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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램프 Jul 25. 2023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체적으로 일을 딱 1년 쉬고 보니, 언젠가부터 불안한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아직 학원 계약이 남아 있어 언제나 시간표에는 내 이름이 올라가고 있기는 하다.)


학원의 권력에 휘둘리느라 너무 너덜너덜 해져버린 나의 몸과 마음에 1년간의 안식년은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했기에, 당장 들어오는 월급이 없어도 사실 난 그렇게 마음이 불안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에게 명품백이나 비싼 옷을 선물할 여유는 되지 않는다 해도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시간'만큼은 선물할 수 있겠다 싶었다. 대학교 때부터 하루에 5~6시간만 자던 나였기에 잠이 부족해서 늘상 피곤했고, 학원 강의를 하면서 매년 새로운 책을 만들고 개정판을 준비해야 했기에 언제나 시간에 쫓기면서 살았었다. 실은 세상에서 시간 부자가 제일 부러웠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그러다..

1년이 딱 지나가는 시점이 되자 세상 여유만만하던 내가 이제는 슬슬 불안해졌다. 살짝 '사람인'이나 '잡코리아'에 들어가 보니 이미 내 나이대에 선택할 수 있는 일은 점점 줄어가고 있었고, 학원 이외에 다른 일들을 하면서 세상 경험을 쌓아가고 싶은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면접 한번 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세상 마음 편하게 쉬다가 내가 일을 다시 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해도 일을 구하기가 어쩌면 쉽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내 나이는 어디 회사를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회사를 차려 운영을 해야 하는 나이대에 접어든 것이었다.




이렇게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나는 책으로 숨어드는 경향이 있다. 솔직히 너무 힘들 때는 '태백산맥' 같이 장기간 몰입할 수 있는 책을 붙들고 현실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잠시 고민을 잊고 여행을 다녀오듯 책을 탐하게 된다. 물론 그런다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잠시 나와 내가 고민하는 문제를 분리하여 마치 내가 제삼자가 된 것처럼 문제를 바라보는 연습을 하게 된다. 1년간의 자체적인 안식년이 지나갈 무렵 나는 다시 불안한 마음에 책으로 도망치듯 빠져들었고, 무슨 글을 보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보게 되었다. (내가 책 제목을 적어놨어야 했는데... 다시 찾아보니 나의 메모장에는 이 글만 적혀 있었다.)


이 문구를 다시 찬찬히 읽어보니 머리에 땡~ 하면서 뭔가 계시가 느껴지는 듯했다. 내가 불안하다는 것은 내가 지금 움직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 내가 돈이 없어서 불안하면 돈을 벌면 되는 것이고, 내가 나의 커리어가 멈출까 두렵다면 다시 일을 시작해서 나의 커리어를 쌓아가면 되는 것이다. 학원 강사로서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면 다른 일을 배워서라도 경력을 쌓으면 되는 거고... 가만히 있으면 정말 아무 일도 나에게 일어나지 않겠구나 하는 짧은 깨달음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 즈음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내가 50, 60이 돼서도 계속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정말 앞으로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내가 파이어족이 될 만큼 자산을 많이 쌓아 놓았다면 탱자탱자 놀겠지만, 또 그런 돈을 다 모아놓았다고 해서 노는 것 만으로 내가 내 삶의 자긍심을 가지고 만족해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무슨 정말 대단한 인물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하나의 개별적인 존재가 사회에 이바지하고 내 삶의 만족감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나의 삶에 이롭지 않을까...


정리되지 않은 나의 머릿속에는 별별 생각들이 다 떠오르고 이제는 슬슬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기본적인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니 일을 구해 보자는 생각을 했다. 일례로 10년 만에 면접을 보았지만 똑... 떨어졌다는 말을 저번 글에서 밝혔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매일 이력서를 하나씩 적어서 보내고 있다. 안타깝게도 면접 한번 보자는 말은 아직까지 없었지만, 그동안 살면서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하나씩 용기 내어 '작은 도전들'을 이어갈까 생각 중이다.


그리고 9월부터는 번역 공부를 더 해볼까 하는 마음에 아카데미에 등록도 하였다. 시험을 대비한 영어서적을 출간하긴 했었지만 번역에 대한 부분은 아직은 내가 더 배울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물론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배우면서 실전을 직접 경험하고 싶어서 조심스레 한 발을 내디뎌 보려 한다.


이 밖에도 지금은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나의 소원 중의 하나가 글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는데, 아직은 맛깔나게 글을 써내려 가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한 글자씩 적어 내려 갈 때마다 가슴이 벅차고 설레기까지 하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기에, 그래서 내가 도전할 영역들이 많이 남아있기에, 불안한 마음의 에너지를 역으로 활용해서 조금씩 움직여 보려 한다. 결국은 이러한 불안감이 삶을 이어나가게 하는 '원동력'이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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