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미안해.
2014년 3월 19일 아침. 난 고등학생이었다. 우연히 일찍 일어난 날이기도 했다. 난 방에서 나와 거실로 나왔다. 원래라면 거실엔 엄마가 자고 있어야 하는데 없고 주방에 불이 켜져 있었다. 엄마는 분주히 뭔 만드는 모양이었다. 순간 아버지 생일인가? 생각했지만 아직 아버지 생신은 멀었다. 아무래도 밤늦게 야식 먹은 걸 치우고 계신가 보다 했다. 난 가까이 가봤다. 한쪽엔 미역국이 끓고 있었고 다른 한쪽엔 불고기가 돼 있었다. 엄마는 큰 접시에 잡채를 옮겨 담고 있었다. 아뿔싸. 아버지 생신이 아니라 엄마 생신인 것이다. 그것도 본인 생일상을 스스로 차리고 계시던 거였다. 순간 오늘이 며칠인지 살펴봤다. 달력엔 동그라미조차 돼 있지 않았다. 난 검연쩍은 말투로 생일 축하한다고 말했다. 엄마는 무표정이셨지만 아무래도 마음만큼은 표정만큼 덤덤하신 건 아닌 것 같았다. “응.” 이 한 마디로 조용한 아침을 더 조용하게 만들었다. 거기에서 난 미역국과 불고기 간을 보며 정말 맛있다고 칭찬 외에 할 게 없었다. 정말 죄송한 마음이었다. 어떻게 엄마 생일을 까먹는지. 생각해보면 나와 아버지 생일상은 항상 엄마가 준비하셨다. 근데 엄마 생일날은 어떻게 넘어갔는지 잘 기억이 안 났다. 아무래도 아침은 엄마가 만든 미역국과 반찬으로 때우고 (심지어 각자 아침을 먹거나 했다.) 저녁은 당연히 외식을 하는 패턴으로 그냥 넘어간 모양이다. 정말 난 여태 잘 못 산 기분이었다. 이걸 지금에야 깨달은 것도 문제다. 정말 미안한 감정과 다르게 사과를 못했다. 차라리 미안하다고 했다면, 평소 답지 않게 살갑게 대했다면 그날은 좀 달랐을까 싶다.
난 교복을 입고 다시 밥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엄마에게 같이 먹자 권했지만 뭘 해야 된다며 괜찮다고 먼저 먹으라고 하셨다. 하. 기분이 아직 덜 풀린 모양이다. 그렇게 학교를 다녀와서 바로 과외가 있었다. 그날 하필이면 문제집을 새로 사러 가는 날이었다. 저녁 6시쯤 교보문고를 가던 중 전화가 왔다.
“문수야. 오늘 저녁 어디서 먹을래?”
엄마가 밝은 목소리로 물어봤다. 근데 문제는 내가 엄마 생신이었다는 사실을 그새 까먹은 거다.
“아.. 오늘 밥 같이 먹어야 돼? 다음에 먹지..”
라고 실언을 뱉었다.
“얘 오늘 밥 안 먹는다는데 어떡해?”
엄마는 애써 서운한 감정을 꾹꾹 참아가며 옆에 계신 아버지한테 물어봤다. 놀란 아버지는 바로 전화를 바꿔서
“야 인마. 오늘 엄마 생일이야. 너 어딘데?”
‘헐. 망했다.’ 정말 10초간 이 생각만 했다. 선생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눈에 보이는 화장품 매장에 들어가 화장품 세트를 산 뒤 바로 집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엄마는 내가 생각한 만큼 화가 나 있지 않았다. (아니면 내가 미안해할까 봐 참고 계셨을 수도..) 다행히 외식 후 집에 돌아가기 전에 케이크를 사고 집에서 조촐하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를 나눠먹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정말 그날 미안한 마음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 뒤로 엄마의 생신상은 항상 내가 차려왔다. 정말 대단한 건 없지만 그래도 누군가 내 생일날 밥을 지어주는 게 꽤 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여태 그걸 당연하게 생각한 내가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엔 당연한 게 없는 건데.
얼마 전에 엄마의 63번째의 생신이었다. 부디 이 생신상을 오랫동안 차려드릴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