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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Aug 08. 2019

누가 더 강한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만화 <강철의 연금술사> 리뷰

<강철의 연금술사>. 만화책 애장판으로 한 번 더 봄. 명실공히 세기의 작품이다. 첨부한 사진은 여느 만화에서나 흔히 삽입될 뻔한 서비스컷, 즉 출연인물들의 단체사진인데, <강철의 연금술사>에서만은 이런 사진이 '서비스'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메인 주인공은 당연히 엘릭 형제이지만, 이 사진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결말에 이르기까지 모두 단 한 번 이상은 주인공보다도 중요했다.


'등가교환'이라는 철학을 다루는 만화이지만, 실제로 보여주는 것은 "모두가 각자의 몫을 해냄으로써 +1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마지막 '플라크스 속의 난쟁이'와의 결전은 물론이고, '약속의 날'을 준비해나가는 과정, 호문쿨루스들을 제각각 처치하는 여러 주인공들, 역연성진을 구축해낸 이슈발인들까지.


킹 브래드레이의 패배 또한 그렇다. 그에게 치명타를 먹인 배커니어가 없었다면 이기지 못했을 거라는 스카의 대사는 어떤가. 정확한 반례로, <드래곤볼>의 셀게임에서는 손오공이 '공정한 싸움'을 위해 지친 셀에게 선두를 던져준다. 하지만 <강철의 연금술사>는 그런 '공정한 싸움'에 관심이 없다. 정확히는 '싸움' 자체에 주목하지 않는다.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싸움은 보편적인 가치을 성취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여느 만화에서는 'OOO와 XXX가 공정하게 싸우면 누가 이긴다' 따위의 놀이가 성행하지만,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그런 놀이는 무용하다. 누가 누구보다 강한지는 이 만화의 관심사가 아니다.


따라서 능력의 성장은 이 만화의 주요서사에서 배제된다. 엘릭 형제는 만화 내내 특별히 더 성장한 적이 없다. 단지 정보를 모으고 단서를 얻어내면서 조금씩 '진리'에 다가갈 뿐이다. 그리고 동료를 모은다. 동료의 의미란 또한 <원피스>의 그것과 다르다. <원피스>에서 동료는 뭐랄까, 맹목적인 무엇이다. <강철의 연금술사>의 동료는 그보다는 '인간의 고유성' 그 자체를 상징한다. 호문쿨루스라는,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는, 혹은 인간을 이해하고 싶어하는 어떤 이존재에 대립되는 인간의 고유성. 그것이 동료라는 가치로 구현되며, 바로 이 때문에 호문쿨루스는 결정적으로 패배하는 것처럼 그려진다. 그래서 <강철의 연금술사>는 <원피스>보다 보편적이다.



마지막 결전 이후의 에필로그도 소년만화의 정석을 깨나간다. 일반적인 소년만화라면 총통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히 머스탱 또는 암스트롱이다. 하지만 이 만화에서는 그 둘을 모두 배격한다. 각자가 가장 잘 어울리는 자리, 또는 제 소임을 다 해야 하는 자리로 그들을 보낸다. 만약 그 둘 중 누구 하나가 총통이 되는 것으로 그려졌다면 앞서의 싸움들은 '사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이 되었을 것이다.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싸움은 '보편적인 가치'를 위한 과정이어야 하지, '사인의 목적'을 위한 과정이 되어선 안 된다. 그래서 두 사람은 총통이 되지 못한다/않는다.


대신 머스탱을 동방으로 보내 이슈발을 회복시키도록 한다. 정말로 멋진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만화 내내 이슈발에서 싸운 연금술사들은 죄책감을 호소하거나(마르코, 알렉스, 휴즈) 혹은 철저히 비인간적인 태도를 고수했다(킴블리). 그런데 정작 '이슈발의 영웅'이라 불리는 머스탱은 이 둘 중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명확히 묘사되지 않는데, 이를 결말에서 결정적으로 해소시키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흔히 이용되는 논리 중 하나인 "세상을 바꾸려면 우선 높은 위치에 올라야 한다"는 것과 닮아버릴 수도 있다는 점인데, 작가는 사려깊게도 머스탱을 작품 내내 노골적으로 '총통' 자리만을 바라보는 자로 그려냈다. 이 덕분에 '동방사령관'의 위치는 앞의 논리의 대상에서 자연스럽게 제외된다. 그보다는 다시, "모두가 각자의 몫을 해냄으로써 +1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이야기로 종결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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