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드나무 Feb 23. 2019

강준상을 죽였어야지

드라마 <스카이캐슬> 리뷰


#1

스카이캐슬 14화째. 19~20화는 그냥 나무위키 같은 데서 줄거리 요약으로 넘어갈까 싶기도. 아무튼 이 드라마는 매우 영리하게 구축한 구도로 극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별 걱정 없이 살아가는 상류층 부인의 최대 고민들. 물려받은 신분에 따라 성골과 진골이 나뉘는 것, 자녀 교육, 그리고 자기만 아는 남편-가부장의 문제들. 각각 순서대로 한서진-곽미향의 내적 곤란, 김주영의 외파, 김혜나의 내파. 

스카이캐슬의 기본적인 골자는 막장드라마 그 자체이지만 이런 구도가 꽤 영리하고 시대와 호응해서 막장의 클리셰를 넘어선다. (14화까지만 보고 하는 말임.) 하지만 극의 완성도를 보면 정말 끔찍하다고 할 정돈데, 거의 모든 극적 전환이 엿듣기와 엿보기로 매개된다. 지겨울 정도로 그렇다. 그나마 이 엿듣기-엿보기를 영리한 장치로 활용하는 건 김혜나가 유일하고. 그 묘한 표정과 뉘앙스를 흘리는 대사들, 김보라 배우 짱짱되신다. 완전히 극을 뒤집어 놓으셨다.

20화 안 봤지만 결말 다 들었는데 이 드라마가 송출되는 방송사가 JTBC라는 대표적인 자본가-진보-리버럴 방송사라는 점을 아무도 지적하지 않아서 조금 의아하다. 그 같은 결말, 파국과 몰락을 피하고 적절한 수준에서 갈등을 무화시키고 개인의 노력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설교하는 것이 바로 자본가-진보-리버럴의 정치적 이념 지평이므로, 스카이캐슬의 결말은 JTBC의 정치적 프로파간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지 않나? 

미국에서는 스타벅스를 창업한 하워드 슐츠라는 자본가-진보-리버럴리스트가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 민주당이 지나치게 '좌파적'이기 때문에 자기가 나서는 것이라고. 체제에서 위기의 징후가 포착될 때, 좌파는 '체제'가 문제임을 지적하는 세력이고, 우파는 '위기란 없다'고 기만하는(그러면서 뒤로는 자기들의 구명정을 확보하는) 세력이라면, 리버럴은 '위기'를 관리해 체제를 유지하자는 세력이다.

스카이캐슬에서 최고로 흥미로운 건 역시 PPL의 활용이다. 과도한 교육열을 비판하는 사회적 드라마이지만 PPL은 모두 그 교육열을 도와주는 상품들로 가득차 있다. 정관장의 그 뭐냐 그 아이패스랑 바디프렌드랑 뭐 어쩌고저쩌고들이랑... 기업 후원도 적극적으로 받고 슈퍼팩 제도에 적극적으로 순응하면서 선거운동을 펼친 힐러리 클린턴이 생각나는 대목.


#2


와아. 스카이캐슬 결국 20화까지 다 보고야 말았다. '모두가 착해졌다'는 결말이야 마음의 준비를 하고 봐서 크게 당황스럽진 않았지만, 정말 당황스러운 건 따로 있었다. 나는 초반에 작가가 이수임 가족을 고도로 영리하게 조롱하고 있다고 느꼈는데, 아무리 봐도 부자연스럽고 인위적인 행복을 연기하는 가정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작가가 지지하는 '교육관'이 이수임과 황우주의 그것이었다는 사실이 19화~20화에서 드러났으니, 그렇다면 앞서의 묘사들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한 지점이다. 그것이 진정한 행복함을 연기하는 것이었단 말인가...

개인적으로 한서진과 강예서의 개과천선은 충분히 개연성 있는 설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예서에 관한 묘사는 무척 좋았다. 예서에게 주어진 상황은 분명 그 나이에 이겨내기 어려운 중압적인 것이었고, 누군가의 죽음과 누군가의 무고에 죄책감을 느끼는 이타성과 서울의대 못 가면 책임질 거냐고 묻는 이기성은 서로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기만 알던 예서가 우주라는 타자를 사랑함으로써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삶의 문법을 배워가는 과정이 제법 설득력 있게 묘사됐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역시 강준상이다. 도대체 이 자는 왜 이렇게 됐는가. 작가는 자기가 창조한 강준상이라는 캐릭터와 끝내 사랑에 빠지고 만 것인가. 캐릭터 한두 명쯤 내치는 냉철함의 세계에 반역하고 싶었던 것인가. 왜 강준상과 사랑에 빠져버려서 온 개연성을 박탈하면서까지 그를 구원하고 싶어졌단 말인가... 그 20화조차도 진작에 강준상을 버렸다면 이렇게까지 나락에 빠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아무튼 거의 3년? 만에 끝까지 본 한국 드라마 되시겠다. 이래저래 아쉽지만 그래도 꽤 탁월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좀 더 빨리 장르를 확정짓고 그 문법에 충실했다면 더 좋은 드라마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한편으론 작가 스스로 장르를 결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할 때 어떤 드라마가 나오는지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소수 취향의 컬트한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으나 생각 외로 메이저해지는 바람에 방향을 급선회해야만 했던 작가와 제작진에 심심한 위로를 표함...


#3



스카이캐슬 얘기 마지막으로 한 개만 더... 중후반부 '혜나의 죽음' 사건을 둘러싼 주요인물들은 각각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차세리 : 체제의 이데올로기(적극적으로 교육에 투자해야 성공할 수 있다)를 적극 수용했으나 결국 실패(거짓 하버드)하고 자기 길 가기로 결정한 인물
황우주 : 체제 안에서 스스로 성공(전교 3등)함으로써 체제의 이데올로기를 위협하지만 여전히 체제 내(대학은 가야지)에서 살아가는 인물
김혜나 : 체제 밖으로 밀려나(가난) 있지만 스스로 성공했으며, 그에 그치지 않고 체제의 거짓됨을 폭로(시험지 유출)하려 달려드는 인물


이렇게 봤을 때 김주영이 왜 차세리가 아니라 황우주를(그들 둘 모두 심정적 알리바이가 있었다) 감옥에 가두기로 결정했는지, 그리고 왜 황우주가 아니라 김혜나를 죽이기로 결정했는지가 설명되는 듯하다. 세리는 가만 두어도 체제의 진실을 상징하지는 못하며, 우주는 그 진실의 한꺼풀을 보여주지만 단지 지금 눈앞에서 지워버리면 그만이며, 혜나야말로 체제의 진실 그 자체를 드러내는 인물로써 죽여 없애지 않으면 언젠가 다시 돌아와 체제의 이데올로기를 내파할 것이다.


내파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체제는 외파("꼭 교육 열심히 안 해도 성공하던데?" = 황우주)에는 흔들리지 않을 힘("그럴 수도 있지만, 교육 열심히 하면 성공하는 건 맞잖아?" = 강예서)이 있지만, 내파("너희가 말하는 교육의 진실은 사실 돈으로 시험지를 사는 것 아냐?" = 김혜나)는 체제 내 구성원들의 결집 자체를 위협(= 도훈 엄마)하는 것이다. 황우주를 가둘 권력은 있어도 김혜나를 가둘 권력은 없다. 하지만 김혜나를 죽일 힘은 있다. 황우주는 체제의 구성원이기에 죽여선 안 된다. 다만 가둔다.


이런 구도 속에서 20화의 결말은,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한편의 블랙코미디로 볼 수 있는 측면도 어느 정도 있다. 작가가 진심으로 설파하는 의도를 깡그리 무시하고 오로지 나만의 의도로 실눈 뜨고 바라보면 그렇다... 결국 '스카이캐슬'이라는 체제의 진실을 목도한 사람들 중에서 스카이캐슬을 떠난 것은 한서진 가족뿐 아닌가. 그나마도 한서진 가족은 여전히 으리으리한 집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머지 3인, 이수임, 노승혜, 진진희 가족은 여전히 스카이캐슬에 오손도손 모여 살며 낮을 같이 보낸다. 새로 온 엄마에게 과도한 교육열이 나쁜 것이라며 조롱의 웃음을 보내면서도 말이다. 체제의 진실을 목도했지만 여전히 체제에 머무는 것. 황우주가 상징하는 것이다. 20화는 적극적으로 황우주가 정답이라고 설파하며 마무리되지 않던가.


스카이캐슬에 사는 사람들 중에 20화에서조차 자신의 내적 교육열을 미처 다 포기 못한 유일한 인물은 차민혁으로 보인다. 노승혜와 합의한 조건이 있어 미처 속내를 다 드러내진 못하지만 말이다. 왜 차민혁인가? 그는 흙수저로 시작해 그 자리까지 올라온 인물이라서다. 그는 교육열을 버려도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체제 내 기득권들의 안온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치열한 교육 없이는 지금의 위치를 유지할 수 없다는 위협감을 몸소 실감하는 인물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역시 고아 출신의 황치영은 체제 밖에서 체제 내로 편입하고서도 오히려 체제의 유지를 지원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스카이캐슬은 중산층의 드라마이기에 그러한 진실을 존재하지 않는 양 조롱하며 마무리된다. 그러고 보면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기에 가능했던 설정들이 많았다. 가정 내에서 가스라이팅에 치이던 노승혜가 자녀들을 모두 이끌고 "아지트"로 도피해서 긴 시간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왔겠나? (작가는 '컵라면'을 통해 이 힘이 '가사노동'에서 나온다는 듯이 얘기하고 싶어 하지만 말이다.) 황우주가 고3 한 학기를 냅두고 자퇴해서 장기간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는 힘은? 차세리가 클럽 MD로 일하면서 6만2천달러를 모두 갚겠다고 약속할 수 있었던 힘은? 하핳. 그래서 이것은 중산층의 욕망을 듬뿍 담았으며 체제의 진실을 드러내는 일은 혜나를 죽이는 순간에 이미 그 소임을 다 했다고 믿는 드라마라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충분히 00하지 않은 자들의 이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