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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부부 Aug 30. 2020

만약에 무통주사가 없었더라면

출산 후기 ③ 무통주사 덕분에 버틸 수 있었던 출산

2화에 이어서



2020년 5월 13일 AM 1:00


'내가 아이를 낳다니.'


분만실에 들어갈 때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유튜브나 맘카페에 올라온 다른 엄마들의 출산 후기를 보면서 상상했던 순간이지만 막상 분만실에 들어서니 얼떨떨했다.


분만실에서 제일 처음 한 것은 '3대 굴욕'이라는 관장이다. 분만실 안에는 전용 화장실이 있었다. 간호사는 5분을 참으라고 하고 쿨하게 나갔다. 맘카페에서 후기를 읽으면서 '3분만 참아야지'라고 다짐한 적이 있다. 근데 웬걸, 3분은커녕 1분도 참기 힘들었다. 그렇게 3대 굴욕이라는 첫 번째 경험을 마쳤다.


양수가 터져서인지, 이후 화장실에서 소변을 볼 때마다 계속해서 양수가 흘러나왔다. 소변과는 달리 물이 계속해서 쭉쭉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내가 12일 오후 11시에 병원에 오지 않았다면 이 시간쯤에는 병원에 달려왔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양수가 터졌기 때문에 항생제를 맞아야 했다. 간호사가 항생제 테스트를 했다. 다행히 약발(?)이 잘 받았던 것 같다. 손목에 바늘이 꽂혔다.


마취과 의사가 들어왔다. 의사는 척추 쪽에 무통주사를 맞기 위한 바늘을 꽂는 장치를 달았다. 부분 마취를 진행하고 하는 거라 상상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간호사는 등을 자꾸 움직이면 바늘이 빠져 다시 꽂아야 할 수 있으니 되도록이면 등을 움직이지 말라는 주의를 줬다.


그리고 기나긴 시간이 지나갔다.


새벽 1시, 3시, 5시. 생리통 같이 허리가 아팠지만 참을만한 고통이 계속됐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게 가진통이었던 것 같다. 그 시간 동안 간호사는 나에게 '진통이 없냐'라고 계속 물었고 아프면 참지 말고 무통주사를 맞으라고 했다. 참을만했기 때문에 맞지 않았다.


지루하게 이어지는 진진통 전 시간들. 그 길고 긴 지루한 시간 속에서 남편은 옆에 있던 아주 불편해 보이는 침대 겸 의자에서 꾸벅꾸벅 졸면서 나를 간호했다. 나는 창문 틈새로 보이는 병원 바깥 새벽 풍경에 집중했다. 창문 틈새로 보이는 건 CU편의점뿐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깊은 잠을 청하는 고요한 새. 나도 평소였으면 잠에 빠졌을 시간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산부인과 분만실이다. 하루 사이 처지가 이렇게 달라지다니. 나는 그날 CU편의점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내가 다시 밖에를 나갈 수 있을까'. 긴장되고 무서웠다. CU편의점을 뚫어져라 보며 바짝 긴장한 마음을 다독였다. '이것도 곧 지나가리라'. 힘들 때마다 생각하는 말을 곱씹고 되새기며 숨을 골랐다. 양수가 터졌으니 24시간 이후에는 어떻게든 아이를 만나게 된다. 양수가 먼저 터지면 아이를 24시간 안에 반드시 낳아야 해서다. 그렇게 생각하니 긴장되는 마음과 설레는 마음이 교차했다.


분만실 침대 앞에는 한 모금 먹다 남긴 하늘보리가 보였다. 병원 올 때 목이 말라 한통 샀던 하늘보리다.(1편 참조) 간호사는 갑작스러운 입원으로 경황이 없는 날 대신해 개인 물품을 살뜰히 챙겨줬다. 하늘보리까지 챙겨줄 줄이야. 이렇게 허무하게 입원할 줄 알았으면 하보리라도 다 마실걸 그랬다. 출산하는 내내 한잔밖에 못 마신 늘보리 너무 간절했다.


한 새벽 5시쯤부터 무통주사를 맞기 시작한 것 같다. 생리통같이 아프던 가진통이 귀신같이 사라졌다.


5월 13일 AM 7시 or 8시(기억이 가물가물.)~PM 5시까지.


기나긴 새벽이 끝이 나고 담당 의사가 출근을 해 나를 살피러 왔다. 며칠 전만 해도 유도분만 이야기를 했던 의사는 나를 보자마자 환한 얼굴로 '운동 열심히 하셨나 봐요~'라고 했다. 의사의 칭찬을 들으니 내심 뿌듯했다. 나의 상태를 잘 아는 담당의가 왔다는 안도감도 들었다.


의사가 내진을 하더니 아기가 나오려면 아직 멀었다고 했다. 의사는 내진을 한다며 손을 질에 쑥 넣었다. 3대 굴욕 중 2번째라는 내진. 사실 무통주사를 맞고 있어서 아무 느낌도 안 났다.


이쯤에서 무통주사에 대한 기억을 짚어본다. 정말이지 무통주사가 없었다면, 나는 산을 포기했을 거다. 출산 막바지 아기 머리가 보일 때쯤 간호사들무통주사를 끊는다. 무통주사를 맞으면 다리에 아무런 느낌이 안 나는데, 이 때문에 정작 애 낳을 때 힘을 주는지 안 주는지 감각이 없어지기 때문. 무통주사가 안 들어가는 그 순간은 정말이지, 그 고통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진짜 난생처음 겪는 고통이다. 말로 표현이 안된다. 고통을 표현할 단어가 없다. 출산은 내 몸에 있는 뼈를 다 벌리 이니까.


무통주사가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출산을 했을까. 출산은 엄마의 목숨을 거는 치열한 싸움이다. 단지 옛날과 다르게 무통주사라는 현대 의학 기술이 출산을 돕고 있을 뿐다. 더욱이 무통주사를 맞아도 힘든 건 매한가지다. 자궁문이 열리기까지 견디다 보면 진이 다 빠진다. 또 무통주사 기운 때문인지 졸리다. 나는 무통주사가 들어갈 때마다 잠이 쏟아졌는데, 그렇다고 숙면을 취한 건 아니다. 잠깐 기절하는 느낌이랄까. 무통주사로 내 몸이 천국에 온 상태가 되는 게 아니라, 단지 출산 시 동반하는 극한의 통증 줄여줄 뿐이다. 출산의 지난한 과정은 여전히 엄마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일각에선 무통주사를 거론하며 '요즘 애 낳기 쉬워졌다'는 투의 말을 내뱉곤 하는데, 겪어보지 않고서 하는 말이다. 무통주사를 맞지 않는걸 당연하게 여기거나, 모성의 기본으로 치부하거나, 섣불리 무통주사 없는 출산을 권하는 오지랖을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사람마다 무통주사가 안 듣기도 하고 부작용도 있다 하니, 주사를 맞고 안 맞고는 오롯이 자신의 선택이다.


의사가 첫 내진을 하고 수간호사가 왔다. 그는 '무통주사가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근데 막판에는 무통주사를 끊어야 한다. 애를 공짜로 낳을 수는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무통이 없다니..' 너무 걱정됐지만 그래도 긴장을 풀어주려는 수간호사를 보고 잠깐이나마 웃을 수 있었다.


의사가 두 번째 진찰을 왔다. 내진하니 여전히 진행이 더뎠나 보다. 의사는 '이대로라면 내일이 와도 애를 못 낳는다'는 말을 했다. 의사가 촉진제를 맞자고 했다.


촉진제를 맞고 몇 시간이 흘렀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생생하게 기억나는 진통. 너무 아픈 고통이 시작됐다.


진진통이 왔다.


불행히도 진진통이 시작되자 무통주사가 듣질 않았다. 진통이 시작된 후 처음으로 지옥을 맛봤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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