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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Jan 25. 2017

의미있는 통치구조 논의를 위해

통치구조에 대한 논쟁의 경험과 기록 자체가 정치적 자산이다.

라고 거창하게 제목을 정하고 시작한다. 저 제목에 어울리는 글을 쓰려면 아무리 집약적으로 써도 A4용지 5장 내외는 돼야 할 것이며, 그 말인즉 내가 꽤 많은 시간을 여기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지금 최대 업무는 웨스트윙을 마저 보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다. 생각나는 대로 일단 적어보자.


1.

어떤 통치구조도 완벽할 수 없다. 이 말은 '단점이 있다'는 뜻인 동시에, '설계한 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앞의 말은 당연하다. 민주주의 원리조차도 완벽할 수 없는 마당에, 그 민주주의를 굴리는 통치구조가 완벽하기를 바라는 건 과욕이다. 뒤의 말도 당연한 말이지만, 많은 논자들이 쉽게 외면하는 것이다. 특히 의원내각제의 일반적인 특징을 얘기하라면 쉽게 얘기할 수 없다. 선거제도가 어떻게 설계돼 있는지, 연방제 국가인지 중앙집중 국가인지, 의회해산권이나 불신임제도가 어떻게 고안돼 있는지 따위의 요인들을 결합해서 '그 나라' 의원내각제의 특징 대해서만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기본적으로 세 당 이상의 다당제를 유도하는 선거법을 지닌 독일에서의 의원내각제는 분권과 타협을 유도하는 제도이며, 기본적으로 양당제를 구축한(지금은 모처럼만의 3당체제) 영국에서의 의원내각제는 여대야소 대통령제와 유사하게 흘러가는 제도이며, 1.5당(압도적 여당+군소 야당) 체제로 고착된 일본에서의 의원내각제는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대통령제는 제법 명확한 편이지만 여기서도 의회가 어떻게 구성되느냐에 따라 안정적인 삼권분립 정치가 되느냐 행정부 독주 정치가 되느냐가 갈린다. 그러므로 통치구조 논의에서 정말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지점은 통치구조를 떠받드는 다른 제도들이다. 특히 선거제도나 정치문화가 양당제를 유도하는지 아니면 다당제를 유도하는지에 따라 통치구조의 (오)작동을 결정한다.


2.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깔끔한' 개헌 논의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금처럼 쉽게 "당신은 어떤 통치구조를 지지합니까?" 하고 묻는 방식의 여론조사들은 결국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정말로 효과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경우 중 하나를 전제해야 할 거다.


1) 통치구조 말고는 어떤 제도도 바꾸지 않는다.
2) 통치구조를 포함해 다른 제도들을 함께 바꾼다.
3) 정치적 진공상태, 즉 통치구조 말고 다른 제도들은 정치행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지금의 논의들은 1)의 경우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는 정치적 사기라고밖에 볼 수 없다. 거의 모든 제도들이 '대통령 단임제+양당(또는 2.5당)제'에 맞춰 확립돼 있다. 선거제도, 지역주의 정치문화, 국회법 등 대부분의 제도·문화들이 그렇다. 이것들을 바꾸지 않고 통치구조만 건든다는 발상으로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결국 대통령 임기를 조정하는 것 말고는 없을 게다. 바꾸지 않거나, 아니면 4년 중임제로 바꾸거나. 1)의 경우에 의원내각제는 아예 고려대상도 될 수 없다. 틀림없이 오작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처럼 말이다.


3)의 경우는 학술적 논의방법이다. 아주 '정상적인' 정치 상황에서 의원내각제, 대통령제, 이원집정부제 등이 어떠한 특징을 보일 것인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필요한 방식이지만, 현실에서의 통치구조 개편 논의에서는 채택될 수 없는 전제다. 당연한 얘기지만, 현실의 정치는 진공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족을 덧붙이면, 사람들은 자신이 지향하는 체제를 얘기할 땐 2의 전제로 옹호하고, 싫어하는 체제를 얘기할 땐 1의 전제로 비판한다. 웃기는 노릇이다.)


3.

따라서 남는 건 2)의 방식이다. 통치구조뿐만 아니라 선거법, 국회법, 정치관계법 등을 함께 바꾼다. 여기서 우리는 기준을 세워야 한다. 어떤 정치가 좋은 정치인가? 집권세력이 강력하게 정책을 입법하고 시행할 수 있는 정치가 좋은 정치인가? 어떤 한 정당이 함부로 정책을 주도하지 못하고 팽팽한 균형 속에서 다른 정당들과 타협하도록 하는 정치가 좋은 정치인가? 바로 이 지점, 크게는 '안정성'과 '다양성'의 두 척도를 바탕으로 정치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렇게 보면 다른 제도들도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명확해진다. 안정성을 강조한다면 양당제를 유도하는 식으로 설계할 테고, 다양성을 강조한다면 다당제를 유도하는 식으로 설계할 테고.


그렇다면 어떤 정치가 좋은 정치인가. 옳은가 그른가가 아니라, 오늘날의 시대가 어떤 정치를 요구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다양성의 손을 높이 치켜올려줄 것이다. 안정성의 정치는 87년 이후 30년 동안 보수적인 정치지형을 고착화시키는 데만 부역해 왔음을 우리는 이제 안다. 최근에야 난데없이 4당체제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간 한국의 정치는 '부러질지언정 휘지 못하는' 정치체제였다. 여대야소가 되면 대통령이 독주했고, 여소야대가 되면 대통령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전자는 이명박·박근혜였고, 후자는 노무현이었다. 나는 지도자가 누구건 유연하게 의회가 돌아가는, 그러니까 '휠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정치체제를 지향한다. 그 기본전제는 독주할 수 없는 여당이고, 또한 독주할 수 없는 제1야당이다. 결론만 얘기하면 나는 의원내각제+다당제의 지지자다.


4.

어쨌든 중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의 과정이다. 정치인들만의 합의로 개헌사항이 결정되는 일은 당연히 없어야 한다. 국민투표를 실시한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법안이 만들어지는 과정 자체에 시민들이 폭넓게 참여해야 한다. 이는 좋은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좋은 정치가 무엇인지를 논의하는 과정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도 필요하다. 좋은 정치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어떤 제도가 만들어지건 그것은 합의된 방향으로 흘러가게 돼 있다. 결국 시스템을 굴리는 것은 사람이니까.


책장에 <페더럴리스트 페이퍼>가 꽂혀 있다. 미국 건국 시기에 알렉산더 해밀튼과 제임스 매디슨이 제정할 연방헌법의 내용들을 반대파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10개월간 신문에 릴레이 투고한 글들을 모은 책이다. 페더럴리스트들과 반대파는 정치의 내용을 가지고 논쟁했다. '강력한 연방정부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주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작은 연방정부를 만들 것인가'가 논점이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완전히 백지 위에서 논쟁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미국 헌법이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헌법이 어떤 원리로 설계됐는지 <페더럴리스트 페이퍼>를 읽으면 알 수 있다. 원리를 알기 때문에 헌법에 대한 존중도 남다르다. 논쟁의 경험과 기록은 이렇게 소중하다. 우리에게 부재한 것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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