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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Aug 08. 2019

사고도 수습도 모두 사람의 일

드라마 <체르노빌> 리뷰

<체르노빌>.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5부작 미니시리즈 드라마. 당연하지만 체르노빌 사건을 다뤘다. 시점은 사건 발생 10시간 전부터 수개월 후 관련인 재판까지. 다루는 시점은 이런데 선형적으로 구성하지는 않았다. 오프닝은 사건 종결 이후의 시점인 듯하고, 곧장 사건 발생 직후로 시작해서 4화까지 선형적으로 흐른다. 그리고 5화에서 발생 10시간 전의 이야기가 공개된다. 즉 1~4화는 체르노빌 사건 직후의 혼란과 수습을 다루고 있고, 5화에서는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가를 다룬다. 납득할 만한 구성이다.


앞서 다른 글에도 적었지만 영상과 음향이 정말 압도적이다. 말 그대로 시청자를 압도한다. 체르노빌이 만든 혼란과 그 이후의 폐허를 정말 디스토피아 그 자체로 비춘다. 첨부한 이미지는 그 중 하나. 대체로 잿빛과 모랫빛의 영상으로 꾸며지고, 가끔 등장하는 모스크바만이 다채로운 빛을 보인다. 날카롭게 귀를 찢는 배경음악이 주를 이룬다. 종종 뭔가 사람이 비명을 지르는 듯한 음악들도 깔린다. 거의 모든 장치들이 절망과 혼란을 표현한다. 그러면서도 과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물론 체르노빌 사태가 가장 과하기 때문이다.



2019년에 이르러 체르노빌 사건을 다룬다면 대강 두 가지 이야기가 가능하다. 첫째는 탈핵 정책의 프로파간다, 둘째는 체르노빌 사고를 만든 인재(人災)의 현재성. 이 중 드라마는 두 번째 주제에 조금 더 집중하고 있다. 첫 번째는? 노골적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원자력 발전이 이렇게 위험한 것이니 우리는 탈핵을 이뤄야 한다는 식의 메시지를 구태여 전하지 않는다. 다만 영상과 음향으로 우리를 짓누른다. 그저 체르노빌에서 있었던 일들을 담담하게 조명한다. 절망과 피해를 보여준다. 그러고도 탈핵에 동의하지 않겠다면? 그건 제작진이 어쩔 수 없는 시청자의 정치적 결정이다. 그리고 결정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아무튼, 포인트는 두 번째 주제다. 인재의 현재성. 체르노빌은 후쿠시마와 달리 자연재해가 발단이 된 사고가 아니다. 하지 않아야 했거나 아주 주의해서 해야 했던 실험이 발단이 돼 발생한 사고다. 이렇듯 시작부터 인재였고, 이후 수습과정도 인재로 점철돼 있다. 관료제의 경직성이 낳는 사건 수습의 지연, 공무원들의 보신주의가 낳는 소극적 대처, 권력으로 양심적인 하급자를 짓누르는 상급자의 갑질, 안전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정책적 결정들. 어디서 많이 본 주제들 아닌가? 그렇다. 이게 바로 체르노빌의 현재성이다. 사고가 사건이 되고, 사건이 참사가 되는 길목에는 언제나 이같은 주제들이 자리잡고 있다. <체르노빌>은 이 주제들을 틈날 때마다 표현한다. 여기에는 '냉전의 종결자'라는, 체르노빌 당시의 서기장 고르바초프도 예외가 못 된다.


현재와는 다소 무관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이러한 주제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냉전 구도가 그렇다. 미국과의 냉전 구도에서 소련은 대외적 이미지에 극도로 집착한다. 대외적으로 사고의 크기를 줄여야 하고, 대외적인 협력 요청은 자국이 약해 보이므로 지양해야 하고, 미국보다 앞선 기술력을 갖추기 위해 무리한 실험을 요구한다. 현재적인 주제들과 시대적인 주제가 얽히고 얽혀 만들어진 사태가 바로 체르노빌이다. <체르노빌>은 이 지점을 놓치지 않고 보여준다.


이 주제들을 더욱 선명하게 강조하기 위해 <체르노빌>은 보통 사람들의 양심을 부각시키는 전술을 택한다. 양심에 비추어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는 하급자, 용맹히 폭발사고의 중심으로 뛰어드는 소방관, 누가 강요하지 않았어도 사태 수습을 위해 발전소 진입을 자원하는 군인, 권력이 거북한 티를 내도 끊임없이 진실을 직시할 것을 요구하는 학자, 애국을 위해 권력자들은 도망치는 현장으로 기꺼이 달려가는 노동자(들). 이들은 각각 단지 '군중'으로 묘사되지 않고, 구체적인 얼굴과 목소리를 가진 '개인'들로 묘사된다. 드라마는 종종 "이 사람도 조연급으로 등장하는 건가?" 싶을 만큼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공산주의 체제 소련의 체르노빌을 주제로 삼았으나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의 그 어느 나라에서도 자기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만한, 아주 보편적인 드라마라고 평가를 내리고 싶다.


덧. 레딧 등지에서는 이 드라마의 시즌2 격으로 <후쿠시마>를 만들어 달라는 농담 섞인 제안들도 하고 있는 모양이다. 흥미롭긴 한데, 아마 시즌1과 발단만 다르지 대동소이한 얘기가 될 수밖에 없어 제작진으로서는 노잼일지도ㅎㅎ


덧. 암전 뒤 실제 인물들의 사진과 영상이 나온다. 그 중 주인공 격으로 등장한 과학자 레가소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체르노빌 사고의 진실(발전소가 안전보다 이윤을 중시해서 안전하지 않게 설계됐음을 법정에서 증언했다)을 말했다가 그것이 국가에 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완전히 경력을 박탈당한 사람이다. 그는 사고 2년 뒤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직전 체르노빌의 진실을 녹음해 동료 과학자들에게 보냈다고. 그의 죽음에 자책감을 느낀 소련의 동료 과학자들은 체르노빌의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고, 결국 소련을 굴복시켜 발전소 재설계를 이끌어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자막으로 언급한 뒤에 이런 자막이 이어 깔린다. "진실과 인류에 대한 봉사와 헌신에 투신한 과학자들 모두를 기리고 대표하고자 울라나 호뮤크라는 인물을 만들어 내었다." 작중에서 레가소프와 함께 합을 맞추며 체르노빌의 진실을 구성한 여성 과학자의 이름이다. 실존인물이 아니라, 모든 양심적인 과학자들의 대리로 창작된 인물이라는 이 설명을 보고 정말 깊은 감동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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