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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드나무 Apr 28. 2018

'비영리 영역'에도 청년은 있다

경향신문 기고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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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야심 차게 청년 일자리 대책을 내놓았지만 나는 영 못마땅하다. 한참을 들여다보아도 내가 지원받을 수 있는 구석이 별로 없어 보여서다. 내가 청년이 아니어서? 아니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서? 아니다. 단지 비영리기관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청년정책에 비영리 영역에서 일하는, 또는 일하고 싶은 청년이 낄 자리는 없다. 발표된 대부분의 정책이 중소·중견기업에 취업하는 청년만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중견기업에 취업하면 청년내일채움공제에 가입시켜주고, 소득세를 면제해주고, 전·월세 보증금을 융자 지원해준다. 또 산업단지에 있는 중소·중견기업으로 출근하면 교통비를 보태준다. 대기업에 취직했거나 비영리기관에서 일하는 청년들은 지원대상이 아니다. 청년정책이라기보다 ‘중소·중견기업 인력수급 정책’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해 보일 정도다.


대기업에 취업한 청년을 정책 대상에서 제외한 취지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한정된 예산으로 정책 효율성을 높이려니 이들을 지원대상에서 제외한 것일 테다. 고용노동부가 SNS 페이지에 올린 ‘청년이 묻고 정책이 답하다’라는 정책 설명 영상에서는 제도의 목적이 ‘임금격차 해소’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물론 단지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만으로 계층 사다리에 올라타는 시대는 끝났기에 여기에도 문제는 남는다). 그런데 비영리기관에서 일하는 청년을 제외한 것은 이렇다 할 명분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앞서 영상에서도 이에 대한 질문이 던져졌지만 “기본적으로 포함이 안 된다”는 동어반복만 돌아왔다.


대부분의 비영리기관이 중소·중견기업보다 더 나은 환경에 있다고 할 만한 근거는 없다.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가 2013년 발표한 ‘시민사회 활동가 실태조사 및 지원방안’ 보고서에서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300명을 조사한 결과, 이들의 평균월급은 133만원에 불과했다. 범위를 인권단체 활동가로 좁히면 더 열악해진다. 인권재단 사람에서 2015년 발표한 ‘인권활동가 활동비 처우 및 생활실태 연구’에 따르면 조사대상 상임활동가 65명의 기본급 평균은 약 107만원에 그쳤다. 2015년 당시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중소·중견기업의 열악한 노동조건은 정부가 나서서 개선해야 하지만 비영리 영역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걸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중소·중견기업이 국가 경제의 근간이라면, 비영리 영역은 정의로운 사회의 근간이다. 선거에 의해 쉽게 흔들리는 입법부·행정부에 대비해, 비영리 영역은 언제나 자리를 지키며 정부 견제와 다양성 증진이라는 자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정의로운 사회가 지속가능하려면 비영리 영역이 성장해야 한다. 그리고 비영리 영역이 지속가능하려면 이 영역에서 일하는, 또 일하고 싶어하는 청년들이 미래를 꿈꿀 수 있어야 한다. 더 이상 비영리 영역에 뛰어든다는 것이 희생을 감내하겠다는 말이 되어선 안 된다. 이곳에서도 생계와 가치를 조화롭게 꾸려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비영리 영역이 당장 여건을 개선하기 어렵다는 사실은 이곳에서 일하는 청년들도 잘 안다. 선배들도 똑같이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 때문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쉽게 무어라 개선을 요구하기 어렵다. 없는 살림에 나름대로 노동정의를 실현하겠다며 무리해서 노동조건을 개선한 단체들도 더러 있지만,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결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 마침 내놓은 청년 일자리 대책은 그 일환으로 보였다. 단, 지원대상에 포함되지 못했을 뿐.


정부의 청년 일자리 대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정확히는 청년 ‘일자리’ 대책이 아닌, ‘청년’ 일자리 대책을 지지한다. 나의 친구들이 중소·중견기업에 취업해도 더 나은 오늘을 살아가며 더 밝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나도, 우리도 그러고 싶다. 중소·중견기업에 다니는 청년들이 그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더 나은 삶을 꾸려나가고 싶은 청년은, 바로 여기, 비영리 영역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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