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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램프 Jul 12. 2023

빛이 작살처럼 내리 꽂힌다는 것은...

김영하 작가님의 '오래 준비해 온 대답'을 읽고 있었다. 실은 이미 몇 년 전에 읽은 책이었지만, 다시 읽고 싶어서 도서관에서 빌렸고, 읽으면서도 아... 이런 내용이었지 하면서 혼자 웃음 지으며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 '지중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시칠리아와는 전혀 상관없는 나의 여행을 떠올리게 되었다. 단지 '빛이 작살처럼 내리 꽂힌다는 것은'이라는 부분을 읽었을 뿐이었는데, 제목을 읽자마자 나는 이미 폐티예의 지중해 바다를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작년 나는 터키를 한 달 정도 여행했고, 유럽 여러 국가들도 버스를 이용해서 이동하며, 나만의 배낭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특히 터키에서의 배낭여행은 내 인생의 있어서 가장 중요한 터닝포인트라 할 수 있는 여행이었고, 터키의 이스탄불을 시작으로 카이세리, 카파도키아, 콘야, 안탈리아, 이즈미르, 파묵칼레, 차나칼레, 에디르네까지 터키의 전국방방곡곡을 버스를 이용해서 돌아다니는 행운을 누릴 수가 있었다. (물론 고생은 덤이었지만...^^)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파란 지중해!

그중에서도 지중해의 빛이 작살처럼 내리 꽂히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 지역은 바로 '페티예'라고 할 수 있었다. 바다도 파랗고, 하늘도 파랗고, 특히 하루종일 바다 해안가 근처 파라솔을 빌려 그동안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을 푸지게 읽으면서, 잠이 오면 슬쩍 파란 바다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즐거움도 있었고, 패러글라이딩으로 워낙 유명한 곳이기에 푸른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형형색색의 사람들의 비상도 바라보는 매력이 넘치는 곳이었다. 그러다 정말 바라보는 것이 지겨워지면, 직접 일어나 물속으로 풍덩 들어가 '폐티예'에서 구매한 보라튜브에 매달려 지중해를 온몸으로 느끼기도 했다.


버스로 전국을 이동하는 힘든 여행이었고, '폐티예'에서도 특히 더 안쪽으로 들어간 '욀뤼데니즈'에 도착한 우리는 실은 정말 많이 지쳐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그 모든 힘듦을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의 아름다움 풍경과 바다와 멋진 산들, 그리고 정말 마음씨 따뜻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동안의 여독을 풀며, 와! 진짜 여행을 오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터키여행을 계획했을 때 이렇게 오래 돌아다닐 거라 생각하지 못했었다. 원래 여행을 떠나올 때부터 일정 따위는 없었고, 딱 첫날 머무를 호텔만 정해놓고 비행기 티켓만 끊고 떠난 여행이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머물면서 터키의 매력의 점차 빠져들었고, 처음 생각과는 달리 지도를 보며 우리는 그다음 '행선지'를 그 자리에서 정하고 (미리 정해진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행선지가 정해지고 나면, 버스차편과 에어비앤비 숙소를 예약하고, 책과 인터넷을 찾으며 새로운 장소에서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호기심과 흥분으로 배낭여행을 이어나갔다.


지금에 돌이켜 보니, 더운 지중해 날씨를 뚫고 그 무거운 가방을 메고, 어떻게 육로를 이용해 버스로 여행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은 우리가 젊다고 생각했기에, 그리고 이런 경험들을 쉽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우리는 말 그대로 고생을 사서 하며 여행을 이어나갔던 것이다. 아마... 내가 김영하 작가님의 책을 읽으며 나의 터키여행을 떠올린 이유는 멋진 지중해의 풍광을 잊을 수 없음도 있었겠지만, '오래 준비해 온 대답'에서 이탈리아 기차여행에서 매번 기차가 파업으로 운행이 취소되면서 겪었던 힘든 일들이 실은 우리의 여행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래 준비해 온 대답'에서처럼, 터키에서 나는 맛있는 음식과 거칠고 순박한 사람들을 만났으며,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매력으로 가득한 오래된 유적지와 어지러운 거리들을 잊을 수 없었다. 터키가 현재의 삶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법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오늘 하루의 일상의 소소한 어려움들을 버틸 수 있는 힘을 나는 얻었다고 생각한다.



김영하 작가님의 [오래 준비해 온 대답]중에서...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풍경은 그대로 한 인간의 가슴으로 들어와 맹장이나 발가락처럼 몸의 일부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가볍게 전해줄 수 없는 그 무엇이 되어버린다... 그렇듯, 풍경의 장엄함도 우리 몸 어딘가에, 그 자체의 생명을 가진 채 깃든다고 믿는다.
12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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