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의 순간 ep.1

시작은 전화였다.

by 정원

2024년 4월 19일.. 방정리를 하던 중 아빠의 전화를 받았다.

"아빠가 병원을 갔다 왔는데.."

"응. 왜."

며칠 전 아빠가 내 방 정리에 참견했다는 이유로 성이 났던 철없는 나는 그때를 떠올리며 이 순간마저도 여전히 내 마음은 풀리지 않았음을 무뚝뚝한 대답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며칠 전 아빠가 치과에 가야 한다는 얘길 했던 것이 기억나 단순히 치과 진료를 받았겠거니 생각했다.



"뇌종양 아니면 뇌경색이라네?"


아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마치 감기에 걸린 사람인 양 그저 그렇게 말했다.

하긴 이상했다. 아빤 어떤 상황에서도 평일 퇴근 전 일을 뒤로하고 병원에 갈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아빤 평일엔 병원에 못 가는 사람이었다.


급하게 집 근처 종합 병원에서 만나기로 한 후, 병원 앞 지하철 역에서 만난 아빠는 가족에게 짐을 준 것 같았는지 불안하고 멋쩍은 표정이었다. 아빠를 앞세우고 뒤에서 그의 가방을 들고 걸어가던 중, 아빠가 한쪽 다리를 저는 모양새로 걷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왜 지금에서야 발견했지?

왜 나는 아빠가 아프다는 걸 몰랐지?

며칠 전 아빠가 머리 아프다고 했었는데 왜 그저 두통인 줄로만 알았을까?


그날의 입원을 시작으로 내가 살았던 이전의 세계는 완전히 사라졌다. 말도 못 할 절망감에 내가 현실 속에 살고 있는 게 맞는지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우린 그렇게 살가운 애정 표현을 하는 가족은 아니었다. 오히려 무뚝뚝한 편에 속했다. 손을 잡는 등의 스킨십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 그저 내키는 스킨십은 등을 토닥이며 옆에 있어주는 정도였다.


응급실 직원은 더 자세한 검사는 해야겠지만 뇌종양 혹은 뇌경색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마치 가벼운 감기로 병원에 온 환자를 대하는 의사처럼 말했다. 감정 없이 아무렇지 않은 듯한 말은 아빠에게 너무 잔인하게 들렸다. 그런데 나 또한 아무렇지 않은 척 아빠 곁에서 절대 울지 않았다.


어떤 생각을 해도 자꾸만 눈물은 차올랐으나 내가 울면 아빠가 더 두려워할 것 같았고, 그것이 아빠가 아프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느껴져 울고 싶지 않았다. 나를 의지하고 있을 아빠 앞에서 작아 보이기 싫었고, 한순간에 세상 절망스러운 일들을 모두 껴안고 있는 양 보이기 싫었다.


대기실에서 최대한 평온을 유지하며 멍하니 TV 화면을 바라보는 아빠를 보면서 생각했다.

아빠는 왜 또 불쌍할까, 아빠는 왜 편하지 못할까, 왜 아빠일까...

결국 차는 눈물을 못 이겨 화장실을 핑계로 자리를 비웠다.

평소 눈물이 별로 많지 않은 나는 오늘 다 울고 나면 이제부턴 아빠를 씩씩하게 지킬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게 시작인지도 모르고,

훗날 비통했던 오늘 하루를 웃으며 추억할 수 있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나 또한 아무렇지 않은 직원처럼 아빠 곁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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