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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Oct 11. 2016

"한 생명을 구하는 건
인류 전체를 구하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하얀 헬멧 The White Helmets> 보다


하얀 헬멧을 쓴 사람은 고개를 들어 날아가는 헬기를 본다. 이 순간 그는 생각할 것이다. 군용 헬기인지, 민간 헬기인지. 너무 많은 헬기를 목격한 까닭에 그는 둘 사이의 차이를 소리로 파악할 줄 안다. 이곳은 시리아 알레포, 저것은 전투용 헬기, 그리고 저 남자는 민간 구조대 '하얀 헬멧'의 봉사자다. 그는 헬기를 응시하다가, 폭격소리가 들리는 순간, 동료들과 함께 폭격 현장으로 달려나간다.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것은 늘 '하얀 헬멧'이다. 그들은 방금 폭격 당해 붕괴되어 가는 건물 속으로 거침 없이 들어가 사람들을 구해내는 일을 한다. 


하얀 헬멧은 민간 구조대다. 전문 구조대도 아니고, 누가 강요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 해야 할 것 같아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구조 활동이 자신들의 의무라고 말한다. 이런 하얀 헬멧 구조대원들이 시리아 전역에 2900여명이다. 각 지역별로 센터를 30개 가량의 센터를 두고 활동한다. 처음 활동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구조를 펼치다 죽은 구조대원들은 백여명 가량이고, 그들이 구한 사람은 무려 6만명 가량이다. 무너진 잔해 속에서 마지막 한 사람까지 구해내려 애쓰는 이들이기에 그것이 가능하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하얀 헬멧>은 제목 그대로 그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 내전의 최대 격전지인 알레포의 하얀 헬멧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첫 장면부터 러시아군의 폭격이 떨어진다. 하얀 헬멧들은 육안으로 그것을 목격한 직후 망설임 없이 차에 올라 현장으로 달려간다. 연기 자욱한 폭격의 심연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폭격에도 살아남은 사람들을 구해낸다. 건물 잔해에 깔린 사람들을 살려내기 위해 잔해를 들어올린다. 흙더미에 깔린 사람들을 살려내기 위해 맨손으로 흙을 퍼낸다. 이미 죽은 사람들의 시신을 자루에 담아 옮긴다. 


카메라는 투하되는 미사일을 화면에 담는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폭탄이 워낙 자주 떨어지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달려나가는 그들을 쫓아가느라 어지러이 흔들린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건물 속으로 들어가는 하얀 헬멧을 카메라맨도 쫓아 들어간다. 시신이 자루에 담기는 과정을, 망자의 얼굴을 피해 담는다. 하얀 헬멧이 구출해낸 아이의 겁에 질린 얼굴을 담는다. 카메라맨이 찍은 영상 중에는 하얀 헬멧이 생후 열흘 된 아이를 구출해내는 장면도 있다. 아이는 고맙게도 잔해 속에서 11시간을 홀로 버텨냈다. 아이를 구출해낸 구조대원은 카메라를 쳐다보며 행복하게 웃는다. 하지만 눈가엔 눈물이 고였다. 분노가 여려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이에겐 '기적의 아기'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링크)



민간 구조대이지만 아무 훈련도 없이 투입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한 달간 이웃나라 터키에서 구조훈련을 받는다. 잔해 아래에 깔린 이의 소리를 듣기 위한 소리증폭장치를 작동시키는 방법, 잔해를 걷어내는 방법, 급하게 불을 끄는 방법 따위를 익힌다. 터키는 고요하다. 한 달의 평화가 구조대원들에겐 낯설다. 하늘 위에 날아가는 헬기를 보고 '군용 헬기'는 아닌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저것은 민간 헬기다. 폭탄투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구조대원들의 마음은 안정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불안하다. 그들의 가족은 여전히 시리아 알레포에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터키에 머무는 동안, 러시아군이 병원과 학교를 폭격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들은 스마트폰만 멍하니 쳐다본다. 뉴스 속보만 무력하게 지켜본다. 구조대원 중 한 명의 형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그는 그 소식을 듣고 말을 잇지 못한다. 동료가 대신 전화를 받아 이것저것 물어본다. 


대신 받은 그 동료는 얼마 전 동생을 잃었다. 하얀 헬멧은 모두 부모를 잃었거나 친구를 잃었거나 형제자매를 잃었거나 동료를 잃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런 일이 왜 벌어져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폭격 다음 날, 형을 잃은 구조대원은 알레포 방향으로 이슬람식 제의를 행한다. 이때 카메라는 제의의 동작들과 하얀 헬멧의 구조 모습들을 번갈아 비춘다. 카메라가 마지막으로 잡는 모습은, 제의를 마친 구조대원이 다시 유니폼을 입는 모습이다. 


하얀 헬멧은 죽음을 딛고 일어선다. 자신들의 상실을, 더 많은 구조로 메우려 한다. 훈련 중 한 아이가 찾아온다. 두 살쯤 됐을까. 아이는 아장아장 걸어다닌다. 아이의 이름은 Mahmud Ibildi, 앞서 언급한, '기적의 아기'다. 구조 이후 1년 반이 흘러 자신을 구조해준 하얀 헬멧을 찾아온 것이다. 대원들은 그 아이를 더없이 사랑스럽게 바라본다. 어제 폭격 소식을 듣고 침잠한 이들에게서 다시 활력이 돈다. 한 대원은 아이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심은 작은 씨앗이 아름다운 숲으로 자라는 느낌을 아나요?


그 느낌, 그 느낌을 알기에 하얀 헬멧은 오늘도 폭격 현장으로 달려간다. 그들이 시리아에 씨앗을 뿌린다. 그들이 숲을 만든다. 이들이 구한 아이들이 수없이 많다. 오므란 다크니시는 그 가운데 한 명이다. (링크)



다큐멘터리는 구조대원들의 활동모습과 더불어 대원들 몇몇의 인터뷰로 이뤄져 있다. 대개 다큐멘터리에서 인터뷰 화면을 잡으면 인터뷰이들은 측면을 보인다. 정면을 바라보면 어딘가 밋밋하고 뻣뻣해서다. 하지만 <하얀 헬멧>은 인터뷰이를 정가운데에 위치시키고, 정면 카메라를 직시하게 한다. 마치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증언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지금 시리아가 얼마나 지옥 같은지를 얘기한다. "하늘에는 러시아군, 땅에는 ISIS"인 그들의 국토에 대해 말한다. 그들의 활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한다. 사람을 구조하는 행복에 대해서 말한다. "한 생명을 구하는 건 인류 전체를 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살리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그럴 때면 그들이 얼마나 좌절하는지 말한다.


http://stepfeed.com/featured/syrias-white-helmets-documentary-launching-netflix/#.V_uyIOiLTDc


며칠 전 노벨평화상이 발표됐다. 하얀 헬멧도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다. 하지만 상은 반군과의 평화협정을 (결국 국민투표에서 부결됐지만) 추진한 콜롬비아 대통령에게 돌아갔다. 그도 그 나름의 평화를 세웠으니 상을 받았을 게다. 하지만 내심 하얀 헬멧이 받기를 바랐다. 그들의 활동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메시지라고 생각해서다. 이곳에 사람이 죽어가고 있고, 하얀 헬멧은 러시아와 아사드가 죽이려 시도한 사람들을 구해내고 있다는 메시지 말이다. 물론 바로 그 메시지의 민감성 때문에 노벨평화상을 수여하지 못했을 거라고 나는 미뤄 짐작할 따름이다.


너무나 오래 진행된데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까닭에,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시리아 내전에 다소 관심이 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기를 권하는 건 다시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서다. 사태의 복잡성 탓에 무엇이 문제이고 누가 옳은 편인지 판단할 수 없어 문제를 외면하고 싶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반군의 시작인 자유시리아군은 같은 시리아인들을 쏠 수 없어 탈영한 이들이 만든 조직이다. 하얀 헬멧은 러시아와 아사드가 터뜨린 폭격의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해내기 위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이렇게 보면 반군을 지지하는 데 별 망설임이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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