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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Oct 06. 2016

보여지는 사랑

<중경삼림>을 보다

중경삼림을 뒤늦게 봤다. 졸라, 미치게 좋다. 조금 찾아보니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의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하는데, 그건 내가 잘 모르겠고, 유치한 감상평이지만 '금사빠'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별에 대한 예의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금성무의 대사가 간결하게 요약하듯, "바에 처음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기로 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한 달이라는 인위적으로 설정된 기간만에 그는 다시 사랑에 빠졌다. 임청하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고, 왕페이는 모자를 벗으며 들어오는 양조위에 한눈에 반한다. 사랑에 관한 한 가장 공감이 갔던 것은 역시 양조위다. 너무나 분명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왕페이에 곧장 반하지 않고, 사랑했던 사람을 천천히 잊어가면서, 과거의 연인이 머물던 자리를 조금씩 비워내주는 왕페이를 좋아하게 된 것. 


요 근래의 몇몇 영화들ㅡ한여름의 판타지아, 언어의 정원ㅡ이 좋으면서도 그리 와닿지 않았던 것은, 두 영화에서는 모두 사랑을 주면 곧장 사랑이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혼자 하는 사랑에 "익숙"(캘리포니아 드리밍이 익숙해져서 틀어놨을 뿐이라는 양조위의 건조한 말이 나는 너무너무 좋았다)한 나한테 그 영화들은 말 그대로 '판타지아'에 불과했다. 좋지만 나랑은 거리가 먼. 로맨스 장르의 영화에서 내가 찾고 싶은 건 판타지가 아닌 공감인 까닭에, 판타지가 더욱 매력적인 때도 있겠지만, 저 영화들을 봤을 무렵에는 그렇지 못했다. 공감으로부터 오는 위로가 필요한 시기였다. 그래서 그것들은 그냥 스쳐지나가는 영화다. 


그런 의미에서 중경삼림에서 좋았던 장면들은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금성무가 잠든 임청하의 하이힐을 벗겨 깨끗이 닦아준 뒤 몰래 빠져나가는 장면, 왕페이가 양조위의 방을 몰래 청소해주는 장면, 양조위가 젖은 편지를 말리려고 애쓰는 장면. 임청하가 사실 잠에서 깨어있지 않았다면, 왕페이가 종이비행기를 날리지 않았다면, 1년 뒤 양조위와 왕페이가 재회하지 않았다면, 그 '사랑'들은 아마 보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보여지는 사랑, 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흔한 말로 '티낸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랑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금성무의, 왕페이의, 양조위의 사랑이 상대에게 보여지지 않았다 해서 의미없는 것은 아닐 터다. 오히려 보여지지 않았다면 더욱 아름다웠을지도 모른다. 다만 보여졌기 때문에 금성무는 '생일 축하한다'는 화답을 받았고, 양조위는 왕페이를 사랑하게 됐고, 왕페이는 양조위에게 새로운 티켓을 써주었다. 그들은 티내지 않았고, 우연한 계기로 보여졌을 뿐이고, 그래서 그 순수성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었던 거라고 믿는다.


중경삼림의 두 연애는 표면적으로 모두 이뤄지지 않는 연애다. 금성무는 임청하를 빠르게 사랑한 만큼 빠르게 잊고 다른 사랑을 찾아 헤매고, 양조위와 왕페이는 재회했지만, 왕페이가 곧 떠남으로써 우물쭈물 끝나고 말 것이다. "사랑한다"는 대사가 영화 통틀어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세상에, 로맨스 영화에 그런 대사가 없다니. 오직 메시지함의 비밀번호로만 "널 영원히 사랑해"라는 명백한 거짓말이 흘러나올 뿐이라니. 보여지는 사랑은 전달될지언정 되돌아오지는 않는 모양이다. 어느 만화에 나오는 대사처럼,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어요." 그런 건가보다. 요즘의 정서로는, 그래서 좋았나보다. 되돌아오지 않는 사랑, 시간이 엇갈린 사랑.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건 작년 9월에 쓴 글이다. 오해 말라. 나는 지금 열심히 행복하게 연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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