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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램프 Aug 10. 2023

노들섬의 야경 본 적 있으세요?




저번주는 일주일 내내 35도를 기록하는 날씨였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맛있게 챙겨 먹고(?) 비가 아주 많이 내리지 않는 이상 매일 저녁 산책을 나가고 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차가운 보리차를 손수건에 돌돌 말아서 열대야로 더운 저녁 산책길에 목도 축이면서 만보 걷기를 이어가고 있다.


산책의 시작은 이랬다.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거나 각자의 일을 하느라 굳어져버린 몸을 풀기 위해서 가볍게 걷기를 했던 건데, 자전거를 타고 보라매 공원을 거의 매일 가다 보니 가끔은 새로운 루트를 찾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주변에 노량진으로 걸어내려 가는 길도 있고, 아파트 둘레 산책길도 있지만 더위에 너무 시달리다 보니 오늘만큼은 다른 길로 가자고 마음을 먹었다. (좀 더 시원한 길...) 그래서 선택한 산책길이 한강대교를 건너 노들섬에 가보는 것이었다.


저녁을 만들어 먹고, 설거지까지 하고 나면 이 더위에 이미 녹초가 되기 때문에 노들섬까지 가는 것을 포기할까도 했지만 오늘은 오빠가 꼭 가보자며 아이처럼 보채기 시작했다.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이 더위에 길을 나서 보았다. 그런데... 한강대교를 건널 때까지만 해도 투덜거리던 내가, 노들섬으로 들어와 한강 주변을 걸어보니 아... 신세계였다. 아무리 날씨가 더워도 강 옆은 시원하고 운치도 있었던 것이다.


더 솔직히 말하면 갑자기 여행을 온 듯한 느낌도 들었다. 서울에 살면서 물가 주변에 자주 갈 일이 없었는데, 이 밤 이렇게 노들섬을 산책하다 보니 어디 지방에 여름휴가를 간 듯 풍경들이 신선하기도 하고, 내 마음도 말랑거리기 시작했다. 이럴 땐 쉽게 꺼내지 못했던 마음에 있는 소리도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우리 둘 다 매일을 '존버'하고 있기에 요즘은 서울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까 하는 마음도 살짝 생기고 있다.


강을 바라보니 '부산'이야기가 나왔다. 아직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모르겠지만, 햇수로 18년 결혼생활동안 서울을 떠나본 적이 없는 우리가 다른 곳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가정들을 해 보았다. 지금까지 둘 다 직장이 서울이었기에 그동안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지금의 숨 고르기 이후에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굳이 서울에 터를 잡고 있을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물론 오빠는 고향이 부산이기에 오히려 반기는 눈치였지만, 나는 머리로는 이해가 되면서 내가 내려가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자칫 무거운 쪽으로 흘러갈 수 있는 대화가 왠지 강물을 바라보니, 인생이 꼭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닌데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남겨놓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산책을 하면서 바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아니지만, 잔잔한 강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이미 그 물결을 따라가고 있었다.


언제나 하루에도 몇 번씩 나의 마음은 요동친다. 하지만 흔들리는 오늘이 소중한 이유는 답이 나오지 않아도, 답이 나오지 않아 헤매는 일이 있어도, 그것은 내가 노력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그의 말대로 삶의 많은 문제에서 심각해지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분별하려 한다. 이 밤, 노들섬 야경을 보며 아직 결정되지 않은 나의 미래를 불안해하기 보다는 나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허비하지 않고 감사하려 한다.


P.S. 수첩을 찾아보니 위의 말을 한 작가는 '기시미 이치로' 작가입니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으로 유명한 분인데요, 저는 최근에 <다시 피어나려 흔들리는 당신에게>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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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섬 야경, 여행을 떠나온 듯 아름다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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