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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램프 Jul 14. 2023

10년 만에 면접, 망했습니다...

아침에 밥을 먹고 있는데, 내일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를 갑자기 받았다. 밝고 명랑한 분의 목소리에는 친절함과 내일 면접 시간에 절대 늦으면 안 된다는 당부와 여러 일로 인해서 바쁜 다급함이 고루 섞여 있었다. 이미 1차 서류면접은 저번주에 발표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별로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내일 면접을 보러 오라는 소리에 내가 준비해갈 것은 없는지를 물어보았고, 전화하시는 분의 직함을 몰라 나의 질문은 머뭇머뭇거렸다. 짧게 시강 준비를 해 오라는 말에 나는 알았다고 답했고, 전화를 끊고 나서는 내가 괜한 곳에 서류를 넣은 것은 아닌가 잠시 후회도 했다. 기존에 내가 하던 분야와는 달리 초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는 영어체험센터수업이었고, 나름 TESOL 자격증도 있었기 때문에 원서를 제출할 때는 새로운 일을 배우자는 취지도 있었다. 하지만 저번주에 연락이 없어 나는 이곳은 나의 자리가 아니었나 보다 하고 이미 마음의 정리를 하고 있었다.


이미 전화에는 답을 한 상황이었기에 몇 년 전에 TESOL 준비하면서 구매했던 교재들을 쭈욱 꺼내놓고 살펴보기 시작했다. 문제는 시강의 포커스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를 몰라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일반적인 중, 고등학생, 아니면 편입이나 성인을 대상으로 영어강의를 하다 초등학교 학생들의 영어체험센터에서의 수업을 생각해 보니, 요즘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잘 알지 못하고 있었고, 학교에서도 초등학교 수업의 경험이 있는 분을 원하실 텐데 내가 그 분야에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니 시강 준비를 하면서도 자신감이 점점 떨어졌다.


나는 실은 면접을 정말 많이 보았다. 학원 강사라면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하다못해 EBS 수능 영어강의에도 욕심이 나서 나는 매년 시험을 보았고, 떨어질 때마다 "어떻게 하면 다음에 내가 붙을 수 있겠구나."라는 가이드라인을 나 혼자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정말 그다음 해에는 EBS방송 고등부 영어강사로 뽑혔고, 내가 원하던 강의를 방송할 수 있었던 행운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내일의 면접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가닥이 잡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도전은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궁금했다. 지금까지 내가 하던 분야와는 다르기도 하지만 TESOL에서 배운 부분을 수업에 적용할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거의 백수생활에 한참 지치고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나를 잡아줄 수 있는 동아줄을 붙잡는 심정으로 준비했고, 마음이 설레기도 했었다.


그다음 날...




장마철인 거 나도 안다. 나도 아는데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 심한 거 아닌가 싶었다. 하늘에 구멍이 났나 베란다로 하늘을 쳐다보기도 하고, 면접 가는 날 비가 이렇게 억수로 오면 가는 동안에 나는 쫄딱 젖어버릴 것 아닌가... 특히나 가방은 노트북과 소지품으로 무거운데,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특히나 초행길에 길을 헤맬 것을 생각하니 아... 면접을 보러 가는 길도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럴 때 '오빠찬스'가 있지 않은가... 나는 슬쩍 오빠에게 면접장까지 데려다줄 것을 부탁했는데, 나의 오빠가 보기에도 하늘의 비가 너무 억수로 쏟아져서인지 오케이 사인을 주었고, 1시간이 걸리는 힘든 여정은 가볍게 30분으로 줄어들어 면접장에 일찍 도착할 수 있었다. 절대 늦으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하던 팀장님 말대로 나는 30분 일찍 도착해서 면접장에 앉아있었다.


마침 다른 한 분이 들어오셨는데, 그분도 오늘 면접을 보러 오셨다길래 나는 긴장되기도 하고, 잘 모르는 것이 많아 이것저것 물어보게 되었다. 고맙게도 그분께서는 자신이 아는 한에서 친절히 대답을 해 주셨고, 둘이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아... 나는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그분께서는 영어체험센터에서 근무를 한 경험도 있었고, 이미 다른 학교에 원서를 넣으실 만큼 이쪽 분야를 잘 알고 계시는 분이었다. 나는 아차 싶었다. 내가 면접관이라고 해도 새롭게 교육을 시킬 선생님을 뽑기보다는 이미 경력이 있어 어느 정도 학생들을 관리할 수 있는 경력자를 뽑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니 그분이 살짝 부럽기도 하고, 면접은 어떻게 치러야 하나 걱정도 들기 시작했다. 나는 마지막 순서로 면접을 보았기 때문에 기다리는 와중에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하지만 이미 이곳에 왔으니 최선을 다하고 돌아가야 후회는 하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을 다시 한번 다잡았다.


면접 교실에 들어가니 세분의 선생님이 앉아 계셨고, 나는 익숙하지 않은 컴퓨터에 USB를 꽂고 파워포인트를 작동시켰다. 안타깝게도 파워포인트를 넘겨주는 핀포인트 기계가 고장이 나서 일일이 마우스로 클릭하며 불편하게 시강을 해 나갔다. 하면서도 느낌이 온다! "아... 망했구나!" 하지만 중간에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나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시강을 끝내고 자리에 착석해서 선생님들의 질문을 받았다. 역시나 초등학교 수업에 대한 나의 '경험 없음'에 대한 질문이 제일 먼저 나왔다. 그리고 가장 기본이 되는 단어와 품사에 대해서 시강했으나, 오히려 그 부분은 건너뛰고 생활영어를 준비했어야 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미 이 면접은 내 손을 떠나갔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면접을 많이 하다 보면 알 수 있다. 내가 붙을지 아니면 떨어질지를... 나는 이미 답이 나온 자리에 앉아 있기가 불편했지만 이 또한 삶에서 내가 경험해야 할 일부분이라는 것을 알기에 담담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면접장을 나오면서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왜 내가 이 상황까지 왔으며,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등등... 만약 인생이 60까지 라면 난 아마 지금 엄청 신나게 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정말 100세 시대이지 않은가.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사람이라는 자존감을 세우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학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나는 거대한 학원 시스템에 하나의 나사의 불과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게 그렇게 사람을 작아지게 만든다. 나는 있어도 없어도 되는 사람인가 하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고, 내가 발전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사는 재미가 없어진다.


어쨌든... 나의 망한 면접에 대해서 글을 적다 보니 그래도 잘 갔다 왔다는 생각이 든다. 경험치가 하나 더 늘었고, 내가 몰랐던 분야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고, 점점 줄어드는 자신감에 그래도 할 수 있다고 나 자신을 격려하면서 다시 내 몸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준비가 된 것 같다. 장마에 조금은 우울해질 수 있는 요즘이지만 나는 달달하고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며 다시 내일을 준비하려 한다.




 

누구나 자기 미래의 꿈에 계속 또 다른 꿈을 더해나가는 적극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현재의 작은 성취에 만족하거나 소소한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다음에 이어질지 모를 장벽을 걱정하며 미래를 향한 발걸음을 멈춰서는 안 된다. -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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