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의 노출
20대 초반. 연애 중이었다. 내 여자친구였던 사람은 항상 노출이 있는 옷을 입기를 윈했다. 영하의 날씨 따윈 그녀를 막기엔 턱 없이 부족했다. 영하 날씨임에도 오프숄더 혹은 짧은 치마를 고수했다. 아무래도 나에게 잘 보이고 싶어 입은 옷이겠지만. 장거리 연애라 일주일에 주말만 보는 아침부터 만나 저녁까지 항상 함께하면서 그 시간이 짧다고 서로 툴툴대는 기분 좋은 연애이었다. 항상 걸리는 게 노출이 심한 패션이었다. 내가 싫은 건 다른 남자들이 내 여자 친구를 보는 게 싫었다. 아니 한편으론 약간의 뿌듯함도 있었다. 다른 남자가 내 여자친구의 노출을 보는 게 그렇게나 질투 나고 보기만 해도 오늘 길거리에서 다른 남자들이 내 여자친구를 훔쳐볼 생각 하면 답답했다. 그런 걸 알면서도 그렇게 입는 여자친구한테도 섭섭했다. 만날 때마다 말해봤지만 자기는 이런 옷이 잘 어울려 어쩔 수 없고 옷장에도 이런 옷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니 영하 날씨에 벌벌 떨며 오프숄더를 입은 사람을 이해해줄 사람이 어딨나? 난 항상 버스터미널 안에 있는 매점에서 핫팩을 사 가야 했다. 이건 노출 때문만은 아니었다. 내가 핫팩을 사게 된 건 추운 겨울에 만났기에 아무래도 핫팩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근데 이 핫팩이 이렇게 요긴하게 쓰일 줄이야. 그녀는 도저히 따뜻하게 입을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담요를 항상 들고나갔다. 원래는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는 성격인데도 연애를 하다 보니 여자 친구의 핸드폰, 내 보조배터리, 내 핸드폰, 지갑 등등 바지 주머니와 겉옷 주머니론 턱 없이 부족해져 여자친구를 만나러 나갈 땐 항상 가방을 들고 다녔다. 거기에 담요까지 담아 갔으니 누가 보면 당일치기 여행 가는 줄 알 정도로 의외로 짐이 많아졌다. 그럼 여자친구 가방엔 뭐가 있느냐 당연히 화장품부터 잡다한 것들이 많았다. 의외로 영수증과 과자, 사탕껍질이 많았고 설령 핸드폰을 가방에 넣어도 어느새 홀랑 빠져 길거리에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아무튼 그녀의 노출 패션을 막기 위해 도라에몽 부럽지 않은 가방을 들고 다녔고 담요 2개씩 들고 다녔다. 하나는 머리부터 허리까지, 다른 하나는 허리부터 다리까지. 너무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투피스 담요패션을 하게 된 이유는 영하 날씨에도 기어코 노출하느라 감기에 걸려 데이트 도중 병원에 가게 됐다. 당연히 이 정도면 정신 차리고 따뜻하게 입을 줄 알았던 난 너무 순해 빠진 생각이었다. 감기가 걸렸음에도 다음 데이트 때 또 노출 있는 옷을 입고 왔으니 내가 속이 터져 근처 다이소에 들어가 담요 2개를 산 뒤 바로 덧씌웠다.
이 연애 이후로 생각이 바뀌게 됐다. 타인을 내 성격에 맞춘다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라고. 그리고 상대방을 자연스럽게 놔두고 그 모습을 인정하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상대방을 괴롭히고 있었다는 점이,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단 날 이해해주지 않아 삐진 내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여자친구의 노출을 좋아하는 남자친구는 드물다. 남자친구가 노출을 꺼려하는 이유는 다른 남자들이 내 여자친구를 바라보는 시선이 싫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다른 남자가 내 여자친구를 보며 무슨 상상을 하는지, 여자친구한테 대시를 하진 않을지 걱정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해된다. 누가 봐도 매력 있으니 내가 없는 상황에선 다른 남자가 대시를 하는 게 이상하지 않다. 근데 난 이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다른 남자가 내 여자를 본다는 사실이 불쾌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내 여자친구의 옷을 간섭한다는 게 정말 맞는 걸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확히 불쾌한 대상은 내 여자를 쳐다보는 남자이다. 내 여자친구는 자신의 개성을 들어낼 자유가 있는 존재다. 연애를 한다고 내가 그 자유를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쾌하게 쳐다보는 남자들에게 일일이 “내 여자친구 쳐다봤죠?”라며 쏘아붙일 수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고쳐야 할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다. 불쾌할 수 있지만 내가 원하는 게 여자친구의 자유를 간섭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바라서는 안된다. 오히려 내 여자친구의 개성을 인정해주고 이해해주는 게 더 안정적인 연애를 하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노출이 있는 스타일을 고집하는 여자친구를 바라보는 다른 남자의 시선 혹은 다른 남자에게 대시를 지속적으로 받는 것에 스트레스는 어떡하냐고 묻을 수 있다. 난 가장 고리타분한 대답인 믿어주라는 말 외에 할 말이 없다. 노출이 있는 옷을 입는다고 남자를 함부로 만나지 않을뿐더러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 노출을 택하지 않는다. (물론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입는 사람도 있겠지만) 단지 자기만족을 위해 입을 뿐이다. 아마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내가 없는 곳에서 내 여자친구에게 치근덕대는 남자들을 상상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대부분 여자친구를 믿는다고 하지만 상상 속에선 다른 남자와 연락처를 주고받는 상상하는 자신이 정말 여자친구를 믿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어느 정도 여자친구를 믿고 놔둘 필요가 있다.
연애는 서로를 알아가고 부족한 부분을 맞춰가는 거라고 하지만 애초에 결이 맞지 않은 사람들이 만나서 억지로 맞추고 억지로 이해해하는 척하는 건 사랑이라기보단 착각에 가깝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