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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Jan 31. 2017

자기소개서를 잘 쓰려면

내가 뭘 알겠어요

이번에 돈 받고 교정교열 하는 일을 하나 했다. 모 대학교 취업센터에서 제작하는 자료집에 들어갈 공대 졸업생들의 대기업 취업성공 수기들을 고치는 일이다. A4 10장 내외의 글 20개를 봤는데, 다 보고 나니 자기소개서를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졌다. 물론 정작 나는 한겨레21 교육연수 외에는 어디에서도 서류합격을 해본 적이 없지만 말이다! 하하하!


- 자기소개서 작성에 앞서 자신의 생애사를 쭉 적어보란다. 특별했던 기억, 수강했던 과목들, 받은 학점, 참여했던 프로젝트들, 경험해본 인턴, 활동했던 동아리, 뭐 그런 것들을. 일단 적고나면 내 인생의 궤적이 어느 정도 파악되고, 나중에 자기소개서에 쓸 만한 소재들을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복사 붙여넣기로 자기소개서를 양산하지 않고, 지원하는 회사별로 각각의 가치관에 부합할 만한 생애사를 특성 있게 써먹을 수 있다고.


- 가끔 인성검사를 실시하는 회사들이 있다고 하는데, 절대 속이려 들지 말란다. 자신을 결함 없이 훌륭한 사람으로 포장해야 한다는 강박에 솔직하지 않게 인성검사에 임하는 경우가 많다고. 그러지 말고 무조건 솔직하게 하란다. 인성검사 직후 면접에서 검사 내용을 바탕으로 다시 질문해왔을 때 자기도 모르게 검사 내용과 다르게 답변하게 될 수 있고, 그러면 인성 제로의 지원자로 평가되어 가차없이 탈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체크하고 치명적인 결함이 있을 경우엔 그에 대해 변명할 수 있는 말을 찾는 것이 더 낫단다.


- 친구나 선생님들에게 꼭 첨삭을 받으란다. 혼자 쓰고 혼자 고치는 게 보통인데, 그러면 놓치기 쉬운 지점들이 많다고. 바로 그 때문에 내가 교정교열을 해주고 돈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맞춤법이나 어색한 문장 등을 체크하는 건 기본 중의 기본. 수기들은 대부분 부산대 맞춤법 검사기를 이용하라고 조언하고 있지만, 글쎄, 내 생각엔 그 검사기 너무 위험하다. 한글 표기 상에 존재하지 않는 맞춤법을 잡아내는 덴 탁월하지만, 비문이나 '잘못 적용한' 맞춤법을 찾아내는 덴 아무런 쓸모가 없다. 그래서 뭐가 최선이냐. 스스로 교정교열의 고수가 되는 것이 최선입니다. 책을 많이 읽고 글을 많이 고쳐보자. 하하.


- "절대로" 일희일비 하지 말라는 조언도 다수를 이뤘다. 해본 사람은 다 아는 얘기지만, 취업 준비에 투자하는 시간은 자존감과 절대적으로 반비례한다.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존감은 제로로 수렴하고, 특히 서류에 탈락하거나 또는 서류는 붙었는데 면접에서 탈락하거나 심지어는 최종에서 떨어지거나 할 경우 자존감 추락 속도는 급격하게 증가한다. 최종합격 말고는 아무것도 의미가 없으니, 너무 쉽게 기뻐하지도, 또 너무 쉽게 낙담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물론 그게 어디 쉬운 얘기냐고. 수기 쓴 사람들도 아마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 합격자들의 여유인지 모르겠으나 이런 조언도 있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직무영역, 자기가 관심이 많은 직군이 아니면 마구잡이로 지원하지 말라는 것. 취업준비 과정은 굉장히 멀고 험한데, 별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는 회사에 지원해서 시간은 시간대로 잡아먹고 탈락은 탈락대로 하다보면 점점 더 취업준비가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입사한 뒤에도 흥미와 관심이 없으면 적응에 실패해 금세 퇴사하게 된다고 한다. 역시 옳은 얘기이지만, 당장 취업을 눈앞에 둔 청년들에게 얼마나 설득력 있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 20개의 성공수기를 읽으면서 느낀 건데, '노오력' 담론이라는 게 꼭 기성세대의 전유물도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작성자들이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특히 한 사람이 가장 적극적으로 얘기하고 있었는데, '충분히 노력하지 않고서 탈락했다고 낙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당신이 채용담당자면 당신 같은 사람들을 뽑겠나'라고까지 얘기한다. 이렇게 적은 사람은, 수기를 참고하면, 상류층의 자녀이거나 하지 않다. 구체적으로 적진 않겠지만, 굉장히 불운한 가정사를 지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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