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의 순간 ep.2

by 정원

아빠가 엄하고 무뚝뚝한 경상도 태생이라는 것을 핑계로, 유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우린 특별한 유대감을 품지 못한 채 데면데면한 사이의 보통의 부녀가 되었다. 그리고 지난 간극을 좁힐 일은 아마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관계의 깊이는 시간에 비례할 것이라 단정한 나의 경솔함이었다.

시간은 아빠와의 거리를 더 이상 벌려놓지 못했다.

오히려 조금씩, 조금씩 그의 무뚝뚝한 표현에 가려진 다정함과 따스함을 깨닫게 했다.


좀 더 일찍 깨닫고, 좀 더 빨리 알아차렸어야 했다.


언젠가 누워있는 아빠의 침상을 정리하며 물어본 적이 있다.

"아빠, 아빤 내가 아빠 좋아하는 것 같아? 아닌 것 같아?"

"많,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

호흡이 거칠어 숨이 찬 와중에도, 아빤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항암의 고통 속에 도통 웃을 일이 없던 시기였는데 말이다.


나는 그때 '좋아하는'이 아닌 '사랑하는'이라고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애정 표현이 쑥스러웠던 나는 그 순간마저도 '사랑하는'을 '좋아하는'이라 대신했다.

그래도 내심 알아준 것 같아 다행이었다. 내가 아빠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는 말 같았다.


어느 날, 오랜 남자 친구와 헤어진 나를 보며 아빠는 이별은 참 힘든 것이라 말했다. 그 이별이 나에게 큰 슬픔이 될 것이라 생각해 걱정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순간마저도 아빠와 함께였기 때문에 나에겐 그다지 큰일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진짜 힘든 이별은 곧 당신과의 작별이 되었다.


아빠가 떠난 이후로, 아빠가 아팠던 그 순간을 시작으로, 때론 아빠의 마지막을 시작으로 시간은 자꾸 뒤엉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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