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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양이램프 Oct 15. 2023

이제 곧 나는 입원을 한다.

전화로 이야기할 수 없었다. 

다행히 암은 아니지만 작은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무심코 전화로 이야기할 자신이 없었다. 오히려 시부모님에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결혼 18년 동안 시부모님이 내게 보여준 무한한 신뢰와 사랑은 내게는 친부모만큼이나 소중한 것이었고, 나의 힘듦을 가감 없이 표현할 수 있을 만큼 그분들에 대한 나의 믿음도 굳건했기에, "어머니 저 수술해야 한데요."라고 했을 때, 위로와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부모님에게는 차마 이야기할 수 없었다. 

우선 두 분의 사이가 좋지 않아 다른 곳에 관심을 둘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으실 것 같았고, 특히나 나의 엄마는 너무 드센 분이라 맘 편하게 나의 힘듦과 아픔을 나누기엔 엄마의 삶이 더 중요했기에, 나는 그냥 조용히 수술하고 와서 이야기해야지 마음먹고 있었다. 


하지만 저번 주 동생을 만났을 때, "언니 그래도 이야기는 해야 하지 않겠어?'라는 말에 그래 말하는 것이 좋겠지...라고 생각했고, 그다음 주 일요일에 부모님을 만나러 가기로 약속했었다. 




오래간만에 친정에 가는 길은, 많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져서 그런지 설렘보다는 걱정이 끊이지 않는 길이였다. 물론 겉으로 봤을 때 나의 모습은 평온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 사이 나이가 더 들었을 부모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고, 거기다 몸이 좋지 않아 작은 수술을 받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려니, 차라리 차를 돌려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원래 고향집으로 바로 직행해야 하는데, 중간 지점에 있는 식당으로 동생이 아빠를 모시고 나온다고 해서 같이 점심을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조금 일찍 도착한 나와 남편은 주변 공원을 산책하며, 아빠와 동생네 식구가 오기를 기다렸다. 

청성역사공원 : 아직 가을은 아니었지만 가을이 기대되는 맑은 하늘빛의 공원이었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아빠는 정말 그 사이 나이가 더 들어 보이셨다. 아빠는 평소 자주 만났던 것처럼 담담하게 "큰딸~"이라고 나를 부르셨고, 요즘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 같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큰 소리로 반가운 인사를 했다. 평소 그리 스킨십이 있는 내가 아니지만, 오래간만에 아빠 손을 꼭 잡아드렸다. 그리고 굳이 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오래간만에 아빠를 만나니 기쁜 마음도 있었지만, 엄마와 아빠가 그동안 꽤 오래 사이가 좋지 않으셔서 마음 고생 하셨을 것을 생각하니 괜히 맘이 짠했다. 


결혼하기 전까지 부모님이 싸우면 무조건 엄마 편을 들었는데, 이상하게도 나이를 먹어가니 아빠에 대한 마음이 더 커졌다. 엄마는 나를 앉혀놓고 자신의 분을 삭이지 못해 아빠를 욕하기라도 하지만, 아빠는 나를 앉혀놓고 엄마에 대한 하소연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원인과 이유를 따지지도 않고 그때 엄마를 두둔하며 아빠를 몰아세웠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어쩌면 한 번도 자신의 편을 들지 않았을 큰 딸이 아빠는 많이 서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혼자 별별 생각을 다하며, 식사를 하는 와중에 말할 타이밍을 눈치껏 보고 있었다. 오빠는 부모님 걱정하시는데 굳이 이야기하지 말라 했지만, 그래도 나중에 아시면 더 서운하실 것 같아, 최대한 밝게 웃으며, 별거 아닌 수술이라고 가볍게 이야기하고 넘어갔다. 아빠는 원래 식사 하실 때 반주로 소주를 드시는데, 식사를 하시면서 살짝 놀란 듯하셨다. 하지만 나는 얼굴을 보며 이야기하니 마음이 편했고, 아빠도 동생이 병원에 같이 가줄 거라는 말에 마음을 놓는 것 같았다. 어떻게 이야기하나 고민했던 것들이 실은 큰 걱정거리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가족끼리 식사하면서 일상을 공유하고 같이 나누면 될 것을 괜히 혼자 끙끙 앓았었다. 




9월은 정말 나에게 전쟁과도 같은 한 달이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적응하느라 너무 힘들었으며 (지금 하고 있는 일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기회에 꼭!! ^^) 본의 아니게 암 전 단계가 나와 매주 병원을 다니며 진료를 받고, 수술 날짜를 받고, 동서남북 뛰어다녀야 했고, 그동안 꼭 해보고 싶었던 번역공부도 시작했는데, 일과 병원진료로 인해 올인을 할 만큼 공부에 집중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숙제만큼은 꼭 제출했다. 이 밖에도 나의 남편도 이제 새로운 일을 시작하느라 너무 바빠 마음만큼 서로를 잘 챙겨줄 수 없어서 "우리 서로 알아서 잘 챙기자~!" 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던 것 같다. 

이미 9월은 마무리되고 10월 중순으로 들어갔고, 아직 무엇하나 정리된 것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오늘 하루를 버텼다는 건 그래도 잘 살고 있다는 의미겠거니 스스로를 위로하며 주말을 마무리하려 한다! 




구독과 라이킷은 글을 쓰는 고양이램프에게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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