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유수유가 너무 힘들었다. 돌이켜보면 모유 수유하기에 적합한 체질도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그저 막연히 모유수유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사람이었다.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입원실에 왔을 때, 신생아실에서 첫 수유콜이 왔다. 처음 받는 수유콜인지라어리둥절하기도 했고우선 몸이 너무 아파 거절했다. 간호사는 '산모가 힘들면 안 해도 되니 천천히 하시라'고 했다. 이후 병원에서는 수유를 못했다. 출산하느라 눈이며 얼굴이며 안 터진 핏줄이 없었던 나는 수유를 할 기력이 없었다.
첫 수유는 산후조리원에서였다. 조리원 입실 당일부터 수유콜이 울렸다. 수유 원장은엄마들이 수유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지도했다.
나는 첫 수유가 너무 어색했다. 조리원 수유실에는 수유콜을 받은 엄마 3~4명이 같이 앉아 수유를 했다. 생경한 광경이었다. 빨래터의 아낙네들이 모여 빨래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수유를 한 번도 안 해본 나는 엄마들의 기에 눌렸다. 병원에서 해본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수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는 밥 달라고 자지러지게 우는데, 엄마인 나는 모든 게 서툴렀다.능숙하게 해내는 엄마들과 계속 비교했다.
첫 수유 후 나는 너무 우울해서울었다.엄마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한편으론 내일은 더 잘해야지, 잘해야지, 하면서 버텼다.이를 악물고 2주 동안 배운다는 생각으로 매달렸다. 그러니 점점 나아졌다. 여전히 아이를 안고 자세 잡는 게 서툴렀지만 말이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나는 모유수유가 힘들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었다. 조리원에서 나온 날 소아과에서 첫 접종을 하는데, 의사가 나에게 모유 수유하기 어렵지 않냐고 물었다. 알고 보니 우리 아이는 설소대가 짧아 수유가 다소 힘들었던 상황이었다. 거기에 나도 함몰 유두였으니 모유수유가 더욱 힘들었을 터다.
그것도 모르고 조리원에서 나의 무능함을 자책했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모유수유를 못하는 건 '무능'과는 다른 문제인데도 말이다. 내가 있었던 조리원에서는모유가 최고라는 가치관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물론 모유가 최고인 건 맞다. 하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있으니 무조건 모유수유를 강요하기보다는 아이와 산모의 상황을 세심하게 살피는 것이 먼저다.요즘에는 조리원 선택 시 모유수유를 강요하는지 알아보는 엄마들이 많다고 한다. 모유수유는 어디까지나 엄마의 선택이며,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생각이다.
나는 결국 모유수유를 목표한 백일을 채우지 못하고 60일만 했다. 삼시 세 끼가 나오는 조리원을 벗어나니 끼니를 챙겨 먹기가 힘들어서 그랬는지,조리원 퇴소 후에는 모유가 잘 안 나왔다. 나중에 아이가 백일이 훌쩍 넘어 한의원에 가보니, 내 체질상 모유가 잘 안 나왔을 거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또 젖몸살이 너무 아팠고 신경질이 났다. 그래서 매일 주변에 짜증을 냈는데, 이게 나를 너무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쑥쑥 크는 5개월 아들램♡ 사진=최수진
이밖에도 모유수유를 하기엔 내 체력이 너무 떨어져 있었다. 열 달내내 입덧을 해서 이제는 내 몸도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유축하는 과정도 너무 번거로웠다. 혼합수유를 하니 아이도 나중에는 모유를 거부하는듯했다.
산후 한 달 검진 때, 산부인과 의사가 나한테 수유는 잘하고 있냐고 물었다. '젖소가 된 것 같다'라고 했더니, 의사는 엄마들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한다며 위로했다. 그리고 의사는 '엄마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면 된다'라고 했다.별것 아닌 말 같은데도 어찌나 고맙던지. 완모(분유 아닌 모유로만 수유하는 것) 엄마가 됐으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육아의 본질은 엄마가 느낀 행복감을 아이에게 다시 주는 것이라며 스스로를다독여본다.