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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Feb 09. 2017

그때의 나를 흑역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열아홉 이전의 나는 정치와 사회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냉소했다. 웃대나 디씨 국축갤 같은 곳을 드나들면서 정치와 사회에 대해 냉소적으로 떠들어대곤 했다. 아무것도 몰랐으면서 말이다. 지금의 내가 딱 싫어하는 유형의 인간. 그런데 나는 그때의 나를 흑역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때의 기억을 바탕으로 그런 유형의 인간을 이해하려 애쓰고 미워하지 않으려 애쓸 뿐이다.


열아홉의 나는 경멸적 의미로서 깨시민이었다. 당시 광우병 정국을 고3 교실에서 지켜보면서, 이명박을 미워했고 노무현을 존경했다. 고3이란 핑계로 광화문에 나가진 않으면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만 정치와 사회에 대해 떠들어댔다. 정치와 사회에 무관심한 사람들, 이명박을 지지한다는 사람들을 조롱하고 혐오하고 저주했다. 지금의 내가 딱 싫어하는 유형의 인간. 나는 그때의 나도 흑역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너머의 무엇을 접할 기회가 없었던 내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관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스무살의 나는 입좌파였다. 운동권이 많은 학과에 들어와 운동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또 박노자와 (좋았던 시절의) 진중권의 글을 탐독하면서 무엇이 좌파적인 것이며 무엇이 경멸적 의미의 깨시민적인 것인지를 구분하게 됐다. 머리로는 그랬다. 노무현이 죽었을 때는 머리랑 심장이 싸웠다. 좌파적 관점에서 노무현은 비난의 대상이었기에 좌파를 자처하던 나는 그의 죽음 앞에 냉소해야 했지만 슬픈 건 어쩔 수 없었다. 


머리와 발의 거리는 멀었다. 스무살의 나는 용산이며 쌍차며 하는 투쟁현장에 단 한번도 나가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무서웠고, 한편으로는 투쟁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입으로만 좌파인 척 했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때의 내가 부끄럽다. 하지만 흑역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때의 부끄러움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때의 나 같은 사람들을 만나면 내 나름으로는 그들을 알에서 깨어나오게 하려 애쓴다. 그 과정을 이해하며, 깨어나올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스물넷 무렵의 나는 지금 생각해도 참 급진적이었다. 이제 막 전역해 사회로 나와 이상한 열정으로 넘쳤다. 균형이란 걸 몰랐다. 좀 더 원론적으로 얘기하기를 즐겼고, 급진적이지 않은 생각들을 배척했다. 어떤 선을 넘어야만 한다고 믿었고, 그 선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을 조롱했다. 그러니 실수도 잦았다. 관계맺기에 미흡했다. 옳은 것만 믿고 달려 나가다가 많은 걸 잃었다. 날 소모시켰다. 지금의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유형의 인간. 하지만 역시나, 그때의 나도 흑역사는 아닐 거다. 그런 유형의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 요즘도 그때의 기억을 되새김한다.


내가 변해온 과정을 빠짐없이 기억하려 애쓴다. 어느 시기의 나도 '흑역사'라고 쪽팔려 하거나 조롱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다만 내가 한때 그러했으니, 지금도 그러한 누군가를 그저 경멸하지 않기 위한 지침으로 삼는다. 시작부터 너무 앞서지 않고 천천히 변화해올 수 있었다는 걸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 모든 시기를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려 애쓰는 인간이 될 수 있어서다. 누구나 변화할 수 있음을 믿는다. 지금의 나도 불완벽하고, 조금씩 변화할 거다. 기왕이면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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