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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Aug 08. 2019

김군의 '부재'가 폭력의 '존재'를 증명한다

다큐멘터리 <김군> 리뷰

<김군>, 롯데시네마 주엽점. 본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 같아 일단 줄거리부터 요약하면 이렇다. 보수논객 지만원이 광주 5.18에 대한 음모론을 제기한다. 5.18 당시 찍힌 사진들 속 몇몇 인물들이 현재 북한의 고위직들과 얼굴이 비슷하다면서, 5.18은 광주에 내려와 '내란을 선동'한 북한의 공작이라는 것이다. 지만원은 이들 인물들에게 '제0호 광수'라는 식으로 이름을 붙인다. 그 중 하나인 '제1광수'가 이 다큐멘터리의 주요 소재다. 민간인이 다루기 어려운 총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는, 덩치 있고 뭔가 포스를 풍기는 눈빛을 가진, 아마도 특수부대 출신이 분명할 인물.


<김군>은 바로 이 제1광수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5.18 생존자들을 찾아 다니며 인터뷰하는 내용이다. 그렇게 찾다보니 '제1광수'를 제외한 다른 '광수'들을 만나기도 한다. 물론 그들은 다 광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미 이 지점에서 지만원의 음모론은 기각된 것이다.) 이 '광수'가 다른 '광수'를 알아보고, 또 그 '광수'가 다른 '광수'를 알아보고... 그런 식으로 '제1광수'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를 직접 아는 사람은 도통 나오질 않는다. 그가 굴다리 밑에 모여 살던 넝마주이였고, 사람들이 그를 '김군'이라고 부르곤 했다는 증언을 얻어냈을 뿐이다. 그래서 이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김군'이다. 꽤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한 끝에 김군과 같은 트럭에 탔던 사람들을 찾아내고, 그들의 증언을 통해 1980년 5월 당시 김군이 계엄군에 의해 사살됐다는 사실에 다다른다.


내용이 이렇다보니 중반부까지는 <그것이 알고싶다> 풍의 탐사보도 느낌이 강하게 든다. 재미는 있는데, 보다보면 이게 왜 필요한 작업인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지만원의 저열한 주장에 대해 이토록 공들여 대응할 필요가 있는가? 이런 시도 자체가 그의 주장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도록 돕는 것은 아닌가? 그런 의문이 들 즈음, 무언가 다른 게 보인다. 소위 '광수'로 지시된 사람들의 삶을 충실하게 담아내고 있는 카메라 말이다. 카메라는 그들의 노동터와 노동하는 모습, 그리고 가족들의 모습을 충분한 호흡으로 담아낸다. 김군을 찾겠다고 나선 영화이지만, 카메라는 그 탐색 과정만큼이나 그들이 만나고 다니는 생존자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인다.


이제 이야기의 초점은 전혀 달라진다. 이 다큐멘터리는 김군과 함께 그 시기를 살아낸 생존자들의 이야기다. 그들 대부분이 여전히 광주에 살고 있으며, 제각기의 방식으로 5월을 기억하고 있으며, 대체로 쉽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들. 감독도 모르게 그렇게 된 건지, 의도적으로 그렇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김군>은 '탐사보도'가 아닌 '구술생애사'에 가까운 장르로 전환된다. 이 다큐멘터리는 여러 생존자들의 집합 증언으로써 재구성된 5월의 풍경을 그려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김군>은 생존자들을 찾아내는 다큐멘터리이면서, 동시에 그 과정 자체로 말미암아 생존자들을 연결하는 미덕까지 발휘한다. 1980년 이후 한 번도 만난 적 없었던 동지들을 제각각 찾아낸 감독은 그들이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도록 돕는다. 김군을 직접적으로 만났던 세 사람의 생존자들을 한 극장에 초대한 것이다. 스크린에는 오월 광주 당시의 사진들이 필름 롤처럼 흘러가고, 생존자들이 한 사람씩 찾아와 서로를 알아보며 껴안는다. 40년 가까이 흘렀지만 그들은 서로를 정확히 기억한다. 그리고 스크린 속 사진들을 보며 김군을 회상한다. 미처 못 치른 장례식을, 이들은 이 날 그곳에서 치른다.



지만원은 2016년 즈음 어느 집회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내가 제1광수를 지명수배 한 게 벌써 몇 년짼데 자기가 제1광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여태 없었다. 북한에 있으니 그런 것 아니겠나?" 약간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예상과 다르게 김군이 이미 그 당시에 죽은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 다큐멘터리는 김군을 찾아낸 것보다 더 강력한 진실을 찾아낸다. 지만원의 주장을 단순히 무시하지 않고, 실제로 김군을 찾아내 만남으로써 지만원의 주장이 틀렸다고 말하지도 않는, 어떤 다른 경로의 비판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런 것이다 : "지만원, 네가 벌이고 있는 폭력이란 이런 것이다. 그 사람이 나타날 수 없었던 것은 이미 그 당시 죽었기 때문이며, 이토록 평범한 사람이 총을 들고 죽게 만든 것이 바로 5.18이라는 사건이었다. 네 주장이 아직까지도 득세할 수 있는 건 역설적으로 5.18 항쟁에 대한 전두환의 대응이 그토록 잔악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광수'들이 더 일찍 앞에 나서지 못한 건 오월의 기억이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결론은 이렇다. 네가 벌인 판이 오히려 오월의 국가폭력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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