇게라도 글이 써지는 것에 감사해야 될지 아무튼 글이 안 써지는 막막함에 너무 두서없는 글을 써서 이상하다. 원래라면 하나의 주제로 쓰거나 시를 썼었는데 이렇게 생각의 흐름대로 쓰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말 아무것도 안 써진다면 생각이 나는 대로 써보려고 한다.(사실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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