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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Oct 24. 2016

그들의 눈빛,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7년, 그들이 없는 언론> 보다

때로 사소한 우연이 대단한 필연처럼 느껴지곤 한다. 나한텐 10월22일 토요일이 그런 날이었다. 그러니까, 낮에는 MBC·YTN 해직기자들을 다룬 <7년, 그들이 없는 언론>(<7년>)을 봤는데, 저녁에는 백남기 농민을 다룬 SBS <그것이 알고싶다>를 본, 그런 날 말이다. 이 둘의 흐름이 지나치게 자연스럽다. 'MBC와 YTN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SBS만 남았다.' 내 기억에 SBS는 보수적이고 KBS는 중도, MBC는 진보적이었다. 정권 입맛에 따라 사장이 바뀌는 KBS와 MBC는, 10년이 흘러 가장 보수적인 언론사가 되었고, 도리어 SBS는 자기 위치에 계속 남아있음으로써 가장 상식적인 언론사가 된 것이다. 그래, 불과 10년 전, 아니 7년 전만 해도 MBC는 진보의 상징이었다. 황우석과 줄기세포를 고발하고, 디워를 도마 위에 올리고, 광우병을 폭로하던 것이 MBC다.


"<PD수첩>은 경영진을 포함해 어떤 압력으로부터도 자유로운 프로그램으로 성장해 왔다. 그러한 경험은 웬만한 상대에 대해서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는 제작 풍토를 만들었고, 성역에 도전해 싸우는 전사로서 <PD수첩>은 자리매김해 왔다. 결국 그동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온 <PD수첩>이었기 때문에, 너무나 두려운 상대를 만나고서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우리는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리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피해갈 수 없기 때문에' 부딪치기로 했다." (최승호PD, <신화의 추락, 국익의 유령>, 93페이지.)


그 MBC가 무너지는 것은, 금방이었다. 머리를 바꿨더니 모든 게 무너졌다. 이명박은 김재철을 사장으로 내려보냈고, 김재철은 휘하 본부장과 국장 등을 자기 사람으로 갈아 치웠다. 여기에 항의하는 MBC 사원들은 파업으로 맞섰지만, 김재철은 대체인력을 고용해 프로그램을 꾸렸다. 이들은 지금도 MBC에 있다. 민주적인 기자들에게 "시용"이라는 경멸적인 용어로 불리지만, 권력이 그들의 편이라는 건 민주적 기자들을 무력하게 한다. <7년>은 이 민주적 기자들이 어떻게 무력해졌는가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물론 대개의 다큐멘터리가 그렇듯 희망을 보여주면서 끝내려고 하지만, 내 속은 그냥 너무 답답했다.


보는 내내 답답하고 분통터져서, 어떻게 리뷰할지 머릿속에 메모를 하지 못했다. 그냥, 장면들로만 얘기해도 좋을 듯. '파운드 푸티지' 형식이라 유튜브에서 개별 장면들을 찾아볼 수 있다. 제일 마음 아팠던 부분은 여기다. 유튜브 영상 방송 3사(+KBS)가 대한문에서 공동집회 하는 장면이다. 최일구 앵커가 이런 얘길 한다. 5공, 전두환 때 87년 6월 항쟁을 취재하러 명동성당에 갔단다. 그때 시위대에게 들은 말, "야, MBC다, 저 새끼들 다 죽여버려." 그 다음에 2011년의 이야기를 한다. 시위를 취재하러 간 MBC 기자들이 시위대에게 손찌검 당하고 돌아왔다는 얘기. 그러니까, 국민들에게 MBC가 5공 때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는 얘기.


영상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 YTN에서는 노종면 기자가 눈에 들어왔다. MBC에선 좀 더 많이 보였다. 최승호, 이용마, 정영하 기자 등. 특히 이용마 기자는 얼마 전 암에 걸렸다는 기사를 읽어 잘 알고 있었다. 김진혁 연출이 잡아낸 7년이라는 긴 시간에도 그들 해직기자들의 눈빛은 여전히 형형하다. 기자들의 눈빛은 대강 봐도 기자들의 눈빛이다. 의심을 품고 있으면서도, 무언가 명확해보이는 눈빛. 내가 기자라는 직업을 선망하는 여러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 눈빛이다. 


가장 정직하고, 가장 언론인답고, 회사를 가장 사랑하는 이들이 가장 앞장서서 해고당하는 사회. 그렇게 9년이 흘러 이제는 2016년이다. 여전히, 그런 이들이 가장 먼저 찍혀나가는 사회. 답답하고 분통터져서, 더 이상 쓸 말이 없다. 정영하 기자가 한 말처럼, 여전히 거기에 남아 조금이라도 '덜 나쁜' 뉴스를 내보내기 위해 싸우고 있는 현직 기자들이 있다. 그들을 응원하고 지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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