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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요원 Aug 04. 2024

사라지지 않는 것들

[ebook] 카페, 공장



거리감은 환상을 부추긴다. 아무도 가 본 적 없는 우주 저편 어딘가에는 지구인보다 훨씬 우월한 문명을 건설한 외계인이 살고 있을 거라는 믿음처럼. 그런 환상은 가슴을 뛰게 만들지만 한편으로 불공평했다. 38/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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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카페 아직 재미있잖아. 안 그래? 힘들어도 재미있잖아. 정이의 솔직한 말이 모두의 머리와 마음을 열었다. 카페 공장은 재미있다. 책임감이나 자기만족 같은 말을 붙일 필요도 느끼지 못할 만큼 재미있으니까 계속 하는 것뿐이었다. 아이들은 지금껏 이만큼 재미있는 일을 해 본 적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은 적도 없었다. 208/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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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에는 나름의 소중함이 잇다는 삶의 이치를 깨닫기에 아이들은 아직 한창 자라는 와중이었다. 열 평 남짓한 카페 공장은 스마트폰과 서울에만 존재하던 넒은 세상을 아아들과 연결해 주는 정거장이었다. 209/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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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을 해도 야단을 맞고 사실을 말해도 야단을 맞는다면 사실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는 편이 가장 낫다는 걸 영지도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아이들은 어른들 앞에서 자꾸 거짓말을 한다. 으르대고 다그치기만 하면 아이들이 진실을 말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는 걸 어른들만 모른다. 216/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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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네 아이들도 어른이 될 준비를 마쳤다는 뜻일지도 몰랐다. 아이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천지가 뒤집히는 커다란 변혁이라기보다 스스로에게 아주 조금 더 확신이 붙는 작은 변화에 더 가깝다. 남들이 하는 이야기만 듣고 그런가 보다 하고 지레 짐작밖에 할 수 없는 불안함과 두려움에서 한발짝이나마 벗어나는 겨우 그뿐이지만 분명한 변화. 큰길가와 뒷골목에서는 하늘의 별만큼 많은 카페들이 생겨났다 사라지고 있었다. 카페 공장은 수많은 별들 중에서도 특히나 빨리 사그라진 별똥별이었다. 카페는 사라졌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이 말해 주지 않아도 알았다. 삶에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 사라지지 않는 것들에는 우리 스스로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것. 이를테면 꿈, 추억, 마음, 우정이라고. 261,262/266



<카페, 공장> 이진, 자음과 모음


둘째 아이와의 14번째 프로젝트도 둘째 아이가 학교에서 대여해 온 책으로 하기로 했다. 프랜차이즈 버거집 하나 없는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4명의 단짝 여고생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서울의 이름난 카페를 동경하던 네 소녀가, 우연한 기회에 버려진 공장지대의 한 공간에서 카페를 직접 운영해보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둘째 아이. 둘째 아이가 좀 더 크면 책 속 주인공들처럼 단짝 친구들과 이것 저것 해 보고 싶어할 텐데... 여학생들의 세계는 또 문외한인지라. 소녀들이 운영하는 카페, 공장 이야기는 재미있었다. 특히 버려진 공장건물을 카페로 만들어 가고, 메뉴를 개발해 가는 과정이 특히나 그랬다. 카페 운영에 대한 것들을 가까이서 경험해 본 터라 더욱 그랬다. 재미있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운이자 더할나위 없이 행복한 일일 것이다. 그 관계가 가족이라 해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도 나중에 그렇게 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좀 상황이 바뀌었지만 내 인생의 사회 초반기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야기를 더 확장해 가자면 도시재생이나 젠트리피케이션 등과도 엮일 수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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