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 낀 화장품

엄마의 삶

by 부뚜막위고양이

어느 날 안방에 들어갈 일이 생겼다. 무심코 들어간 안방은 사람의 온기가 부족한 기분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님은 거실에서 주무신다. TV를 거실에 두고 자연스럽게 거실 온돌매트 위에서 주무신다. 그럴 거면 안방이 왜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랜만에 안방에 들어갔다. 침대 위엔 옷들이 가지런히 쌓여있었다. 사실 말이 안방이지 그냥 부모님 옷방이나 다름이 없다. 그 옆엔 먼지 쌓인 화장대가 놓여 있었다. 거기엔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보던 화장품이 있었다. 뚜껑 위에 소복이 쌓인 먼지와 각종 화장품 샘플들이 여기저기 놓여있었다. 생각해보니 엄마는 화장품을 어디서 사는지 궁금했다. 시실 엄마가 어떻게 화장을 하는지 어디서 화장품을 구매하는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몇 번 궁금하긴 했으나 그냥 자연스럽게 잊어버렸다. 그러다 오늘 안방에서 다시 생각났다. 따로 챙겨주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자급자족 어떻게든 살아오신 건지 몰라도 이 화장대가 그동안 엄마의 삶을 대변해주었다. 말하기 민망한 말이지만 집엔 엄마 외에 여자라곤 없으니 엄마가 어디서 화장품을 사야 하는지 알려줄 사람이 없었다. 간혹 엄마가 강남역 거리를 걸을 때 엄마 나이에 맞지 않는 화장품 가게를 들어가자고 종종 그러셨다. 여기서 엄마가 창피하다든가 불편하다는 마음은 든 적은 없다. 당연히 화장품 가게에 들어가는 게 문제가 될 것도 없고 아들이랑 둘이 들어가는 게 이상하다 그런 기분은 느낀 적 없다. 하지만 엄마가 정말 원하는 화장품 가게의 느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가격은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맞춰져 있었다. 엄마가 싸다면서 사는 모습이 정말 이게 맞는 건가 싶었다. 물론 합리적인 소비라면 할 말이 없지만 무언가 이건 아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생신 때나 어쩔 때 화장품 선물을 해드린다. 엄마는 이런 거 다 의미 없다고 화장 잘하지도 않으니 괜찮다고 하시지만 표정은 숨길 수가 없나 보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오히려 더 마음이 아프다. 조금 더 일찍 알아차릴걸, 더 신경 쓸 걸. 미안한 마음에 선물한 게 오히려 더 미안했다. 그리곤 어쩌다 안방에 들어가면 아직 포장을 벗기지 않은 화장품들이 쌓여있다. 선물을 받자마자 선물을 까고 좋아하셨으면 마음이 덜 무거울 텐데 왜 부모님은 쌓아만 두는 걸까.

며칠 전 우연히 엄마의 파우치를 보게 됐다. 거실에서 주무시니 당연히 그 근처에 파우치를 두고 자기 전에 바르신 모양이다. 파우치 위엔 내가 쓰다 버린 로션이 있었다. 병에 아주 살짝 남아 있는 로션이 아까운 모양이었다. 솔직히 좀 충격이었다. 나도 물건을 함부로 버리는 성격은 아니라 정말 쓰고 또 쓰고 더 이상 안 나와서 버린 로션인데 그걸 버리지 않고 쓴다고 거기에 둔 걸까? 그렇게 삶이 어렵지 않은 사람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엄마한테 이걸 왜 쓰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관두었다.

사실 화장품 외에도 이런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보험회사에서 상담 예약을 받으면 사은품을 주는 것들이 한 방에 가득 차 있었던 적이 있다.(지금은 버리거나 팔았다.) 각종 주방용품부터 청소기, 오븐기, 안마기 등등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많았다. 당근 마켓에 파니 꽤 많은 돈이 모이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옷도 어쩌다 홈쇼핑으로 사신다. 세트에 얼마 하는 걸 사신다. 근데 왜 자켓은 털로 된 걸 좋아하시는지 모르겠다. 대부분 옷들은 가성비 혹은 저렴한 옷들을 사신다. 한 번 사면 아마도 한 3,4년 정도 입으신다. 나와는 정말 정 반대이다.

물론 절약한다면 좋은 삶의 자세인지 모르겠으나 우리 엄마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절약하신다. 게다가 인복은 좋으신지 누군가에게 선물도 종종 받으신다. 정말 돈이 문제라면 내가 벌어서 사드리고 싶지만, 충분히 살 능력이 있으신데도 전혀 그렇게 사시지 않으니 좋아해야 되는지 고쳐야 하는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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