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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Jan 20. 2017

웨스트윙 시즌4: 오렌지카운티

미국 대선에 묻히지만 하원 선거가 같은 날 함께 치러진다. 이 때문에 때로는 대선의 향방이 하원에 영향을, 또 아주 간혹은 하원의 향방이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웨스트윙 시즌4에서는 두 번째 이유로 에피소드가 하나 진행된다. 캘리포니아 47선거구, 즉 오렌지카운티의 선거가 아주 이상하게 흘러가는 바람에 대통령 캠프가 '민망한'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이 오렌지카운티는 민주당이 늘 우위를 가져온 캘리포니아에서 유독 공화당이 20프로 차이로 압도하는 선거구다. 민주당이 이길 리 없는 선거구이므로 이길 리 없는 후보가 구색을 맞추러 나간다. 작중에서는 호튼 와일드라는 아주 병약한 사람이 그 후보다. 얼마나 병약하냐면, 세 차례나 심장마비가 온 사람이다. 결국 선거를 일주일 조금 남긴 시점에 네 번째 심장마비가 오고 와일드는 사망한다. 후보가 죽었다. 선거를 접어야 한다. 하지만 와일드 없는 와일드 선거캠프는 선거운동을 지속한다. 캘리포니아 선거법은 이 괴상한 상황을 승인한다.

민망한 상황이다. 공보부국장 샘 시본이 백악관 대표로 애도의 뜻을 전할 겸, 당장 운동 관두라고 설득할 겸 캘리포니아로 날아간다. 이곳에서 선거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건 윌 베일리. 샘은 그를 만나 설득하지만 윌은 설득되지 않는다. 이어 윌이 지역 기자들과 회견을 갖는 자리에 샘이 참관하는데, 여기서 윌이 선거운동을 지속하는 이유를 엿볼 수 있다. 공화당 후보가 아주 쓰레기 같은 놈이니 떨어뜨리기 위해서라도 이길 거라고.


다시 장소가 바뀌어서 술집, 와일드 본부의 그 날 뒤풀이 자리. 다시 샘은 윌을 설득하지만, 샘의 대답이 일품이다. "변방의 존재감 없는 주지사였던 바틀렛이 프라이머리에 나왔을 때 민망하니 당장 접으라고 한 민주당원이 있었습니까?" 맞다. 바틀렛은 비주류였지만 탁월한 선거운동으로 결국 후보에 지명되고 대통령까지 된 사람이었다. 와일드는 왜 안 된단 말인가. 이 말을 듣고나서야 샘은 설득을 관두고, 되려 자신이 설득된 듯 선거운동원들을 독려한 뒤 윌에게 한 마디 남기고 떠나는데, 와일드가 당선되면 재보궐이 치러질 텐데, 그때 자기가 출마하겠단 것이다.


윌 베일리.


시간이 지나고 선거 날,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오렌지카운티 출구조사에서 자꾸만 박빙이 펼쳐지는 것이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상황. 알고보니 공화당도 와일드가 죽은 뒤 더 선거운동이 필요없겠다 판단하고 이 지역에서 손을 놓았단다. 게다가 날씨까지 와일드 캠프를 돕는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아침 일찍 투표하고, 공화당 지지자들은 퇴근하고 늦게야 투표하는 경향이 있는데, 퇴근시간이 다가올 무렵 폭우가 쏟아진 것이다! 결국 아주 늦은 시간 결과가 나오고, 놀랍게도 와일드의 승리가 발표된다. 언론은 '라자러스 47'이라는 농담섞인 별명을 이 선거구에 붙인다. 라자러스는 신약에서 예수가 죽음에서 되살려낸 사람의 이름이다.


그날 밤, 당선 축하연. 환호하는 캠프를 뒤로 하고 윌은 피곤하다며 자러 간다. 그의 이복동생이 윌에게 연설 하나 하고 가라고 설득하지만 듣지 않는다. 자기 일은 끝났으니 이제 여행을 가야겠노라며. 샘이 캠프를 차린 뒤에도 자긴 여행을 갈 거라며 본부장직을 거절한다. 불가능한 선거를 승리로 이끌어놓곤 이런 태연함이라니. 물론 윌은 천성이 워커홀릭이었고, 대통령 취임연설문 작성 업무를 제안하자 넙죽 물어버렸지만. 아주 흥미로운 캐릭터다. 사라지는 매개자. 제 이익이 아니라 온전히 대의를 위해 싸우는 자.


죽은 후보가 당선된다는 이야기는 드라마 속 얘기로만 보이지만 실은 현실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의외로 곧잘 일어나는 일이다. 2002년 방영된 웨스트윙에서 모티브는 아마 그해 2년 전 미주리주 선거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이후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10년 지난 2012년 미국 지방선거에서도, 심지어는 2006년 한국 지방선거에서도 '라자러스'가 있었다. 하지만 아론 소킨은 영민하게도 이 모티브의 포커스를 '죽은 자의 선거운동을 진행하는 사람'에 맞췄고, 결과적으로 훨씬 아름다운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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