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버드나무 Aug 08. 2019

어떻게 브렉시트는 현실이 되었나

TV영화 <브렉시트: 치열한 전쟁> 리뷰


<브렉시트: 치열한 전쟁>, 네이버 시리즈. HBO가 만든, 브렉시트를 다룬 TV영화. HBO는 TV영화 장인이고, 특히 정치성이 짙은 영화를 귀신같이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 영화는 내가 본 HBO 정치영화 가운데서 가장 재밌다. 미국 방송사가 제작했지만 영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인지 흥미롭게도 영국 드라마 특유의 회청색 때깔을 빛낸다.


제목에서도 명료하게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캠페인을 다루고 있다. 그 캠페인에서 탈퇴파를 지휘한 선거 전략가인 '도미닉 커밍스'가 주인공.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했고, 기가 막히게 연기했다. 선거 전략가가 주인공이니 영화도 캠페인 전략에 초점을 맞췄다. 불가능할 것이라 여겨진 탈퇴 주장이 어떻게 현실이 되어가는가를 빠른 속도의 전개와 긴장감 넘치는 교차편집으로 묘사한다.


캠페인을 시작한 도미닉이 가장 처음 한 게 뭘까. 동네 펍이나 카페에 나가 평범한 시민들을 만나 물은 거다. "유럽연합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릅니까?" "이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요즘 가장 어려운 게 뭐예요?" 이 작업을 통해 도미닉은 캠페인의 초점을 어디에 맞춰야 할지 도움을 주는 단서를 얻어낸다. 기성 정치인의 논리가 아닌 평범한 시민의 논리. 소외되고 있다는 느낌, 주도권(control)을 갖고 싶다는 소망. 그 다음은? 이 단서를 바탕으로 데이터를 모은다. 기성의 논리는 거부한다, 오직 숫자로 말하겠다. 이 부분이 흥미로웠는데, 오직 숫자로 말하겠다는 도미닉이 가장 처음 한 것이 시민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질적연구'였다는 것.


그 다음은 시민들을 선동(중립적 의미에서)하기 위한 구호를 만들 차례다. 그는 캠페인 조직가들에게 딱 두 가지만 말하라고 강조한다. 3억5천만 파운드, 터키. 앞의 숫자는 "영국이 EU에 남아있을 경우 부담해야 하는 돈"을 최대한 부풀린 수치로, 다시 말해 거짓말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근거는 가진 숫자이며, 그것이 거짓말인지를 판별할 능력 같은 건 시민들에게 없다. 뒤의 국명은 물론 '이민자'다. 엄청난 수의 터키 이민자들이 영국으로 계속해서 몰려올 것이라는 선동. 이 선동은 구체적인 숫자가 되어 거리의 전단지로 뿌려지는데, "7천만명의 터키 이민자"라는 식이다. (이 숫자는 일종의 유머포인트로 활용된다. 7천만명이 들어온대요! 라고 성토하는 시민에게 탈퇴파 리더 보리스 존슨은 헛웃음을 지으며 "그건 터키의 총인구입니다"라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 단 한 줄의 슬로건. 한참 슬로건을 고민하던 팀은 앞서 주도권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Vote Leave, Take Control"이라는 구호를 창안해내는데, 도미닉은 이게 불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어느날 책을 읽다가 어떤 단어를 읽고는 곧장 사무실로 달려가 단어 하나를 추가한다. Take "BACK" Control. 그것이 원래 존재했는지 아니었는지 같은 논쟁은 중요치 않다. "BACK"이라는 단어는 그것이 마치 원래는 '우리'의 것이었다는 강력한 향수를 자극하고, (엘리트에 대비되는) 시민들 내면의 주체성을 끄집어낸다.


내가 "다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믿음, 혹은 착각, 그것에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반응했고, 바로 이 슬로건을 시작으로 탈퇴파는 역전의 발판을 만드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고 보면 트럼프의 구호에도 비슷한 게 있었다. Make America Great "AGAIN". 힘들고 괴로운 지금과 대비되는, 어쩐지 아름다웠던 것으로만 기억되는 따뜻한 과거의 향수.


잔류파도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다양한 인종과 계급과 젠더로 구성된 포커스 그룹을 모아 이야기를 들으며 단서를 찾아내는 기획을 했는데, 캠페인 리더인 크레이그 올리버는 답답한 말들을 듣다 못해 그 자리에 뛰어들어 엘리트적인 토론을 벌이며 한 여성을 몰아세웠다. 그러자 그 여성은 대번에 분노하면서 억울함과 자괴감을 토로하는 것이다. 이때 크레이그는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으로 이런 독백을 한다.


"이제야 깨달았어요. 이젠 너무 늦어버렸지. 그들의 캠페인은 20년 전에 시작된 거예요. 혹은 더 오래 전에. 느리게 한 방울, 또 한 방울 공포와 증오를 쌓았고,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더 최악인 건 그 안에 우리 모두가 갇혔단 거."


요컨대 이 영화는 브렉시트가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 얘기할 마음이 애초부터 없다. 브렉시트라는 아직 미완된 주제를 너무 성급하게 극화한 것은 아닐까 약간 우려하면서 봤는데, 브렉시트라는 '내용'에 관심을 보인 게 아니었던 거다. 단지 그 브렉시트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인가, 사람들은 왜 탈퇴파의 손을 들어줬는가, 그 감정의 기원이란 무엇인가, 여기에 관심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치밀하게 묘사하는 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2019년에 극화한 것이 마땅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가 더 강한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