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양이램프 Jul 27. 2023

여름에는 매일 보리차를 끓입니다.

학원에서 내 별명은 '물먹는 하마'였다. 물론 별명이라는 것이 꼭 그 사람의 마음에 들 필요는 없지만, 학생들이 보기에 늘 물병을 손에 들고 다니며 물을 마시는 모습이 분명 '물먹는 하마'처럼 보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게 매일 꾸준히 물을 먹었던 이유는 피부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목을 위해서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루 8시간을 수업하다 보면 목이 마르다 못해 쩍쩍 갈라져서, 만약 몸이 피곤하기라도 하면 다른 부위는 괜찮지만 제일 먼저 목이 칼칼하고 따끔거리고 아프기 때문에 늘 물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물을 애용하는 나도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끊임없이 나오는 페트병은 솔직히 마음의 짐이었다. 2018년에 처음으로 zero-waste를 알게 되었고 Lauren Singer의 유튜브를 찾아보게 되었다. 그때 아직 한국에는 들어오지 않았던 zero-waste라는 개념은 신선한 충격이었고, 나도 그렇게 쓰레기를 완전히 없앨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Lauren Singer을 따라한 적도 있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현실은 쓰레기를 줄이는 것이 정말 너무나 힘든 플라스틱 천국이었고, 그중의 내 쓰레기 일등공신은 뭐니 뭐니 해도 매주 쏟아져 나오는 물병들... 이 페트병들이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고 있었다.


브리타정수기 (출처 : Pinterest)

그렇다고 '물먹는 하마'가 물을 마시지 않을 수도 없었고, 정수기를 따로 설치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을 때 고민고민하다 찾은 것이 바로 '브리타 정수기'였다. 전기세가 따로 들 필요도 없는 수동에, 내가 직접 깨끗하게 세척해서 필터만 교체하여 사용한다는 아이디어가 맘에 들었다. 그리고 생수로 마시는 물만 아니라 집에서 요리를 할 때도 사용할 수 있고, 통 자체도 반영구적이라는 생각에 뭔가 환경에 도움도 되고 내가 좋아하는 물도 많이 마실 수 있겠구나 싶어 바로 구매버튼을 누르게 되었다.


그리고 2023년 현재까지 난 브리타 정수기를 매일 사용하고 있다. 중간에 플라스틱 통이 금이 가는 바람에 새로 하나를 더 구매했지만 (반영구적으로 튼튼한 것 같지는 않다 ㅠㅠ) 평소에 내가 배출하던 플라스틱 페트병이 사라졌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마음의 짐은 훨씬 가벼워졌다. 그런데...


문제는 물이 생각보다 맛있지 않다는 데 있다. 뭐랄까... 더운 여름날 목이 너무 타들어가 이 더위를 날려줄 수 있는 청량감이 나에게는 정말 너무나 필요했다. 그렇다고 페트병 물을 다시 구매할 의사는 아직은 없다. 어떻게 할까 고민고민하다가 '보리차'를 끓여서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보리차는 어렸을 때의 추억의 음식처럼 애잔한 기억이 남는다. 특히 어렸을 때 학교에 갈 때 얼려 놓은 보리차물을 가지고 간 날은 아무리 더워도 그 물병만 있으면 하루가 시원해서 살맛이 났다. 특히 체육시간이 겹친 날이라면 교실에 들어와 벌컥벌컥 마신 그 물맛이 난 그리웠던 것 같다. 그래서... 조금은 번거로울 수 있지만 이 더운 여름에 보리차를 끓여 물을 식힌 다음 차갑게 저장한 보리차를 나는 매일 마시고 있다.


그래... 솔직히 처음에는 번거로웠다. 귀찮았다. 하지만 차갑게 만든 보리차 한 컵은 브리타 정수기에게는 미안하지만 나에게 최애 애장품으로 등극했고, 매일 저녁 나는 냄비에 동서식품 보리차 한 팩을 넣고 물을 팔팔 끓인다. 설명서에는 물을 다 끓이고 나서 보리차팩을 넣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데, 왠지 한소끔 끓이고 나서 식히는 것이 더 맘에 들어 일부러 손이 한 번 더 가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다음 물을 식혀야 한다. 바로 냉장고에 넣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일부러 저녁에 끓여놓은 거다. 이렇게 하면 자기 전에는 물이 식어서 냉장고 물병에 넣어놓고 자기만 하면 내일 아침 나는 시원한 보리차 한 컵을 뿌듯하게 마실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매일 저녁 산책을 나갈 때마다 얼려놓은 보리차 물은 꼭 갖고 나간다. 보라매공원에서 '맷돌체조'를 할 때 이 더운 날씨에 중간중간 시원한 보리차 한 모금을 마시지 않으면 탈진할 수도 있기에 그리고 얼려놓은 보리차를 갖고 나가지 않은 날은 꼭 아이스커피나 스무디 같은 제품을 사 먹기 때문에, 필요 없는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나의 작은 번거로움이 이 여름에 꼭 필요하다.

나의 시원한 보리차 물병과 손수건





작가의 이전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