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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Mar 03. 2017

패러다임 전환

스터디에서 대선후보들의 공약을 정리했다. 오늘은 일자리, 복지, 교육 분야만 살폈다. 사실 어떤 공약으로 세상이 한번에 바뀌리라고 나는 기대하지 않는다. 5년만에 세상이 바뀐다는 건 꿈에서나 가능한 얘기일 거다. 그래서 그보다는, 대선이라는 빅 이벤트가 계기가 되어 새로운 인식전환이 이뤄지는 것을 나는 더욱 기대한다. 실질적인 내용보다도 관점의 전환이 중요하다는 생각. 따라서 개중 '패러다임 전환'이라 부를 만한 것들 몇 가지를 정리해봄.



1. 안희정: 독거노인 공동생활제, 행복경로당


충청남도에서 이미 도입했다는 독거노인 공동생활제. "독거노인의 고독사를 예방하고 응급상황 발생 시 신속한 대처를 위해 경로당 또는 단독주택을 개보수해 홀몸어르신들에게 공동 취사와 숙박을 지원하는 사업"이라고 한다. 행복경로당은 이렇게 모인 노인들에게 레크리에이션 등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 앞서 썼던 글에서 노인문제의 원인을 '자존감 추락'에서 진단했는데, 이 공약은 바로 이 지점을 채워준다. 기초연금 등 생계를 지원해주는 것만큼이나 이처럼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정책도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노인정책에서 빠져있던 부분.




2. 문재인, 유승민: 치매국가책임제, 치매치료 장기요양


어느 질병이건 무섭고 두렵지 않겠냐마는, 알츠하이머는 너무 많은 걸 뺏어가는 병이다. 나로서는 겪어본 적 없는 병이니 상상밖에는 할 수 없다. 마땅히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할 병이 맞다고 생각. 특히 유승민의 경우 "선제적 예방을 위해 치매 3대 고위험군을 적극 보살펴드리겠다"고 공약, 예방도 놓치지 않았다. 3대 고위험군은 경증치매환자, 경도인지장애자, 인지저하자라고.




3. 이재명: 장애인 기본소득, 소방공무원 현장 권한 강화, 보훈배당


세 개씩이나 늘어놓자니 마치 내가 이재명의 지지자가 된 것 같지만 그렇진 않다. 그냥 이재명이 성실하고 촘촘하게 공약을 짠 것. 기본소득은 이제 그리 대수롭지 않은 공약이지만, 이재명의 경우 보육지원/교육지원/청년지원/노인지원/장애인지원/농축어민지원으로 세분화해, 30세-65세 구간을 제외한 2800만명에 기본소득을 연간 100만원씩 지원한다는 계획. 물론 이것도 그리 대수롭진 않은데, 대수로운 건 장애인 기본소득에 대한 것이다. 청년이면서 농축어민인 사람은 중복혜택을 받지 못하지만, 장애인은 다른 항목과 중복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해뒀다. 많이 받고 아니고를 떠나서 이런 패러다임 전환이 유효해 보인다. 어떤 소수자가 단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되지 않는다는 것. 장애인이면서 청년이거나 여성이거나 양육자이거나 노인일 수 있다는 것. 정말정말 중요한 전환이라고 생각한다.


소방공무원에 대한 공약은 정말로 내 맘에 쏙 든다. 국가직 전환은 문재인이나 다른 후보도 주장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특히 내 시선을 잡아끈 것은 "재난 발생 시 현장 지휘관에게 컨트롤타워 역할 및 권한 보장"한다는 공약이다. 세월호 참사를 낳은 수많은 원인들 가운데 바로 이 지점이 있었다. 명예는 위로 올리고 책임은 아래로 지우는 구조. 급박한 상황의 한 가운데에서 VIP에게 보고해야 하니 현장을 찍어서 보내달라던 청와대 직원의 그 목소리를 결코 잊을 수 없다. 정말 참된 정부라면 명예는 아래로 내리고 위에서 책임을 지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걸 분명하게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보훈배당. 현행 "국가유공자를 비롯한 보훈대상자에게 공헌 정도와 생활 수준, 연령에 따라 차등 보상"하는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거다. 이재명에 따르면 "보훈연금을 받는 사람 가운데 자신이 하층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55%에 이를 정도로 국가의 보상 수준이 미흡한 상황"이라고. 이재명은 보훈대상자 본인과 유족을 포함해 86만명에게 연 100만원씩 보훈배당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역시 중요한 공약이라고 생각한다. 전략적으로도 구체적이고, 잘 다뤄지지 않는 그늘을 다뤘다는 점에서 훌륭하다.




4. 안철수: 여성 감정노동자 처우개선


역시 우리 사회의 '빈틈' 중 하나다. "돌봄 노동자 경력인정제를 마련하고, 가사 사용인도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으로 확대"하고 "감정 노동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위해 감정·치유상담비용을 지원하고, 산재 인정범위도 늘리겠다"고. 꼭 필요한 공약이다. 스트레스를 아래로 푸는 한국에서 감정노동자는 최후의 샌드백이다. 해고되기도 쉬운 위치에, 자본가들은 서비스의 책임을 온전히 노동자에게 돌리기 일쑤다. 일단 이 부분을 특별히 언급했다는 점에서 중요하고, 감정노동자가 '치유'받지 않아도 될 수 있게 문화와 구조 자체를 개선하는 작업도 꼭 필요하겠다.




5. 유승민: 작업중지명령 강화


"안전 현장을 이루기 위해서 원청 사업주에게 해당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수급업체 근로자의 사고에 책임"을 묻고 "작업중지명령을 강화하는 등 처벌 수준을 대폭 강화"한다는 공약이다. 작업중지, 중요한 개념이다. 다만 좀 더 나아가도 되지 않을까. 노동자가 위험을 느끼면 스스로 작업을 중지할 수 있게 보장해주는 것. 결국 위험한 상황을 가장 잘 파악하는 것은 사업주가 아니라 노동자다. 이른바 작업중지권. 나도 예전에 감정노동자 작업중지권에 대해서 쓴 적이 있다. 제조업에만 국한되지 않은 노동권 확대가 필요할 것 같다.




그외에는 마땅히 해야 하는 공약들 정도. 특히 보육/여성 정책에 관한 한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대부분 후보들 공약이 진일보했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작년과 재작년 크게 일어난 페미니즘 운동이 만들어낸 성과이기도. 다음 주에는 정치/행정, 안보/군사 공약을 살펴보기로 했다. 보고 또 재밌는 거 있으면 정리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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