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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Aug 08. 2019

합리적이고 공증된 정치적 참사

영화 <바이스> 리뷰

<바이스>, 일산CGV. 아담 맥케이 감독이 또 일을 냈다. 이로써 2019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른 모든 작품을 다 보게 된 셈인데, 이 쟁쟁한 영화들 중에 상을 탄 게 <그린 북>이라는 게 이제는 정말 헛웃음이 나온다. 물론 <그린 북>이 나쁜 영화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런 영화들을 두고 <그린 북>이라니. 뒤로 썩 중요하지는 않은 스포일러들 조금 있음.


아무튼 간에, <빅 쇼트>를 기대하고 갔는데 그 이상을 보고 나왔다. 아담 맥케이 감독의 관심주제를 이제는 알겠다. 픽션으로 구성되었을 때는 누구나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고 개연성도 없고 저런 멍청한 일이 실제로 일어날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일어났으며 그것도 매우 '합리적이고 공증된' 방식으로 일어난 사건들을, 노골적인 픽션으로 재구성하면서 노골적으로 비웃는 이야기. <빅 쇼트>의 금융위기가 그랬고, <바이스>의 딕 체니가 그렇다. 그렇다면 이 감독의 차기작이 무엇일지는 이미 결정돼 있는 것이다.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 영화 막바지의 그 괴랄한 쿠키영상이 문득 의미심장하다ㅎ



하지만 <빅 쇼트>의 분위기와 <바이스>의 분위기는 전혀 다른데, 그것은 그 둘이 다루는 각각의 사건의 파장이 가지는 무게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기의 파장은 처참했지만 그래도 사람을 (직접적으로) 죽이는 것은 아니었고, 따라서 그것을 다루는 분위기도 조금은 더 유쾌하게 조롱적일 수 있었다. 그래서 막 정말 말도 안 되는 사람들이 나와서 해설역을 해댄 것이다. 그런데 <바이스>는 단 한 사람이 해설역으로 나올 뿐이며, 그는 영화의 클라이막스(-내용만 놓고 보면 클라이막스 이후에 해당돼야 하는 부분이지만, 오히려 감독은 이 부분을 클라이막스로 선정해서 모든 힘을 쏟았다)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의 희생양이 되면서 극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버린다.


다루는 이야기가 정말 방대해서 어떤 지점을 뽑아내든 긴 글을 한 편씩은 써낼 수 있을 정도이지만, 일단은 다음의 지점들만 언급해두고 싶다. 지금껏 헐리우드 영화가 이라크 전쟁을 비판하는 방식은 파병 미군의 내적 시선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즉 분노의 포인트를 따지자면 "우리의 아들들을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전쟁으로 몰아넣다니!"에 가깝달까. <바이스>는 그보다는 좀 더 이라크인의 내적 시선에 가까운 지점에서 분노한다. 부시가 긴장 없이 다리를 떨며 개전 소식을 전할 때 이라크에서 두려움에 다리를 떠는 일가족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장면은, 조금 촌스럽다는 느낌도 없지 않아 있지만 양국에 있어 전쟁의 인식 차이를 너무나 명징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라크 전쟁으로부터 시작된 중동의 혼란이 IS의 발흥으로 이어지는 국제정치적 흐름을 고발한 (적어도 내가 본 영화 중에는) 첫 영화라는 상징성도 있다. 그것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무엇이며 오늘날의 사태에서 단지 아랍 테러리스트들만 비난하고 뿌리뽑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해법인지를 폭로하는 중요한 논리적 흐름 중 하나다. 앞으로 더 많은 영화들이 이 흐름과 책임을 폭로했으면 한다.


별개로, 아무래도 미국에서 만들어진 미국을 다루는 영화인 만큼 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이 간단하게만 언급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그 사건들 중 하나가 조지 부시와 앨 고어가 맞붙은 2000년 대선에서의 '플로리다 재검표 사태'인데, 이건 정말 아담 맥케이가 단독적인 이야기로 탐낼 만한 어처구니 없는 실화다. 이 사태를 다룬 TV 영화가 <리카운트>. 한국영상자료원에 가면 볼 수 있다. 정말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민주주의 제도라는 게 얼마나 취약하고 허탈하고 비웃음 나는 것인지를 잘 묘사하고 있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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