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가 터진 그날 밤, 사실 양수인 지도 몰랐다. 밑에서 물컹한 느낌이 나길래 그냥 분비물인 줄 알았다. 임신 중에는 원래 분비물이 많이 나오기 때문. 그래도 느낌이 싸했다. 평소와는 다른 느낌 이어서다. 남편한테 얼른 집에 들어가자고 했다.
40주+0일 5월 11일 pm 10시
동네를 돌던 남편과 나는 얼른 집에 들어갔다. 화장실에 가보니 맑은 물이 흘러있었다. 초산모인지라 분비물인지 양수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나는 출산의 초짜 중에 초짜였다.
경험자인 엄마한테 전화를 해봤다. 엄마는 진통보다 양수가 먼저 터져 나를 낳았다. 엄마는 '양수일 수 있으니 병원을 가라. 양수가 터진 거면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라고 했다. 양수가 터지면 태아가 감염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
그다음 분만실에 전화를 했다. 분만실에 있던 당직 간호사는 몇 시간 후에 물컹하는 양이 많아지면 병원에 내원하라고 했다.
'설마 양수일까.'
이때만 해도 반신반의하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밑에서 피(이슬)가 나왔다. 이슬의 양이 조금씩 늘었지만 지금 병원에 가도 '양수 아니었잖아~'하면서 싱겁게 집에 돌아올 줄 알았다. 왜? 일단 양수가 터졌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고 초산모는 이슬이 나와도 몇 시간이 지나서야 진진통이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 병원에서 산모를 돌려보낸다는 후기를 카페에서 읽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마다 경우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엄마들의 경험담을 읽는 건 궁금증 해소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지 모르나, 맹신하면 안 되고 무조건 담당 의사나 병원과 상의해야 하는 게 좋겠다.
아무튼 나는 의심병과 지나친 염려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고민하지 말고 병원에 가기로 했다. 남편은 운동 후에 밥을 먹고 있었다. 남편도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했다. 나는 병원에 입원을 할 수도 있겠단 생각에 급하게 주먹밥 몇 개를 만들어 먹었다. 양수가 터지면 감염 우려 때문에 씻으면 안 된다는 글을 카페에서 본 적이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씻지 않았다.
병원 가는 길에 집 앞 편의점에서 하늘보리 한 병을 사들고 갔다. 입덧 때문에 생수를 마시지 못해 평소에도 종종 먹던 하늘보리다. 하늘보리 한 모금을 마시고 살짝 긴장된 마음으로 남편의 차를 타고 병원에 갔다. 병원은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40주+0일 11일 pm 11:00
병원에 도착해 분만실에 들어갔다. 분만실은 정말이지 싸늘했다.
나는 분만실에 대한 무서운 기억이 있었다. 36주인가. 임신 중에 태동검사를 하러 들어갔는데, 분만 중인 산모가 있었다. 날카로운 산모의 비명소리 후 아이의 울음소리가 힘차게 들렸다. 당시 들렸던 비명소리에 공포에 떨던 나는 성별도, 이름도, 태명도 모르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어처구니없게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이번엔 내 차례다. 곧 출산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분만실에 누우니 그때 들었던 산모의 비명소리가 생각났다. 남편은 분만실 밖에 있었다. 나 혼자 분만실에 들어가는데 어찌나 겁이 나던지. 세상 낯선 분만실 문 앞에서 남편에게 '양수 아닌 거 같아, 오버하지 말고 그냥 갈까?'라는 말을 했다. 들어갈 땐 '금방 나올게~'하면서 허세를 부렸다.
당직 간호사 두 명은 방금 전화했던 나를 알아봤다. 나는 멋쩍게 '양수가 아닐 수도 있는데, 혹시나 걱정이 돼서 왔다'라고 했다. 간호사는 병실로 나를 안내했다.
병실에서 10분 정도 대기했을까. 양수인지 아닌지 알아보기 위해 간호사는 손가락을 쑥 집어넣었다. 인정사정도 없는 손놀림이었다. 아픔도 잠시, 간호사는 나를 보며 '양수 맞네요. 양막이 터졌어요.'라고 말했다.
순간 어이없는 웃음이 났다. '언제 나오나' 하던 아이가 진짜 나온다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엥? 뭐라고요?' 싶은. 다시 집에 돌아갈 것 같아 입원 준비물 하나 챙기지 않았는데, 입원이라니요. 간호사는 '양수가 터졌기 때문에 입원하셔야 해요.'라고 하면서 입원 절차를 밟을 준비를 하며 보호자를 찾았다. 그때 간호사가 밖에 있던 남편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최수진 산모 보호자님 들어오세요.'... 나는 어느새 산모가 되어있었다.
간호사는 나에게 분만에 필요한 갖가지 사인을 받았다. 무통주사를 맞을 건지, 회음부 열상 방지 주사를 맞을 건지, 입원 후에 뭘 하면 안 되는지. 무통주사는 이미 너무 유명하니 패스. 사실 회음부열상방지주사는 잘 몰랐다. 맘 카페 발 정보에 따르면 회음부 절개 시에 필요한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당시 간호사는 '회음부열상방지주사 아시죠?' 정도의 설명만 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요'라고 되묻고 싶었지만 출산의 고통을 줄이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까 싶어 묻지않고 다 맞겠다고 동의했다. 이후 나는 입원복으로 갈아입고 분만실로 들어갔다.
평소 내원할 때 참 궁금했었다. 앞서도 말했든 지나친 염려증이 있는 나로서는 '이 의사는 내가 언제 분만할지도 모르는데, 왜 이렇게 천하태평일까. 분만 시 해야 할 주의사항이나 선택사항이 많은 것 같던데. 그런 것에 대해 왜 하나도 미리 알려주지 않을까' 하는. 환자가 맞게 되는 주사나 처치에 대해서는 우선 자세히는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권리는 있다는 판단이다. 의사에게는 수많은 산모 중 하나일 뿐이지만, 나는 인생의 첫 아이를 낳게 되는 첫 경험이자 떨리는 첫 순간이지 않은가.
내 입원실 침대 옆 벽에는 큰 시계가 걸려있었다. 그래서 출산 까지 발생한 시간을 다소 정확하게 기억한다. 이때가 새벽 한 시가 넘었을 즈음이었던 것 같다.
다음회에 이어서.
카페 후기에 대한 생각
분만 과정을 차근차근 정리하니 글 속에 맘 카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예비 엄마들이나 엄마들이 한 번쯤 들리는 맘 카페다. 나는 임신 중에 맘스 xxxxx라는, '맘스'자만 들어도 임신과 출산을 겪은 사람이라면 다 아는 카페에 자주 들락날락거렸다. 그곳에서 엄마들의 경험담을 들으며 출산에 대한 긴장감과 궁금함을 어느 정도 해소하며 열 달을 보냈던 것 같다.
출산이 임박한 당시 '카페에 올라오는 출산 후기를 섭렵하고 있다'는 나의 말에, 의사는 '후기 보는 게 제일 어리석은 행동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운동을 하는 게 낫다'라고 했다. 의사의 말도 일리가 있다. 산모마다 경우가 다 다르기 때문에 산모의 경험담이 긴장을 해소하는 데 순간적으로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결국 남의 이야기일 뿐, 나의 이야기는 될 수 없다는 것. 이러한 이유로 출산 후기는 그냥 후기일 뿐. 정확한 진단은 담당 의사에게 받아보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궁금한 건 무조건 의사에게! 양수가 터진 내가 카페나 엄마의 말만 믿고 병원을 안 갔다면 어땠을까. 병원에 바로 간 건 좋은 판단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