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에 기고한 글
2019년 9월은 ‘산업재해의 달’로 기억될 만한 한 달이었다.
9월 2일 오전 11시경. 작년 12월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김용균씨의 사망사고를 조사한 ‘김용균 특조위’가 국무조정실에 ‘진상조사 결과 종합보고서’를 전달했다. 이 보고서에는 산업재해 사고를 막기 위한 22개 권고안도 함께 담겨 있다. 이 보고서를 전달받은 국무조정실 차영환 제2차장은 관계부처 회의에서 중요하게 논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같은 날 오후 5시경. 서울시 지하철 1호선 금천구청역 선로에서 광케이블 보수공사를 진행하던 40대 안전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그는 하청노동자였다.
다음 날 오전 11시경. 경기도 화성시에서 삼성물산의 반도체 생산 라인을 건설하던 30대 노동자가 5층 높이의 건물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그도 하청노동자였다.
9월 6일 오후 7시경. 충청남도 아산시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던 50대 집배노동자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는 명절 물량을 처리하고자 연장근무 중이었다. 주말이었고, 야간이었다.
9월 10일 오후 2시경.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오징어 가공공장 탱크 내부를 청소하던 노동자 네 사람이 유독가스를 마시고 질식사했다. 그들은 태국과 베트남에서 온 이주노동자였다.
9월 20일 오전 11시경. 울산시 현대중공업 공장에서 가스탱크 절단작업을 하던 60대 노동자가 이탈한 장비에 머리가 끼어 사망했다. 그도 하청노동자였다.
9월 26일 오전 9시경. 경상남도 거제시 대우조선해양에 선박 블록을 납품하는 하청업체 공장에서 30대 노동자가 블록에 깔려 사망했다. 그도 하청노동자였다.
9월 27일 오후 1시경. 충청남도 서산시 한화토탈 공장에서 태풍피해 보수공사를 하던 50대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그도 하청노동자였다.
9월 28일 오전 10시경. 부산시 북항오페라하우스 공사현장에서 크레인을 운전하던 30대 노동자가 크레인이 넘어져 사망했다. 그도 하청노동자였다.
9월 29일 오후 2시경. 전라남도 목포시 공장 지붕에서 태양광 발전 설비를 설치하던 30대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그도 이주노동자였다.
이 모든 게 9월 한 달간의 일이었다. 아니, 이것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이는 언론에 보도된 사고들만 모았을 뿐이다. 어떤 죽음들은 사업주에 의해 은폐되거나 세상에 채 전해지지 못하기도 한다. 이용득 의원실에 따르면 작년 한 해 2,142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한 달에 178명 꼴이다. 게다가 이는 사망사고만 모았을 뿐이다. 다행히 부상에 그친 사고까지 적으려면 이 지면은 턱없이 부족하다.
9월 한 달의 산업재해 사망사고들은 교통사고부터 추락사까지, 서울부터 부산까지, 30대부터 60대까지, 평일부터 주말까지, 오전부터 야간까지, 내국인부터 이주노동자까지 가리지 않고 일어났다. 그러나 그들 중 다수가 하청노동자라는 것은 지독한 공통점이었다. 사고경위를 뜯어보면 대부분 간단한 안전조치만 제대로 이뤄졌어도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다는 점은 끔찍한 공통점이었다.
그들 죽음의 다수가 세상에 충분히 알려지지 못한 것은 서글픈 공통점이다. ‘구의역 김군’처럼 지하철역에서 사고가 난 금천구청역의 죽음이나, 올해만 벌써 12명이 죽은 집배노동자의 죽음이나, ‘죽음의 공장’으로 악명 높은 현대중공업에서의 죽음이나, 네 사람이 죽은 영덕의 죽음 정도가 세상에 조금 알려졌을 뿐이다.
9월 24일에는 서울시 마포구에서 ‘김용균이라는 빛’ 북콘서트가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준비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생명안전시민넷’ 공동대표를 맡은 김훈 작가는 이 자리에서 이렇게 낭독했다.
“죽음의 숫자가 너무 많으니까 죽음은 무의미한 통계숫자처럼 일상화되어서 아무런 충격이나 반성의 자료가 되지 못하고 이 사회는 본래부터 저러해서, 저러한 것이 이 사회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 내년에 또 노동현장에서 2000명 이상 죽는다. 후년에도, 또 그 다음해에도… 날마다 해마다.”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일하다 죽었다. 그렇게 죽음의 9월이 갔다. 그리고 10월, 문재인 대통령은 4일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4단체’ 회장들과 오찬을 가졌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자리에서 회장들은 대통령에게 노동‧환경 부문의 규제 완화를 요청했고, 청와대와 정책실장은 “적극행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검토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같은 날 오후 1시경. 세종시에서 지하차도 방음벽을 설치하던 60대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지역언론 세 곳을 제외하면 연합뉴스‧YTN만 단신으로 보도했다. 같은 날 오후 2시경. 경기도 용인시에서 공사작업을 하던 50대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했다. 그도 이주노동자였다. 같은 날 오후 6시경. 경상남도 고성시 화력발전소에서 배관작업을 하던 40대 노동자가 가스에 질식해 사망했다. 그도 하청노동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