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e-book]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

by 정요원
x9788965964230-death.jpg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생각이 들었다. 버킷리스트가 필요하겠다는 것 말이다. 나 자신을 위한 것 뿐만 아니라, 가족 한 명 한 명에게도 그렇다. 그리고 해 두면 꽤 유용하기도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새로운 목표가 생기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것이 마지막일지언정 또 다른 것을 준비할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나의 1번은 무조건 부모님 모시고 해외여행가기다.



*내가 반한 글귀들


누군가의 어제는 우리의 오늘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오늘은 또 다른 이의 내일에 영향을 미친다. 삶은 그렇게 연결되어 있고 우리 모두는 이어져 있다. 누군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기억이 다른 이의 삶에 작은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면 나는 그들에게 진 빚을 비로소 갚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이야기를 시작하며

-

만약 사는 동안 적당히 자신의 욕망과 타협하는 법을 배우고 사람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웠더라면, 너무 앞만 보지 않고 주변을 살피며 달렸더라면, 그의 인생에 조금이라도 마음의 여유가 있었더라면, 그는 그렇게까지 분노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는 왜 그토록 끝없이 달리기만 해야 했을까? 한 번쯤 멈춰 설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았을까. ... 당신은 무엇을 위하여 그렇게 열심히 살았습니까? - 너무 열심히 산 자의 분노

-

누군가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지켜본 그 노년의 환자는 평범함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분이었다. 할머니라고 죽는 것이 두렵지 않았을 리 없다. 헤어짐은 아프고 미지의 사후는 두려웠을 것이다. 그것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거나 죽음이 예정된 남은 날들을 평소와 똑같이 살아내는 일은 지식이 많거나 돈이 많아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병원에서 나는 대단한 권력자도 엄청난 부자도 저명인사들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 할머니처럼 담담하게 마지막까지 평소와 같은 일상을 꾸려간 환자는 많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특별했고 보통 사람이지만 위대한 사람이었다. - 특별하고 위대한 마지막

-

암에 걸리는 것은 허허벌판을 지나다 예고 없이 쏟아 붓는 지독한 폭우를 만나는 것과 비슷하다. 우산도 없고 피할 곳도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고스란히 쏟아지는 비를 맞는 것뿐이다. 그러나 가만히 서 있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움직이지 않으면 체온만 떨어지고 그런 채로 죽어간다면 ‘뭐든 해볼 걸 그랬나?’ 하고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 어차피 맞을 비라면 맞으면서 걸어가는 것이 낫다. 물론 걷다가 돌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고, 가시덤불에 긁힐 수도 있다. 그러나 비를 피할 만한 장소를 마주칠지도 모른다. 혹은 비를 가려줄 뭔가를 발견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갑자기 내린 비와 그 길에서 부딪치는 모든 것들을 여정의 일부로 받아들이면 내공이라는 게 생긴다. 삶에서 고난은 불가피하다고 부처는 말했다. 그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암도 마찬가지다. 암에 걸린 뒤에 부딪치게 되는 어려움들은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다. 하나를 피하면 결국 둘, 셋이 되어 돌아오는 것까지도 지독하게 인생을 닮았다. 그러니 고통이나 힘든 일이 없기를 바라기보다 마땅히 있을 것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나을 것이다. - 저는 항암치료 안 받을래요

-

자기 자신에 대해 질문하며 사는 건 의외로 쉽지 않다. 사회에 발 들이고 나면 먹고사는 일에 힘쓰느라, 눈앞의 현실에 치여서 스스로에 대해 물을 여력이 없다. 물어서 답을 안다고 한들 훌훌 털고 내 멋대로 살 수도 없는 일이다. 당장 오늘 뭘 먹을지, 뭘 할지 고민하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러나 어쨌든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기 마련이고,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면 그 같은 태도가 습관이 되어버린다. 습관은 관성이라는 가속도를 얹고 삶의 내용과 방향을 바꿔버리기도 한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옛말이 그저 옛말이 아님을 살면 살수록 깨닫는다. ... 사람은 누구나 “주어진 삶을 얼마나 의미 있게 살아낼 것인가”라는 질문을 안고 태어난다. 일종의 숙제라면 숙제이고, 우리는 모두 각자 나름의 숙제를 풀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인생의 숙제를 풀든 풀지 않든, 어떻게 풀든 결국 죽는 순간 그 결과는 자신이 안아 드는 것일 테다. 기대여명을 알게 된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특별한 보너스일지도 모른다. 보통은 자기가 얼마나 더 살지 모르는 채로 살다가 죽기 때문이다. - 10년은 더 살아야 해요

-

피를 나눈 사이라고 해도 상처는 쌓이면 곪고 후회는 깊고 아쉬움은 길다. 아니, 아마도 피를 나눈 사이라서 더 그럴 것이다. 가족이 가족이기 위해서는 솔직한 대화가 필요하다. - 대화가 필요해

-

아이는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어른들은 늘 어른의 눈으로 아이들을 지레 짐작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 이상으로 어려움을 잘 받아낸다. 떠나는 그에게 마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아이들은 어른보다 낫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의 발걸음이 한 뼘이라도 더 가벼워졌기를 바란다. - 임종의 지연

-

인생 리셋이라. 그와 인사를 나누고 택시에서 내려 발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전자제품에 리셋 버튼이 있듯이 가끔 우리 인생에도 리셋 버튼이 있으면 좋겠다고. 인생이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 이 버튼을 누르고 인생의 어느 시점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아주 잘살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물론 어디까지나 꿈같은 이야기다. 지나온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리셋 버튼이란 건 없다. 결국은 행복해 보이는 그의 모습이 부러웠다는 이야기다. 그 같은 변화가, 삶을 대하는 깊이와 여유 있는 태도가. 그럼에도 나 자신을 다독였다. 아직은 내가 그 같은 리셋 버튼을 만나지 - 인생 리셋

-

암과 맞서 싸우는 오늘의 내 모습이 내일의 가족들에게는 살아가는 힘이 될 수도 있다. 지금 당장은 이해할 수 없어도 언젠가는 오늘의 나를 가족들이 이해해줄 날이 반드시 온다. 내가 이만큼의 시간이 흘러서야 그때의 아버지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듯이. 우리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서로 연결되어 있구나 싶다. 비록 인간의 생이란 유한하기에 언젠가는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지만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주어진 남은 날들을 조금 다르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종종 이 질문이 암이라는 병이 우리에게 주는 숙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 내 목숨은 내 것이 아니다

-

세상에는 직접 겪어 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일이 있다. ... 교과서나 처방전에 적힌 활자화된 설명은 뇌 속에 저장되지만 경험에서 얻는 지식은 몸에 저장된다. -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

-

아무리 세상이 달라지고 있고 사람을 직접 대면하기보다 기기를 통하는 것이 편해지고 있다지만 말과 말 사이에 오가는 눈빛과 미간의 움직임, 새어나오는 숨, 꽉 다문 입, 멋쩍은 웃음… 같은 것들이 전하는 의미는 휴대폰 메신저로는 전달하기가 어렵다. 아무리 말줄임표를 가져다 붙인 데도, 이모지를 쓴다고 해도 그 무언의 메시지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때로는 그런 것들에 더 많은 것들이 담기고, 그렇게 전해지는 의미에 우리는 웃고 울기도 하고 위로를 얻기도 하며 환자의 진심을 알게 되기도 한다. 이런 것들에 의미를 두는 내가 옛날 사람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 그런 것들이 없는 세상에 살게 될까 봐 때때로 두려워지곤 한다. - 눈을 마주치지 않는 사람들

-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만났을 때는 무모하게 무턱대고 맞서 싸우기보다는 전략을 바꾸는 게 낫다. 이길 수 없다면 지지 않는 것도 방법이라는 말이다. 끝까지 버틴다는 정신으로 버티다 보면 때로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기도 한다. 과시할 만한 승리는 아니라고 해도 이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지지않는 것도 패배는 아니니까. 암 치료에 있어서 해야 할 것을 하는 것 못지않게 때로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 파비우스 막시무스

-

남들이 다 이해할 수 없는 내 몫의 슬픔이라는 것이 있다. 그 같은 슬픔은 타인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이 그들의 잣대로 규정짓고 재단하려 할 때 슬픔을 견뎌야 하는 사람에게 더 큰 슬픔이 되곤 한다 - 3월의 신부를 위한 인사

-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린,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들이 없지 않다. 그러다 보면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라는 것, 거기에서 나아가 ‘의학적 행위에 관한 원칙과 도덕 윤리’라는 것이 더더욱 어려워진다. ‘사람으로서’ ‘마땅히’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지, 의학적 행위에 관한 ‘원칙’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지 명확한 답을 내리기 어렵다. - 윤리적인 인간

-

각자도생의 나라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각자 스스로 살길을 찾을 수밖에 없던 평범한 사람들의 뼈저린 경험에서 생겨난 말, ‘각자도생’. 내 생존은 누구도 신경 쓰지 않으므로 우리는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 병원에도 아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씁쓸함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 각자도생, 아는 사람을 찾아라

-

오래 살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이고 생명은 고귀한 것이라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행복하다고 이야기하기는 쉽다. 입으로 도덕을 외치고 윤리를 말하는 일도 참 쉽다. 똥 치우며 병수발하고 비용 부담하긴 어려워도 말하기는 쉽다. 하지만 당신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만 있을 뿐 인간다움을 완전히 잃는다면 그때에도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을까? 혹 당신이 그런 상황이 된다면, 혹은 인지 기능 없이 단순히 숨만 쉬는 상태가 된다면 그런 상태로 몇 년 더 사는 것을 간절히 원하게 될까? -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

-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사는 것은 일단 마음부터 편하지 않은 일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내가 떠나고 난 뒤 타인의 기억에 남을 내 마지막이 어떻게 남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생각해보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내가 떠난 뒤에만 있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 이 삶에서 드러난다. - 마지막 뒷모습

-

우리는 죽음만 잊고 사는 것이 아니다. 삶도 잊어버린 채 살아간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 있다는 것, 이 삶을 느끼지 않고 산다. 잘 들어보라. 삶을 잊은 당신에게 누군가는 계속 말을 걸어오고 있다. 우리보다 먼저 종착역에 당도한 이들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 묻는다. - 이야기를 마치며





keyword
작가의 이전글칠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