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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요원 Jun 06. 2020

평지에 내려 앉은 사찰

[건축] 사적 제309호 남원 실상사

지리산 천왕봉을 마주하고 자리한 절은 통일신라 흥억왕 3년(828)에 홍척스님이 처음 세웠다고 한다. 신라말기, 교학보다 참선을 중시한 선종의 여러 종파가 전국 명산에 절을 세웠는데, 실상사도 그중 하나라고 한다. 정유재란(1597)때 모두 불타 숙종(1674~1720)때 건물 36동을 다시 지었으나, 고종 때 화재를 당해 현재의 소규모로 복구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국보인 백장암삼층석탑을 비롯해 보물 등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다. 실상사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삼층석탑과 석등 또한 보물 제 37호, 제35호이기도 하다. 


2013년 11월의 기록


중요민속자료 제15호로 지정되 있는 남원 실상사 석장생이다. 이 돌장승들은 실상사를 지키는 상징적인 조각품이라 할 수 있다. 원래는 인근에 네 개가 있었다고 하는데, 1936년 홍수에 쓸려 내려가 현재는 세 개만 남아있다고 한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배치해 음양의 조화를 꾀하는데, 이 곳 장승은 모두 남자 형태라고 한다. 귀신을 쫓는 장승들의 표정이 해학적인것도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경내에 있는, 오래전부터 쓰여왔던 창고인 듯 한데, 보이는 벽과 문에서도 자연스러움과 해학까지도 느껴진다. 전통 건축의 멋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보물 제37호, 남원 실상사 동서 삼층석탑이다. 이 쌍둥이 석탑은 통일신라 말 실상사를 처음 지으면서 함께 세운 것이라고 한다. 5.4미터의 높이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석탑이라고 한다. 층마다 몸체와 지붕을 각각 별개의 돌로 만들고, 각층 몸체의 모퉁이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하였다고 한다. 지붕 아래 면은 수평이나, 윗면 모퉁이 부분은 위로 치켜올려졌다. 받침부가 비교적 커서 균형감은 덜하나 전체적인 모습은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서쪽 탑은 아쉽게도 꼭대기 일부를 잃어버렸으나, 두 석탑 모두 윗부분이 비교적 원래대로 남아 있다. 


보물 제35호 남원 실상사 석등이다. 이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것으로, 각 부분을 팔각형으로 만들어 그 시대 석등의 일반적인 형식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이 석등은 기둥이 둥근 장고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 석등과 다르다고 하며, 지붕 위에 도 하나의 작은 원형지붕을 얹은 점이 독특하다고 한다. 받침과 기둥, 몸체 등 곳곳에 연꽃을 비롯한 다양한 무늬를 새기어 화려하게 장식되어져 있으며, 부처의 자비를 담은 불빛을 온 누리에 환하게 비추려는 듯 몸체의 여덟 면 모두에 큼직한 사각창을 내었다.


실상사 보광전의 모습



안내 표지석에 옛 기와탑이라 되어 있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 구산선문 중 가장 먼저 개창한 유서 깊은 사찰인 실상사에서 출토된 기와들로 쌓은 것이라고 한다. 실상사가 창건된 당시의 모습과 변천과정을 밝히기 위해 실상사와 남원시의 도움으로 지난 1996년~2005년까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발굴 조사하였고, 그 과정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조선시대의 기와들을 모아 이 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기와 하나하나가 1,200여 년에 걸쳐 실상사에 남겨진 우리 조상의 얼을 담고 있사오니 한 점도 없어지지 않게 잘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남겨줍시다 라고 명시했다. 


석탑이나 전탑과는 달리 목탑 안에서는 예배를 비롯한 각종 의식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실상사 목탑은 고려시대에 축조되었다가 소실되고 초석만 남아있다. ... 1998~1999년에 시행한 실상사 목탑지 발굴조사에 따르면, 실상사 목탑은 정면 7칸, 측면 7칸의 정방향으로 각 면의 모서리가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다. ... 황룡사 9층 목탑에 버금가는 규모이다. 



여기까지 온 만큼, 국보가 있다는 실상사 백장암으로 향하기로 하였다.

가는 도중 한식과 일식 그리고 양식이 가미된 독특한 형태의 가옥을 보았다. 말 그대로 절충식 가옥.. 독특하다.



실상사 백장암으로 향하는 길


실상사 백장암 삼층석탑은 국보 제10호이고 석등은 보물 제40호이다.


국보 제10호인 백장암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말기에 세운것으로, 탑의 구조와 장식이 일반적인 양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고 한다. 높이 5미터인 이 석탑은 받침부가 매운 낮은 반면 1층 몸체는 폭에 비해 높다. 탑이 올라가면서 너비가 별로 줄지 않았다. 탑의 장식 역시 독특하여, 층마다 탑의 몸체에 보살, 선녀, 천왕 등 다양한 인물상을 화려하고도 자유분방하게 새겨 놓았다. 지붕 아래에는 일반 석탑과 달리 연꽃을 정교하게 조각하였다. 일반적인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서 풍부한 예술성과 독창적 상상력을 만든 석탑이다. 마치 나무를 다루듯 돌을 섬세하게 조각한 모습이 시대를 뛰어 넘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보물 제40호인 백장암 석등은 각 부분을 팔각형으로 만든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비료적 완연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받침부에 연꽃이나 난간을 새긴 기법이 옆에 있는 삼층석탑의 조작기법과 동일하여 서로 같은 시기인 9세기에 세운 듯하다. 석등의 높이는 2.5미터이며 팔각형 몸체에는 한 면씩 건너 네 면에 네모진 창을 내었다. 몸체와 받침 기둥은 거의 장식을 하지 않았고, 지붕은 간결하면서도 평평하게 처리하였다. 실상사 대웅전 앞에 있는 석등에 비해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소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3년 11월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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