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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Sep 24. 2019

‘진범’인지 모르겠지만 실명은 알려주겠다는 언론들

<미디어스>에 기고한 글.

형이 확정되지 않은 용의자의 이름을 공개해도 되는가? 이제는 더 이상 아무도 묻지 않는 듯한 이 질문이 다시 떠올랐다. 33년 만에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가 특정된 놀라운 사건이 그 계기다. 언론들은 여지없이 이 특종에 달려들었고, 홍수처럼 쏟아진 보도들은 망설임 없이 용의자의 실명을 노출시켰다.


그간 경찰과 언론은 ‘용의자 실명 공개’라는 이슈에 대해 국민의 알 권리를 강조하면서 ‘그래도 된다’고 대답해 왔고, 반면 공개해선 안 된다는 쪽에서는 무죄추정의 원칙과 이중처벌 금지의 문제를 들면서 ‘그러면 안 된다’고 대답해 왔다. 어느 쪽 입장이건, 지금까지의 논쟁은 대체로 용의자가 진범이라는 자백과 증거가 확고하다는 전제 위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국민의 알 권리’는 나름대로 그럴듯하게 들려왔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언론의 보도 양상은 그것이 얼마나 허울 좋은 명분이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선 그동안 언론과 합을 맞춰 수사과정을 공개해 온 경찰이 이번 사건에서만큼은 상당히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진범임을 확신한다는 류의 공식 발표를 하지 않았고, 용의자의 실명도 공개하지 않았다. 24일 현재 경찰은 3회에 걸친 용의자 조사를 끝냈고, 책 280권 분량의 과거 수사기록을 재검토하는 중이라고만 밝혔다. 몇몇 언론들은 이러한 신중함이 화성 연쇄살인사건이 공소시효가 끝난 사건이고 최근 조국 장관 수사로 ‘피의사실 공표금지 원칙’이 화두에 올랐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용의자가 혐의를 부인했으며 DNA 검사 외에 다른 증거가 아직 없다는 점도 신중론의 근거다. 


이 같은 경찰의 신중함에 발 맞춰 한겨레, 경향신문, 연합뉴스, 중앙일보 등의 주요 언론들이 아직까지 용의자를 ‘이 아무개’, ‘이모씨’ 등으로 표기하고 있는 반면, 일부 언론은 오히려 앞장서서 용의자의 실명을 공개하며 이모씨를 진범으로 확정짓는 보도를 이어가는 모양새다. 최초 보도를 한 채널A는 물론이고 JTBC, 한국일보, 조선일보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보도행태를 보인 언론은 노컷뉴스와 문화일보다. 노컷뉴스는 9월 19일 보도한 <이OO는 ‘O’형, 화성 용의자는 ‘B’형…이OO 진범인가?>(필자 임의로 가명 처리)라는 기사에서 용의자의 혈액형이 사건 당시 수사결과 나온 혈액형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제목 및 기사에서 용의자의 실명을 그대로 공개했다. 문화일보 역시 사건 당시 수사결과와 배치되는 지점을 짚은 9월 20일 기사(<99.9% 진범이라지만… 아직 풀어야 할 ‘3대 의문점’ 있다>)에서마저 실명을 노출시켰다. 


노컷뉴스와 문화일보는 진범이 확실할 때만 실명을 공개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윤리와 책임감을 내던진 보도로 그들에게 용의자 실명 공개와 관련해 아무런 원칙도 마련돼 있지 않다고 자백한 셈이다. ‘진범이 아닐 가능성’을 보도하면서 정작 그 보도가 전하는 메시지를 전적으로 간과한 이 기사들은 기자들이 어떤 소명의식으로 취재하고 보도하는지에 대해서까지 근본적인 불신감을 품게 만들었다.


YTN은 여기서 한 술 더 떴다. 혈액형 문제를 보도한 9월 20일 기사(<이OO 혈액형 O형인데 화성살인 수사기록엔 B형?>)에서 “YTN은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실명을 피의자 인권 등을 고려해서 익명으로 방송을 했다”면서도 “이OO의 경우에는 이미 대부분의 언론에서 실명이 공개돼 익명 처리의 실효성이 없어졌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이 경우 ‘익명 처리의 실효성’만큼이나, 용의자가 이미 무기수로 복역 중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실명 공개의 실효성’ 역시 의심되는 상황이다. 


또 이러한 판단이 진범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정황을 보도하는 기사에서 언급됐음을 고려하면 ‘익명 처리의 문제’보다 ‘실명 공개의 위험성’이 가장 크게 도드라지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YTN은 실명을 공개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렇다면 YTN이 이야기하는 실효성이란 무엇일까? 보도 경쟁에서 뒤처지는 언론이 될 바에는 인권과 원칙을 과감하게 내던지는 것이 실효성이 낫다고 판단한 게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용의자가 진범이 아니라는 주장을 펼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DNA가 일치하면 99%의 확률로 진범이라는 전문가들의 말을 믿지 않을 이유도 없다. 그렇다면 왜 지금 ‘용의자 실명 공개’ 이슈를 거론하는가? 이 사건이 다른 사건도 아닌 화성 연쇄살인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역사는 피의사실과 용의자 실명의 성급한 공표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준다. 


경향신문은 9월 23일 기사(<‘화성 사건’ 누명 쓴 시민들…석방 이후 목숨 끊고, 루머 시달려>)에서 타당한 근거 없이 화성 사건의 용의자로 내몰려 전국에 이름이 알려진 결과 무죄 석방 이후에도 일상을 되찾지 못한 사람들의 사연을 소개했다. 결국 그 중 한 사람은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했다. 


보복의 관점이 아닌 사회적 필요의 관점에서 현재 상황을 천천히 다시 따져보자. 용의자는 무기수다. 어디 도망갈 수 없고, 증거를 인멸할 수 없다. 경찰은 수사 전략의 일환으로 용의자의 TV 시청도 금지시켰다고 한다. 용의자는 범행을 부인했다. 과거 수사자료에 근거한 몇 가지 의문점들이 제기되었고, 경찰은 15만 장에 달하는 수사기록을 다시 살피고 있다. 급할 까닭은 없고 신중할 필요는 많다. 적어도 이번 사건에 관한 한 아직까지는, 언론이 인권 보호의 원칙을 어겨가면서까지 용의자의 실명을 공개할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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