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는 가면을 많이 쓰고 있었다. 타인 앞에선 항상 내가 숨어있었고 소극적인 가면을 쓴 뒤 소극적으로 사람을 대했다. 꽤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거리를 좁히기 어려웠고 오히려 거리를 더 벌어졌다. 혼자서 지내는 게 꽤나 외롭고 고요하기만 했다. 하지만 잠깐의 외로움을 견디면 혼자라는 사실이 정말 좋았다. 그래서인지 정말 외롭더라도 잘 견디게 된 탓인지 모른다. 난 밖에선 상당히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다. 존재감이라곤 딱히 없는 편이고 사람들의 시선을 거의 받지 않는, 그런 사람이다. 간혹 나에게 작은 관심이라도 생기면 상당히 부끄러워하고 당황한다. 하지만 편한 사람 앞에선 다르다. 목소리도 커지고, 말도 많아지고, 잘 웃기도 하고,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할 줄 아는 사람이다.
정말 내가 나일 수 있도록 편한 상태를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정말 축복이라 생각한다. 간혹 내가 누구인지 내가 변하지 않고 잘 살고 있는지 의심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일수록 정말 꾸밈없는 나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굳이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아무 말하지 않지만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는 관계. 그런 사람들과 있을 땐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 시간이 빨리 간다는 건 정말 내가 그 사람을 아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정말 불편한 사람과 맞지도 않는 대화를 주고받고 하다 보면 10분이 1시간 같다. 자꾸 시계를 확인하게 되고 상대방 기분이 상하지 않게 적당한 반응을 보내야 하는 그런 자리가 있는 반면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하는 경우도 있다. 말에 말이 붙어 대화가 끊이질 않고 서로 속도에 맞는 대화를 하다 보면 정말 별의별 얘기가 다 나온다. 3,5시간 얘기를 해도 아쉬운 자리도 있다.
나에겐 편한 존재를 물어본다면 틀림없이 엄마다. 아마 나 외에도 많은 분들이 편한 존재로 생각할 수 있는 존재이다. 나에게 엄마는 편하게 내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 대체가 불가능한 존재. 그런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 며칠 전 문득 든 생각은 ‘내가 정말 꾸밈없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구나.’ ‘훗날에 나 혼자가 되면 그땐 진짜 내 모습을 잃어버리지 않을까.’라는 슬픈 생각에 빠진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늦둥이다. 형제라곤 없는 외동에 소극적인 성격 탓에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다. 어쩌면 내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엄마인데 그런 엄마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날이 온다면, 내 모습을 잃어버릴까 봐 무서웠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어 머릿속이 꽤나 복잡했다. 만남이 있다면 언제든 이별을 해야 되는 건 당연한 사실인데 그토록 많은 만남과 이별을 겪어도 이별에 익숙하질 못했다. 그렇다고 엄마를 대신해줄 존재를 찾는다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라 생각한다.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자리를 누가 대신 앉아 준다고 해도 불평만 많아질게 뻔하니 말이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지금 엄마의 존재에 대해 감사하고 더욱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게 적어도 후회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아직까지 서로 건강하고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있으니 말이다. 헤어짐만 생각하고 현재의 감사함을 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어울리지 않게 효도하면서 어색하게 사랑한다고 말하라는 게 맞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평생 상상 속에서, 입안에 맴돌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