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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Oct 17. 2016

낙산공원 자락 주말식당 <8과 2분의 1>

낙산공원 자락에 잘 눈에 띄지 않는 식당이 하나 있다. 왜 눈에 안 띄냐면, 우선 간판이 없다. 눈여겨 보지 않으면 식당인지도 알기 힘들다. 둘째, 공간이 굉장히 좁다. 4인용 테이블 하나, 2인용 테이블 하나, 그리고 부엌이 전부. 이런 공간에서 식당을 운영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셋째, 주말 점심 저녁에만 잠깐 운영한다. 평소엔 불도 잘 안 켜지는 공간이라는 얘기다.



이 식당의 이름은 '8과 2분의 1', 이탈리아 가정식을 파는 가게다. 가게 이름은 동명의 오래된 이탈리아 영화에서 따온 것 같다. 식당 안에 그 영화 DVD가 진열돼 있더라. 이탈리아에서 오래 유학한 부부가 차린 집이란다. 어제 애인과 저녁식사를 여기서 했다. 이웃의 집에 방문해 맛 좋은 식사 한 그릇 대접받은 느낌으로 식사를 마쳤다. 그러니까, 이 글은 식당 리뷰다. 무슨 놈의 식당 리뷰를 이렇게 거창하게 시작하냐면, 사장님이랑 약속 비슷한 걸 해서다. 어떻게 알고 왔냐 물으시기에 농담이랍시고 내가 이렇게 답한 것이다.


"낙산공원에서 내려오다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아서 오게 됐어요.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블로그 포스팅도 하나밖에 안 나오고, 그래서 제가 두 번째 포스팅 하러 왔지요."


이렇게 말은 해놨는데 사실 내가 블로그를 전문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서 곤란해져버렸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내 포스팅을 보고, 식당에 방문한 다음에, 훌륭한 식사를 먹으면서, 10월 첫날 맨 마지막으로 식사한 청년의 소개로 왔다고 말해주면 된다.


개인적으로 음식 맛 외에 범상찮은 식당을 고르는 기준이 몇 개 있는데, 이런 것들이다.


1) 식당이 작다. 2) 브레이크타임이 있다. 3) 식당 안 인테리어 또는 음악에서 사장님의 취향을 파악할 수 있다. 4) 사장님이 자부심이 있다. 그래서 친절하게 말이 많거나, 혹은 비-친절하게 말이 없다. 5) 반찬을 직접 만든다. 6) 재료가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


여러모로 '8과 2분의 1'은 이 기준에 모두 부합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식당이 굉장히 좁고, 브레이크타임이 있으며, 수제피클을 내놓는다. 3번 항목은 여러 흥미로운 책들이 그랬다. 특히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 일러스트판이 눈에 들어왔다. (애인과 나는 이 책을 펼치자마자 총 쏘는 장면부터 찾았다...) 사장님이 굉장히 말이 많으신데, 말마다 자기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뚝뚝 묻어난다. 옆에 앉아있던 손님들에게는 '왜 이탈리아 음식이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지'를 맞혀보라며 퀴즈를 내고, 우리에게는 이번 주의 메뉴가 이탈리아 어느 지역에서 먹는 것인지를 설명해주셨다.



사실 스파게티를 즐겨 먹는 편이 아니라서, 또 미식가 체질은 아니라서 맛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세심하게 평가하지는 못하겠다. 그치만 나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우리는 메뉴 전부, 그러니까 두 가지를 시켰다. 새우 로제 스파게티와 가을숲 스파게티. 둘 다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는 맛이고, 개인적으로 나는 가을숲 스파게티를 더욱 맛있게 먹었다. (사장님도 이게 본인의 베스트라고 하셨다.) 수제 피클도 정말 좋았다. 나는 피클을 수제로 만드는 식당들을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맛에 대해서는 여기까지만.


새우로제 스파게티
가을숲 스파게티


사장님 왈, 재료는 무조건 가장 좋은 것으로다가 떼온다고 하신다. 지인인 것처럼 보이는 손님에게 하는 말이었으니 아마 거짓말은 아닐 거다. 식사 준비 시간이 좀 걸렸는데, 중간에 갑자기 사장님이 밖으로 나가시더니 가게 앞 식물(이름은 모르겠다)에서 잎을 몇 개 떼어다가 들어가시는 거다. 그게 새우 로제 스파게티에 올라간 저 잎사귀(?)다. 식재료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충분히 잘 알 수 있었던 광경. 도중에는 화이트와인 한 잔을 서비스로 내어주셨다. 마지막 손님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내주시면서 또 이탈리아에서는 와인을 꼭 곁들인다는 짤막한 이야기도 함께. 아참, 메뉴에 '와인 한모금'이라는 게 있다. 3000원이었나 그런데, 다음에는 꼭 주문해서 마시는 것으로.

메뉴를 매주마다 바꾸신다고 한다. 듣기로는 이탈리아 주류(?) 음식보다는, 지방에서 사용하는 독특한 레시피를 주로 참고하신다고. 만들어본 적은 없는데 레시피대로 하면 다 맛있다더라고 하시는 말씀도 곁들였는데, 하여간 자부심 넘치는 분이시다. 어쨌거나 그런 까닭에 좀 더 자주 방문해보고 싶어지는 그런 식당이다.


(10월 2일)




10월 2일에 다녀와서 페이스북에 남긴 글을 다시 여기에 옮기는 이유는 오늘 재방문해서 너무나 융숭한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기 전에 애인과 '설마 사장님이 저번에 왔던 걸 기억할까? 그러면 나 단골 될래요'라고 농담처럼 얘기했는데, 입장하자마자 사장님은 "어!" 하시더니 저번에 왔던 커플 아니냐고 묻는 거다. 딱 한 번 왔을 뿐인데 알아보셔서 깜놀. 어쨌거나 나는 그 순간 단골이 되어버렸으며, 그러니 단골 코스프레를 하면서 능청능청.



오늘은 메뉴가 이렇게 바뀌어 있었다. 홍합을 좋아하는 애인에게 딱 맞는 메뉴. 우연찮게 오늘도 마지막 손님이었다. 우리를 마지막으로 재료가 다 떨어졌다고. 덕분에 이런저런 수다를 사장님과 나누며 식사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오픈한 지 3개월 되셨다고 한다. 혜잘알인 애인은 "그래서 내가 처음 알았나보다"라며. 이웃집에 초대받고 가서 식사 대접받는 느낌이라고 말씀드렸더니, 그게 사장님의 콘셉트라신다. 그래서 단지 음식을 내어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손님들과 계속 대화를 나누려 하신다고. 그러니까 고요한 식사(?)를 선호하는 분이라면 이 식당이 다소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방문에 참고하시길.


단호박 까르보나라
홍합 스파게티


음식은 역시나 맛있었다. 해산물의 비린내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나로서는 단호박 까르보나라가 더욱 나았다. 일전의 가을숲 스파게티처럼 촉촉함이 거의 없이 끈끈한 스타일인데, 나는 이런 식감이 너무 좋더라. 이번에도 음식맛에 대해서는 더 평하지 않겠다. 충분히 맛있고 양도 알찬 식사였다. 사진들은 애인의 아이폰 협찬.




주말식당이므로 토,일요일에만 연다. 점심은 12시 30분부터 2시 30분. 저녁은 5시 30분부터 8시까지. 그 주의 메뉴를 올리는 인스타그램 계정은 8_and_half. 혹시 예약을 해야 할 것 같다면 010.2817.9935로 하면 된다. 포탈에 등록돼 있지 않아 정확한 주소를 모르겠는데, 종로구 낙산길 21로 찾아가면 될 것 같다. 못 찾겠으면 전화하시라. 나한테 말고 사장님한테.




몇 달 전에 이름을 바꿨다. '오쏘 파스타'로. 인스타그램 계정도 @osso_pasta 로 바뀌었으니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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